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비록 월세일지라도.

by무 지 개

지수에게 행복은 그녀의 공간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편하게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밖에서 맛있는 것을 사 먹는 것 또한 좋지만, 요즘은 서울 어떤 곳을 가도 웬만한 곳은 웨이팅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한 자리에서 몇 시간씩 앉아있는 것은 민폐 손님이 될 수 있으니, 적당히 먹고 또 적당한 곳을 찾아 자리를 이동해야 한다. 젊은 날에는 유명한 카페나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이 재미있었지만 이제는 유행을 좇는 일은 좀 버겁다.


지수는 뭔가를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일을 좋아한다. 요리도 그중 하나이다. 월세 집으로 이사 온 후 지수는 자꾸 뭔가를 굽고 만든다. 친정에서 나와 '독립된 주방'을 다시 갖게 되어 그녀는 무척 신이 난다. 주방을 선점한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주방은 가족 구성원을 먹여 살리는 일을 하는 장소이며 냉장고, 가스레인지, 오븐, 전자레인지 등 집에서 가장 많은 전자제품과 식기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곳이다. 그곳에선 물과 불이 동시에 나오고 일상의 작은 소음부터 맛있는 소음까지 한데 어우러진다. 주방의 통치권을 갖는 자는 그릇과 조리구, 양념통의 위치를 정하며 음식 재료의 선정과 보관과 같은 그 모든 것을 바카라임을 진다. 따라서 주방의 통치권자는 한 명이어야 하며, 그래야 편하다. 지수는 친정 살이를 할 때 이 역할을 하지 못해 못내 답답했다. 친정엄마의 살림을 들어 엎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엄마를 도와 살림을 안 할 수도 없으니 이 애매한 경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녀에게 주방을 갖는 일은 '그녀의 통치권'을 되찾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친구가 놀러 오기로 했다. 지수는 그녀가 오는 시간에 맞춰 빵을 발효하고 굽는다.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좋은 음악을 틀어놓는다. 냅킨을 접어서 그녀의 자리에 단정히 놓는다. 어떤 그릇에 서빙을 할지, 어떤 물컵과 찻잔이 좋을지를 고민한다. 친구가 좋아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이 약간의 긴장과 함께 그녀에게 활력이 된다.

"어머, 지수야 너 성공했구나! 이런 집에서 요리하고 베이킹하는 삶, 너무 좋겠다. 성공했네!"

집에 놀러 온 친구의 멘트에 지수는 너무 황당해서 빵 터진다.

"야야, 강남 아파트를 자가로 갖고 있는 사모님께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거 대출이 얼만데야~ 대출 이자 내느라 죽겠다 죽겠어"

"우리 집은 월세다 월세! 외벌이에 월세 내고 공과금에, 애들 교육비까지. 정말 내가 이사하고 나서 지금까지 잠을 편히 못 잔다야"

월세에 살든 강남에 아파트가 있든 다들 돈 때문에 허리가 휘는 세상이다. 강남에 아파트 있는 사람들은 돈 걱정 안 하고 사는 줄 알았는데 사는 건 다들 비슷하다. 지수는 현재 그녀의 처지가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친구의 말을 듣고 보니 아예 망한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있든 없든 그녀의 통치권 아래에 있는 주방이 있고, 그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 그리고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비록 월세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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