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시간

by피어라

첫 아이가 생겼을 때, 나와 남편은 일본에서 잠시 지내고 있었다. 안그래도 노산인데 첫 출산을 타국에서 할 자신이 없어 예정일 한 달 앞두고 나만 한국으로 들어왔다. 결혼 전 내 방에서 고대로 몸만 들어가 한달 쯤 지내다 아이를 낳았다. 남편은 아이가 태어난 다음 날에야 한국에 들어와 일주일 있다 일본으로 돌아갔고, 나는 조리원에서 일주일을 더 지내고 아이를 안고 다시 친정으로 들어갔다.


남편도 없이 혼자 첫 아이를 돌보는 마음은 아무리 친정이어도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생명은 신비롭고 어여뻤지만 그만큼 나를 불안하고 힘들게 했다. 이 연약한 생명체를 어떻게 돌봐야하는지 아는 것도 없었고 극단적인 내 몸의 변화에 적응하기도 버거웠다. 아이와 단 둘이 있는 상황이 제일 무서웠다. 무엇보다 외로웠다. 자연스레 누군가 곁에 있어주길, 도와주길 바랐고, 대개 그 누군가는 엄마였다. 하지만 엄마는 그럴 수 없었다. 먹고살기 위해 가게에 나가야했으니까.


엄마는 고향에서 서울로 올라온 젊은 시절부터 팔순이 넘은 지금까지 일을 쉰 적이 없다. 결혼 전에는 자신의 기술로 일을 하며 남동생들을 돌봤다. 결혼하며 남편을 믿고 의지하고 싶었지만 연이은 사업실패로 남편 몫까지 식구들의 생계를 바카라임져야했다. 남편대신 휴일도 휴가도 없이 아득바득 일해서 삼남매를 무사히 대학까지 공부시켰다. 그게 자신의 몫이라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외국서 살던 큰딸이 아이를 낳아 집에 들어와있어도 엄마는 변함이 없었다. 일해야 했고, 그래야 필요한 돌봄을 해줄 수 있다고 여겼다. 산모 먹을 미역국을 끓여놓고 엄마가 가게가시면 나는 식탁을 정리하고 청소를 했다. 그냥 둬라, 저녁에 와서 내가 할게. 엄마는 그냥 두라고 만류하셨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하루종일 일하고 온 피곤한 몸으로 나까지 챙기려면 힘들텐데. 내가 할 수 있는건 하고 싶었다. 됐어, 쉬엄쉬엄 애 자는 동안 조금씩 하는거야, 괜찮아. 걸레를 비틀어 짜지 못해 물티슈를 들고 엎드려 바닥을 닦았고, 허리를 펴면 세탁기를 돌렸다. 빨래를 개키고 식탁을 치웠다.


집안일은 힘들지 않았다. 힘든 건 외로움이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는 것보다 잠든 아이 곁에 앉아 있는 순간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아이에게 젖을 물릴 때의 충만함이 사라지면, 내 몸에서 나는 시큼한 땀냄새 말고 다른 사람의 냄새가 그리워졌다. 뒤섞인 공간에 오로지 나 혼자라는 사실이 너무나 아득했다. 나말고 다른 사람, 나에게 시간을 나눠줄 사람이 필요했다.

“엄마, 오늘은 가게 안 나가면 안돼? 나랑 같이 있으면 안될까?”

눈은 퀭하고 얼굴은 퉁퉁 부은 딸을 보던 엄마가 잠시 멈칫했다. 신발을 꺾어 신으며 헛기침을 하더니 이 말 한 마디를 하고 문을 나섰다.

“할머니가 기저귀값 벌어올게.”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표정을 기억한다. 엄마는 자신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 나도 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뒤돌아 현관 문을 나서는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엄마는 먹고 살기 위해 가게에 나가 돈을 벌어야했고, 그런 방식의 삶밖에 알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자식에 대한 바카라임을 지며 평생을 살았으니까. 그만큼 절박했으니까.


