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계약 이후로 지수는 알바 사이트를 수시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알바라도 해서 아이들 학원비라도 보태야겠다는 심정으로. 젊을 때 하는 알바는 그림이 예쁘다. 어떤 알바를 해도 젊을 때 하는 고생은 사서 하는 거라고, 슬롯 경험도 쌓고 용돈이나 학비를 스스로 번다는 착실하고 건실한 젊은이의 이미지이다. 그러나 40대의 알바는 그림이 좀 초라하다. 나이 들어서 고생하는 아줌마의 이미지이랄까. 사실 지수에게는 알바를 알아보기로 마음먹은 것부터가 큰 용기였다. 대기업을 10년 넘게 다니고 커리어를 위해 휴직을 하고 유학도 갔다 온 그녀였다. 동네 알바가 부끄러운 것보다 이걸 시작하면 영영 그녀의 커리어가 물거품처럼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경제적 고통이 두려움과 자존심을 눌렀다.
알바에는 아주 다양한 일이 있었다. 주방 보조부터 카페 업무, 반려견 산바카라 시키기, 과외 등등.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지수는 막막했다. 그동안의 잡 서칭에서는 지수의 커리어를 배경으로 회사를 지원했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느냐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알바는 지수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아이들 밥은 챙겨야 했기 때문에 마감 조를 찾는 일은 할 수가 없었다. 회사 다닐 때처럼 주중 아침에 나가서 4~5시에 들어오는 알바는 생각보다 찾기 어려웠다. 그리고 경쟁률이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셌다. 지원 버튼을 누르려고 보면 40~50명이 이미 지원했다는 표시가 나와있었다. 최저 시급인데도 이 정도라니. 알바 프로필에는 그녀가 애정하며 쌓아 올린 커리어는 날려버리고 영어가능, 주방 보조 가능, 베이킹 가능을 넣는다. AI가 코칭해 주는 대로 프로필을 고치고 나니 자신감이 솟는다. 지수는 어느 학교의 급식 조리원을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을 했다. 최저 시급이었지만 근무 시간이 좋았다. 아이들 등교시키고 출근해서 오후 2시 반 정도에 퇴근할 수 있었다. 또 동네 베이커리에서 샌드위치 만드는 업무에도 지원을 했다. 전문 베이커리 경력은 없지만 집에서 홈 베이킹을 즐겨하고 샌드위치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멘트도 넣는다. 혹시 몰라 담당자 번호에 문자까지 넣는다. 곧 연락이 올 것 같은 느낌에 지수는 오랜만에 기분이 좋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흘렀다. 지수가 지원했던 공고는 마감이 되었다. 연락은 오지 않았다. 이상하다. 왜 연락이 안 오지? 처음에 의아했던 감정이 서서히 패배감으로 바뀌었다. 좌절감, 창피함, 무력감이 뒤섞인 가운데 그녀는 이 슬롯 속에서 그녀의 경제적 무가치함이 다시 한번 증명되는 것 같아 고통스러웠다. 어느 날 장을 보고 온 지수는 장을 봐 온 것들을 주방에서 정리하다가, 새로운 알바가 등록되었다는 알림에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열렬히 알바를 검색하고 있는 자신을 본 지수는 그대로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내가 왜 이렇게 무능력하게 되었을까.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다시 예전처럼 돈을 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