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청소를 할 수 있는 나이

by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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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같은 명절이 아니더라도 친정에 갈 일이 있으면 아버지는 꼭 자식들 오기 전에 화장실 청소 부터 하셨다. 평소에도 일이 있어 전화 드리고 찾아가면 현관에서부터 하수구 대신 내 코를 뚫어버릴 것 같은 진한 락스 냄새가 풍겼다. 손님도 아닌데 뭘 그리 청소를 열심히 하냐물었더니 ‘손주들이 할아버지 집 냄새난다고 오기 싫어하면 어쩌냐’고 얘기하셨다. 노인네 냄새날까 꼼꼼하게 씻고 로션도 잘 바르시던 아버지, 여든이 넘어서도 계절마다 옷 사입기를 즐기시는 아버지. 사위가 연락 없이 찾았다 가더라도 부끄럽지 않으려고 변기를 박박 닦으시던 아버지.


그런데 이제는 친정에 가자마자 콧잔등을 오므리며 화장실 환풍기부터 켠다. 화장실 냄새를 못 맡으시는 건지, 청소하는 일이 힘에 부치시는 건지, 묵은 소변냄새와 물때냄새가 집안에 가득하다. 변기에는 미처 닦이지 못해 말라붙은 누런 방울자국이 보이고 세면대 안쪽에는 곰팡이도 보인다. 남편은 아버지가 민망해 하실까봐 아무 말 하지 않고 얼른 화장실 청소를 하고 나온다. 요즘엔 으레 자식들이 오면 화장실 청소를 해주니 미리 청소하시지도 않는다. 꼿꼿하고 깨끗한 모습을 보이는 체면치레보다 허리 숙여 구석구석 닦아대는 수고를 한 번 더 덜 하는 것이 중요해지신 것인가. 저 영감이 이제는 청소도 제대로 안하고 지저분하게 쓴다고 타박하는 엄마의 구박도 약효가 다 된 듯하다.


여름 끝 무렵 몇 가지 가져다드릴게 있어 남편과 함께 부모님이 안 계실 때 친정에 들렀다. 냉장고에 음식을 넣고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하고 나서 현관입구를 보니 작은 알갱이가 쓰레기통과 바닥에 가득했다. 깨를 쏟으셨나보다고 들여다보니 수십은 넘어 보이는 애벌레와 부화를 마친 번데기껍질이었다. 음식물을 같이 버리셨는지 주변에 온통 끓고 있는 벌레 때를 보니 기가 막혔다. 약장을 뒤져 살충제를 꺼내와 사정없이 뿌려댔다. 이게, 눈에 안 보이시나. 지난 봄에도 나무에 낀 벌레를 못 보셔서 잘 자라던 나무가 속절없이 죽어버렸다. 잘 자라던 벤자민 나무가 자꾸 마른다면서 물도 주고 영양제도 주는데 잎이 다 떨어진다고 속상해하셨다. 그러시냐 대꾸하고 나무를 살펴보니 잎이고 가지이고 온통 허연 깍지벌레로 덮여있었다. 이러니 물을 준다고 살아날 리가 있다. 하나하나 손으로 잡아내고 물샤워를 해줬는데도 결국 살리지 못했었다. 그 벌레도 알아보지 못하시는데 요만한 벌레도 신경 쓰지 않으면 못 알아채셨겠지.


아끼는 식물, 집안의 벌레, 화장실의 얼룩. 자신의 몸과 자기의 생활을 스스로의 힘으로 살피고 돌볼 수 있는 나이는 몇 살까지 일까.


시아버지는 근처 실버타운에 입주하셨다. 오늘로 딱 열흘이 된다. 공직자로 정년퇴임하신 만큼 정갈하신 분이셨지만, 생활력은 없으셨다. 모든 관리를 돌아가신 어머님이 도맡아하신 탓이었을까. 밥 차려먹는 것도, 옷을 빠는 것도 당신 손으로 하시지 못하셨다. 필요한 일이 생기면 그에 맞게 두 아들에게 전화를 거셨다. 청소는 남편이 했고, 반찬은 형님이 해다 드렸다. 여든 후반에 들어서시면서 부터는 아버님이 생활을 돌보는 일도, 그 아버님을 돌보는 일도 다들 힘에 부쳤다. 형제들이 오래 의논하고 아버님과 상의해서 실버타운을 선택했다. 마침 우리 집 근처에 새로 분양하는 곳이 있어 여러 번 상담을 다녀보고 결정했고 첫 입주자가 되셨다.