그때 이후로 20년이 지났다. 그 작은 방에서 신생아와 지내던 큰딸은 어느덧 오십줄에 들어섰고, 할머니가 사다준 기저귀를 차던 아이는 스무살 성인이 되었다. 하지만 내 늙은 어머니는 그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팔순이 넘은 고령임에도 여전히 가게를 열고 손님을 상대하며 매일의 일용할 양식을 해결한다. 그러면서도 철마다 장을 담그고 김장도 해가며 집안일을 쉬지 않으신다. 연세가 있으시니 그만하시라고 자식들이 아무리 말려도 해먹이는게 제일 큰 기쁨이라며 멈추질 않는다.


지난 달 동생과 같이 친정에서 하룻밤 자던 밤도 그랬다. 맛집에서 포장한 음식 먹으며 티비드라마도 보고 세모녀가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 나눌 생각에 동생과 날을 잡았더랬다. 하지만 엄마는 딸들 싸준다며 젓갈을 끓이고 씻은 채소를 옮기며 일하기에 바빴다. 퍼주는 일이 엄마에게 가장 중대한 사명인양 잠시도 자리에 앉지 않고 움직이는 엄마. 오이소박이와 열무김치를 담으려고 쌓아둔 색색의 반찬통을 한쪽으로 치우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엄마가 해주는 반찬도 정말 맛있고 고맙지. 일하는 딸한테 진짜 큰 도움이지. 근데 엄마, 나는 엄마의 반찬보다 엄마의 시간을 갖고 싶어. 우리랑 같이 앉아서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고 그냥 편히 앉아서 얘기할 수 있는 시간. 엄마의 시간을 주면 안될까?”


돈으로 살 수 있으면 최대한으로 돈을 들여 시간을 사라던데, 돈이 없어 시간도 없는건가.

늙은 엄마에게 작은 시간도 선물해주지 못하는 것이 내가 능력이 없어서인 듯해 씁쓸했고, 엄마가 자신의 시간대신 먹거리로 나를 채워주려는 것이 내가 부족한 자식이어서일까봐 서글펐다. 그 마음을 꾹꾹 눌러담으며 꺼낸 말이었다. 볼멘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는 내 말을 듣는 엄마의 얼굴은, 오래 전에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이십년 전 갓난쟁이를 안고있던 현관 앞에서 보았던 얼굴.


지금껏 엄마에게 시간은 그런 의미였다. 자신에게조차 주지 못하는 것.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어서 집안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했고, 자기 몸을 갈아서라도 자식을 멉이고 입히며 살아야했다. 여행을 가고 담소를 나누며 여유를 누리는 것은 평생의 사치였다. 그렇게 해서 키워낸 자식인데 엄마의 시간과 마음을 모를리가 있나. 눈에 밟히는 어린 자식을 두고 시장통으로 향했던 젊은 엄마의 마음을, 차마 시간을 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절절한 그 마음을 어떻게 모를까. 오십도 넘은 자식이 엄마가 나랑 안 놀아준다고 투정일리가 있나. 지금껏 그렇게 살아야하는 엄마가 안쓰러워 이제는 조금만 내려놓으시라고, 자식들이 바라는건 배를 채우는 것보다 엄마의 행복이라고 알려드리고 싶을 뿐이었다. 엄마와 함께 할 시간이 이제 많지 않으니까.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며 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엄마곁에서 반찬을 나르고 통을 옮겼다. 엄마는 통에 김치를 담았지만 나는 거기에 시간을 넣었다. 시간을 내주는 법을 모르는 엄마에게 딸의 시간을 내준다. 짧은 안부, 무심한 통화, 잠깐의 방문, 그런 시간들이 모여서 엄마에게로 흐르면 엄마의 시간도 늘어나지 않을까? 조금씩, 되는대로, 내 시간을 엄마에게 보내면 엄마에게도 내게 보낼 시간이 조금씩 생기겠지. 시간이야말로 ‘노년의 엄마’를 돌보는 일이 늘어가는 ‘중년의 딸’이 가장 많이 보내는 선물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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