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집에서 노니?

by무 지 개

오랜만에 지수는 결혼식에 간다. 나이가 40이 넘어가니 청첩장을 거의 받을 일이 없다. 게다가 온라인 게임을 그만두고 나니 결혼식은 더더욱 갈 일이 없다. 그런데 전 온라인 게임에서 아끼던 후배가 결혼을 하게 되었고, 장장 1년 전부터 결혼 날짜를 알려주는 바람에 아주 오랜만에 결혼식에 가게 된 것이다. 지수는 설레었다. 후배의 기쁜 날을 축하해 줄 수 있어서 설레었고,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하면서 설레었다. 사실 지수의 후배는 지수보다 먼저 온라인 게임을 그만두고 이직을 했다. 딱 부러지고 영특한 친구라 지수는 그때에도 그녀가 더 넓은 곳으로 훨훨 날아가리라고 생각했었다. 지수의 예상대로 후배는 글로벌 무대에서 어린 나이에 임원급으로 성장하였고, 그녀의 커리어 행보는 지수의 로망이었다. 그런 후배가 지수는 자랑스럽고 대견했다.


결혼식 날이 다가오면서 지수는 걱정이 조금 되었다. 결혼식에는 전 온라인 게임 동료들도 올 터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친했던 몇몇을 제외하고는 연락을 하고 지내는 사람이 없었다. 육아 휴직 후 스웨덴 유학을 가는 바람에 더더욱 전 온라인 게임동료들과 관계가 소원해진 상태였다. 같이 가는 사람 없이 혼자 결혼식에 가게 된 지수는 혹시 전 동료들을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무슨 일을 한다고 해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프리랜서로 일한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집에 있어요...'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이렇게 말하든 저렇게 말하든 면이 서질 않는 대답이었다.


눈이 부시게 화창한 날이었다. 야외 결혼식 장은 이미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즐거운 대화가 한창이었다. 지수는 서둘러 신부를 찾았다. 다른 사람들과 불필요하게 대면하고 싶지 않아서 다른 곳은 둘러보지 않고 신부 대기실만 찾아 시선을 고정했다.

"어머, 너무 예쁘다. 결혼 축하해!"

"선배님, 와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몇 년 동안 못 본 후배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것을 보니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 마음 같아선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며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가장 바쁜 신부의 시간을 뺏을 순 없었다. 신부와 사진을 찍고 나온 지수는 괜히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낯이 익은 사람과 눈을 마주칠까 봐 고개를 쉽게 들 수가 없었다.


"자, 이제 사진 찍겠습니다. 산랑 신부 지인분들 모두 나오세요~"

사진사의 부름에 하객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수도 일어났다. 사진은 아까 신부와 함께 찍었으니 그냥 가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입구로 나가려고 일어섰는데, 낯익은 사람과 눈이 딱 마주쳤다. 낯은 익은데 그동안 안 본 세월이 길어서 그런지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상대는 지수의 선배였다. 사수, 부사수의 관계는 아니었지만 업무적으로 몇 번 마주쳤던 사람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어머, 안녕? 너 그.... 지.. 수? 맞나?"

"아 네, 맞아요. 기억하시네요"

"응~나도 사실 좀 가물가물하긴 했어"

"제가 회사 그만둔 지 오래되어서 얼굴과 이름이 잘 매칭이 안되네요. 먼저 인사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래그래~ 근데 요새 뭐 해?"

"아, 저는 뭐 그냥..."

"집에서 노니?"

지수는 그 말이 너무 직설적이어서 당황스러웠다.

"아하하하, 놀긴요. 집안 일하죠~"

지수의 입에서 능청스러운 대답이 나왔다.

"그게 그거지 뭐. 좋겠다~"


지수는 선배가 악의를 가지고 한 말은 아니라는 것, 그냥 그녀의 화법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수는 예나 지금이나 바깥일이 너무도 하고 싶다. 그녀에겐 일을 통해서 얻는 성취감이 매우 크다. 그녀는 왠지 선배에게 사실 집안일을 선택해서 하고 있는 게 아니고 바깥 활동이 좌절되어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다는 설명을 하면 더 초라해 보일 것 같아 그냥 입을 닫았다. 지수는 어쩌면 좀 억울했다. 가정에 생활비를 벌어오는 일을 제외한 모든 일을 "집안일"로 퉁치며 그것들을 전부 그녀가 해내지만, 그 어떤 보상이 없는 일. 가장 가까운 가족들 마저도 '집에 있는' 그녀를 부러워하며 그녀가 하는 모든 일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 온라인 게임을 다닐 때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해내는데도 자꾸 어깨가 움츠려드는 일. 그것이 바로 현재 그녀가 하고 있는 일이어서 그녀는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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