계약을 마치고도 들어가시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입주 날, 남편과 형님내외 두 분이 아버님을 모시고 청소부터 짐정리까지 하나에서 열까지 다 챙겨드렸다. 입주 다음날 조퇴하고 남편과 함께 아버님을 찾아갔다.

입주상담부터 이미 여러 번 방문했던 남편과 달리 나는 처음 시설을 찾았다. 실버타운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시설 자체가 처음이었다. 이전까지 요양시설이라고 하면 기력 없는 노인들이 추레하게 모여 있는 좁고 삭막한 병동을 떠올렸다. 치료와 돌봄이 가장 어려운 노인들이 마지막에 머무는 곳이라는 인상 때문이었다. 요양원과 요양병원, 실버타운을 구분하지 못했기에 그런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다.


아버님이 들어가신 곳은 이름부터 근사한 레지던스나 호텔같았다. 주차장도 널찍했고 주변 환경도 깨끗하고 한적했다. 경관도 아름답고 산바카라길도 아기자기했다. 환한 통유리로 된 문을 지나 로비를 들어서니 화사한 꽃장식과 아늑한 조명, 곳곳에 비치된 간식들이 먼저 들어왔다. 엘리베이터 역시 크고 깨끗했으며 구석에는 보기에도 폭신해 보이는 동그란 녹색 의자가 놓여있었다. 층을 오가는 중에도 서있기 힘든 노인들을 위한 배려라니, 세심한 배려가 좋아보였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겨우 3개 층 올라가는 동안이지만 엘리베이터는 천천히 올라가 천천히 문을 열었다. 이곳에선 시간도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았다. 역시나 느리게 닫히는 문을 뒤로하고 아버님 호실로 걸어갔다. 복도바닥은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웠다. 벨을 눌렀지만 번호를 눌러 현관문을 열었다.


아버님은 잠을 잘 못 잤다 하셨다. 안색은 전과 다르지 않아보였는데 말씀하시는 얼굴에 약간 어색함이 묻어있었다. 낯선 곳, 낯선 잠자리, 낯선 환경에 적응중이신거겠지. 단촐해진 살림살이지만 혼자 지내기 충분히 좋아보였다. 화장실 변기 옆에 달린 안전 바, 신발장 옆에 달린 간이 의자, 조작이 간단한 전등까지,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위한 디자인이 곳곳에 보였다. 베란다에 나가보니 시들한 이파리 하나 없이 잘 손질된 산세베리아와 금전수가 놓여 있었다. 기르던 식물들도 다 정리하고 두 개만 가져오셨구나. 가벼워진 채 남쪽으로 들어오는 햇볕을 받고 있는 두 식물이 홀가분해 보였다.


- 아버님, 음식은 입에 맞으셨어요?

- 어제 저녁은 괜찮더라. 오늘 점심은 비빔밥이 나왔는데, 그건 별로더라.

- 잘 안 맞아도 다양한 메뉴가 나오니까 조금씩 드셔보세요.


평소엔 음식에 대해 물어보면 괜찮다는 말만 하시던 분이 별로란 말을 꼭 붙여 꺼내신다. 남자들은 불만이 있어야 리뷰를 남긴다고 하던데, 아버님도 그러신가 싶어 웃음이 났다. 남편과 함께 아버님에게 이것저것 물어도 보고 필요한 것을 알려드리고 일어섰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여기 너무 좋다, 나도 나중에 이런 데서 살면 좋겠다, 커뮤니티 프로그램도 좋더라, 아버님 좋아하시겠다, 식당도 진짜 예쁘지 않냐. 남편도 말했다. 슬롯복지사도 있고 의료관계자도 있고 처음 오픈한 거라 이거저거 신경도 많이 쓰더라. 아버지도 금방 친구도 사귀고 편히 지내시면 좋겠다. 약간 높게, 약간 빠르게. 차창 밖을 보며 남편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 자기 생활을 스스로 꾸릴 수 있는 건 언제까지일까?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언제까지일지. 그런데, 그때는 또 그때 나름대로 다른 삶의 모습이 있지 않을까? 딱히 남편에게 대답을 기대했던 건 아닌지라 나도 무심히 대꾸했다. 그렇지, 그때까지 잘 살아봐야겠지? 지금은 알 수 없겠지?


잠시 말을 멈추고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길게 펼쳐진 논밭 위로 가을이 천천히 덮여가고 있었다. 짧은 가을이 스치듯 지나고 나면 금방 겨울이 오겠지. 겨울이 내리기 전에 해내고 싶은 일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아직 이루지 못한 꿈들이 누렇게 익어가는 벼를 따라 흔들리며 따라오는 듯 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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