내가 행복한가? ...... 그래

그렇다고 해야지

by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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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행복한가? ...... 그래.

- 살아있는 게 기쁜가? 자식도 있고, 뭐 기쁘지.

안여사는 돋보기 안경 너머로 검사지를 들여다보며 소리 내어 문항을 읽고 있다.

-사는 게 신이 나냐......음, 신...나는 건가?

엄마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내 생각은 어떠냐고 물어오는 눈빛을 보며 대답했다.

-묻는 시점에서 이미 확신이 없는 거야. 솔직하게 체크해.

-사는 게 뭐 그렇게 신나, 다 그렇고 그런 거지.


심드렁하게 혼잣말하더니 어딘가에 체크하고 다시 문항 속으로 들어간다. 허리를 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문항을 반복하며 뜻을 생각해보기도 하고, 읽다가 쯧쯧하고 혀를 차기도 한다. 한 자 한 자 공들여 읽더니 또 혼잣말을 한다.

-앞날에 대해 희망적인가? 이제와 무슨 희망이 어딨어. 뭐가 희망적이야, 앞날이 다 그렇지. 몰라. 그래도 거짓말도 좀 해야지. 있다그러지 뭐.

그렇게 집중해서 답을 작성하더니 뭐가 못마땅한지 갑자기 펜을 놓고 바깥을 쳐다본다.

-엄마, 뒷장도 있어.

안여사는 아, 그래? 하더니 다시 볼펜을 손에 쥐고 또 찬찬히 뒷장을 읽기 시작한다. 자신이 행복한지 우울한지, 삶의 의미를 느끼는지 절망하는지 따위를 묻는 질문에 예, 아니오로 답하기 위해서.



동네에서 예약 없이 진료 볼 수 있는 신경정신과는 이 곳이 유일하다. 다른 곳은 예약하고 최소 3개월은 기다려야한다.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았지만 이미 대기환자가 가득하다. 접수를 하고 한 시간 30분가량 기다리니 간호사가 여러 장의 질문지를 건내 준다. 엄마 이름이 적힌 질문지 옆에는 <노인우울검사>, 라고 쓰여 있었다.

엄마를 모시고 작은 방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엄마는 천천히 자리에 앉아 볼펜을 들고, 질문지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수면검사 질문지는 빠르게 끝내고 다음 질문지를 꺼내더니 바카라상에 팔꿈치를 괴고 고개를 갸웃하기 시작했다. ‘흐응….’ 뭐가 못마땅한지 앓는 소리를 내면서. 질문이 이해되지 않는 걸까, 물어보려 몸을 돌리는 찰나, 작게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행복한가......?”



팔순 엄마의 삶에 가장 빛나고 소중한 보석은 막내아들이다. 내리 딸만 둘을 낳고 전전긍긍하던 엄마가 큰애인 나와 다섯 살 차이로 막내를 낳았는데 다행히 아들이었다. 아들 네 형제 두신 손위형님의 기세에 눌려 살다 드디어 아들을 갖게 되었으니 얼마나 큰 기쁨이었을까. 일곱 살이 넘었는데도 생선을 발라 아들 밥숟가락 위에 올려놓고 밥을 먹였고, 누나들은 근처도 못 가본 유치원도 보냈다. 뿐인가 엄마는 누나들도 못 신어본 비싼 농구화도 아들만 신겼고, 최신유행 삐삐도 아빠 몰래 손에 쥐어줬다. 다행히 아들도 엄마에게 살갑고 다정했다. 천성이 그렇게 따스한 아들이었다. 여느 집 딸보다 더 많이 엄마와 대화하고 모시고 다녔으니 엄마의 사랑은 적어도 짝사랑은 아니었다.


그렇게 엄마의 의지가 되어준 아들이, 해외로 나가 살게 된지 올해로 5년이 넘었다. 처음 안여사는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꼭 나가야 하느냐고 붙잡았고, 금방 돌아 올 거라 믿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들은 자신의 삶의 목적과 비전을 위해 떠나고 싶어 했고, 이를 위해 오래 준비해왔다. 서운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들이 떠나는 날, 공항에서 돌아서는 엄마의 눈물을 닦으면서 나도 같이 눈물을 흘렸다. 나도 엄마가 되어서만은 아니었다. 어린 날 남동생에게만 생선 발라준다고 타박하던 마음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저 엄마가 덜 외로워하고 덜 쓸쓸해하기를 바라며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엄마의 상실감의 크기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마음의 의지처였던 아들을 보내고 힘들어 하실 거라는 걸 충분히 알았지만, 엄마는 생각 이상으로 힘들어하셨다. 두 딸에게 내색하지 않은 채 속에 쌓아둔 외로움과 허전함이 우울이라는 더께로 쌓이기 시작하더니 결국 몸으로 신호가 나타났다.


