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는 오늘 스타트업 회사와 면접이 있다. 면접은 2시이지만 1시 40분에 도착하여 건물을 둘러본다. 건물은 둘러볼 필요도 없이 매우 아담하다. 경비실 같이 보이는 곳과 택배함,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끝이다. 어디 앉을 곳도 없어서 어정쩡하게 엘리베이터 옆 계단에 서 있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지수를 힐끗힐끗 쳐다본다. '저 사람은 왜 저기 서있지? 하는 눈초리로. 1시 50분이 되자 사전 안내받은 대로 인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건다. 통화음이 길게 울리다가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조금 후 다시 걸어주세요' 안내 멘트가 흘러나온다. 지수는 문자를 보낸다.
'안녕하세요, 오늘 면접을 보기로 한 김지수입니다. 1층에 도착했습니다.'
답이 없다. 면접 시간이 거의 다 되어 다시 한번 전화를 걸어보지만 담당자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이미 시간은 면접 시간을 넘겨 2시 5분이 되었다. 인사 담당자가 면접 시간에 나타나지 않고 연락이 안 되는 경우는 살다 살다 처음이었지만 지수는 '스타트업이라 다들 미친 듯이 바쁜 건가?' 하며 짜증이 올라오는 걸 애써 참는다. 2시 10분이 되었다. 인사 담당자는 여전히 연락이 안 된다. 1시 40분부터 1층 계단에 서 있었던 지수는 다리가 슬슬 아프다. 이제는 화가 좀 나기 시작한다. '이게 뭐야? 인사 담당자가 기본적인 시간 개념이 없다니. 면접자를 얼마나 우습게 알면 이래?'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자리를 뜨고 싶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지수 쪽이니 쉽사리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시곗바늘이 2시 15분으로 향하는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아, 오늘 면접 보러 오신 분이죠? 1층이세요? 그럼 4층으로 올라오세요"
미안하다는 이야기도 없이 4층으로 올라오라는 담당자에게 시간 개념에 대해 쓴소리를 확 질러주고 싶다. 그러나 마음만 그렇다. 지수는 찍소리 못하고 '네' 하며 올라간다. 담당자가 사무실 문을 열어주자 촘촘히 앉은 사람들과 컴퓨터가 한눈에 들어온다. 부산한 사람들 틈을 헤치고 조그만 회의실로 들어간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대표님 모셔올게요"
잠시 후, 한 남자가 노트북을 들고 들어온다. 회사 리서치를 하면서 대표가 나온 영상을 찾아봤던 터라 얼굴이 낯이 익다. 대표는 지수 나이 또래의 남자로 한 대기업 공채로 입사해서 IT엔지니어로 일하다가 퇴사하고 회사를 차렸다.
"저는 사실 지수 씨를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 네?"
"지수 씨 이력서를 보고 저희 회사 핏과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업부장이 하도 추천을 해서..."
앉자마자 대표 입에서 저런 이야기가 나올 줄이야. 그래도 지수는 정신을 차리고 이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한다. 대표는 지수의 경험에 대한 질문보다는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두고 이렇게 적는 것보다는 저렇게 적어야 하고, 이게 눈에 잘 안 들어오며, 이것만 봐서는 지수 씨가 우리 회사에서 얼마나 퍼포먼스 내줄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지수는 마치 이 시간이 이력서와 포트폴리오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시간 같았다.
"그런데 왜 외국 유학을 가신 거죠? 본인 성장을 위해서 갔다라면 굳이 외국까지 갈 필요가 있었을까요? 대기업 나와서 스타트업을 가는 게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었을 텐데"
"네, 그런 방법도 있었지만 제가 당시에 아이들이 어려서 육아를 병행해야 했기 때문에 대기업을 나와 스타트업으로 이직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스타트업은 업무 강도가 세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이 자유롭지 않으니까요."
"아, 아이가 있으시군요. 저는 결혼을 안 해서 아이를 키워보지는 않았지만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대표는 말했으나, 그렇다고 지수의 결정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으레 워킹맘에게 하는 "아이도 키우고 일도 하느라 힘드시겠어요"와 같은, 아이도 키우고 일도 하는 건 네 문제고 나와는 상관없어와 같은 형식적인 멘트 같았다. 문득 지수는 아까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 빼곡히 앉아있던 사람들의 연령대를 떠올려봤다. 애엄마처럼 보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는 걸 알아차리니 아, 이 사람은 나를 뽑지 않겠구나. 했다. 대표는 지수의 연봉을 가지고도 너무 높다 하고, 대기업에서만 있었던 사람은 스타트업에서 잘 버티지 못하더라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 '연봉을 후려치려고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하고 지수는 잠시 생각해 본다.
"전 계약직이든 프리랜서든 다 가능합니다. 연봉도 협상 가능하고요."
그제야 대표는 언제부터 출근 가능한지, 출퇴근 시간은 어떤지 등을 물어본다. 지수는 연봉은 아무래도 괜찮고 일단 그녀의 커리어에 다시 불을 지피고 싶었다. 그래서 뭐든 맞출 생각이다.
"네, 면접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저희가 추후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수는 회사 건물을 나오면서 연락을 못 받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연락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