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나누긴 했지
갑작스런 허리통증이 가시질 않아 끙끙 앓던 팔순 엄마가 결국 나를 찾았다. 다행히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에 통증의학과가 있었다. 운전을 못하는 내가 부지런히 움직이면 모시고 다닐만했다.
두 번째 진료일, 역사에서 엄마를 만나 함께 병원으로 올라갔다. 첫 진료에 비해 한결 편안하게 진료를 받고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탔다. 개찰구를 나섰는데 에스컬레이터가 멈춰있었다. 몸이 불편한 엄마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출근 시간도 아닌데 사람들이 몰려있었고, 떠밀리듯 나와 엄마까지 타자 엘리베이터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버렸다. 엄마가 불편해 하시려나 염려되어 몸을 돌리는 순간, 내 앞에 선 키 작은 아주머니 한 분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크고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젊은 사람은 좀 내려서 걸어가지, 왜 엘리베이터를 타나!”
예상치 못한 타인의 불쾌감이 내게로 선명하게 쏟아졌다. 어떤 슬롯적인 필터도 거치지 않고 나온 날 것의 적의였다. 나 말고 다른 젊은 사람이 있나 둘러보고 싶었지만, 비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 머리색이 제일 검었다. 분명 나를 향해 하는 말이었다. 나도 모르게 사과의 말부터 나왔다.
“어머니 모시고 가느라 그래요. 죄송합니다.”
의식해서 입 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딱히 그분을 향한 대답이 아니라 모두에게 하는 변명 같았다. 엘리베이터는 멈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느리게 움직였다. 겨우 한 층 올라가는건데.
그때 내 뒤쪽에서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에요. 다 알아서 하는 거지.’나보다 먼저 짐을 들고 타신 초로의 여성분이었다. 그러자 ‘젊은 사람이어도 아플 수도 있고 다 사정이 있는 거지. 그런 거 말하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그러면 안 돼’하는 또렷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일흔은 족히 넘어 보이는 할머니셨다. 뒤이어 그럼, 그래야지, 요즘에 그러면 큰일 나, 여기저기서 맞장구치는 말이 들려왔다. 순식간에 엘리베이터 안에 다정한 말들이 가득 찼다. 키 작은 아주머니는 짜증스럽게 얼굴을 구기더니 거칠게 숨을 뱉고 고개를 틀었다.
불편한 마음이 안도감으로 바뀌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띵’소리와 함게 문이 열리자 얼음땡 놀이하듯 굳어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사람들 틈에서 엄마 손을 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개찰구를 빠져나와 지상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병원을 찾을 때보다 한결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엄마, 그러고 보니 아까 나보고 젊은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았어? 내가 동안이긴 한가봐?”
슬며시 웃으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대답대신 내 손등을 두어 번 토닥였다. 바람보다 더 따스한 손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