“자꾸 심장이 뛰고 불안하고, 잠도 잘 안 온다....눈물도 나고 막 기운 없고 일어나기도 싫고 그래.”

수화기 너머 엄마의 목소리는 지치고 까끌했다. 공항에서 마주잡았던 엄마의 손이 떠올랐다. 일단 뭐라도 해봐야할 것 같았다. 약도 먹어보고 병원진료도 받아보자고 했다. 처음에는 온갖 이유를 대며 거절했다. 일종의 거부감이었다. 다 늙어서 무슨 우울증이냐, 내가 그렇게 나약한 사람이 아니다, 기도하면 괜찮아진다, 내가 다 이겨낼거다......그렇게 고집부리던 엄마가 마음을 돌리셨다. “엄마, 엄마가 편안히 잘 지내야 아들도 거기서 열심히 잘 살지. 진료 받고 약 먹으면서 마음 조절해보면 훨씬 편안해요. 나도 그렇게 잘 지내잖아. 응?” 내 마음의 힘듦보다 아들 마음의 평안이 엄마에게 더 중요했던걸까.


그렇게 엄마를 모시고 병원을 찾았고, 자가설문문항을 마치고 의사와 상담을 한 후 약을 처방받았다. 뚱한 표정으로 진료실을 들어서던 엄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 벼라별 이야기들을 의사에게 다 쏟아냈다. 여느 모녀들이 그렇듯, 나는 ‘엄마 그만해, 뭐 그런 걸 얘기해’하고 민망해하며 말렸고 엄마는 딸이 그러거나 말거나 하고 싶은 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아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야기 풀어놓을 곳이 없어 마음에 우울이 스몄나 싶을 정도로. 상담을 마치고 일어서는 엄마 얼굴을 바라보았다. 병원에 들어설 때 보다는 확실히 긴장이 풀린 표정이었다. 함께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었지만, 늦기 전에 가게 가야한다며 엄마는 씩씩하게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셨다.


약을 드시면서는 엄마는 천천히 일상을 회복하셨다. 다행히 용량을 늘려가는 동안도 부작용없이 잘 적응했고, 의사와의 상담에서도 점점 편안해지셨다. 작은딸이 해준 흑염소즙을 마시며 기력을 채우고, 주말이 지나면 아들과 영상통화한 내용을 밝은 목소리로 들려주신다.

“옆에서 딸이 이거저거 돈쓰면서 잘해주면 뭐해, 아들 전화 한 통이 보약이구만.”

이렇게 볼멘소리를 하면 아니라고, 우리 딸이 최고라고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신다. 아들 일곱 살 때 했던 말을 그대로하면서.

“엄마 속이 버선목도 아니고 뒤집어 보여줄 수도 없고, 다 똑같이 사랑하지!”



그렇게 일 년, 일 년이 지났고, 이제는 마음이 힘들면 병원에 가야겠다고 먼저 전화하신다. 진짜 약이 효과가 좋아서인지, 아니면 플라시보효과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약을 먹음으로 해서 엄마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 애쓰고 있고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의식하는 게 더 중요했다. 아들에게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지를 키우는 것도.


가끔 병원 안쪽 바카라상에 팔을 괴고 지금 내가 행복한가 자문하며 씁쓸해 하던 엄마 얼굴이 생각난다. 고개를 틀고 내 삶을 짧은 문장으로 정의하는 질문에 답을 고르던 엄마, 상한 마음으로 뭐라도 꾸며내어 남들 보기에 그럴 듯 해 보이는 답을 골라보려던 엄마, 허탈한 가슴을 부여잡고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던 엄마. 어제의 내 얼굴 같기도 하고 내일의 내 얼굴 같기도 한 얼굴을 한 엄마. 엄마가 이제는 빠르고 힘있게 동그라미를 칠 수 있으면 좋겠다. 같은 질문지를 가볍게 휙휙 넘기면서 예/아니오, 질문에 웃으면서 자신 있게 행복하다고 답하기를, 팔순 후반에도 희망이 있다고 답하기를. 망설임 없이.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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