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주부터 출산해도 될 정도로 잘 내려왔다던 배가 34주부터는 이상하게 위로 올라갔다.
매일 1시간 걷기, 산전 요가도 소용없었다.
막달이 다가올수록 가슴은 답답하고 발걸음은 가벼워졌다.
다리의 부종이 심각해졌다.
검진 결과는 정상인데, 손가락으로 종아리를 누르면 살이 푹 하고 손가락 모양으로 꺼졌다.
그렇게 힘겨운 막달을 지나, 가진통 한번 없는 출산예정일을 맞이했다.
“아기가 커서 더 기다릴 수는 없고, 진통하게 도와드릴게요.”
오전 11시 20분.
오전 진료 후 범상치 않은 진통이 시작됐다.
나는 진통 앱을 내려받아 진통 시간을 체크했다.
오후 12시 30분.
진통 앱에서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알림이 떴다.
두려웠다.
산전 수업을 너무 열심히 한 탓일까?
출산의 공포가 극에 달했다.
출산의 고통은 모르는 게 약이다.
닫히는 현관문 틈으로 내 신발이 보였다.
‘다시 신을 수 있겠지?’
택시를 잡으려다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왜 그래?”
신랑이 나를 멈춰 세웠다.
“바나나 우유 먹어야겠어.”
“지금?”
“응. 이게 마지막 식사가 될 것 같거든.”
오후 4시.
출산해야 할 진통의 강도가 지속되었다.
병실을 옮겨 출산 준비를 했다.
서 있기 힘들 정도의 진통이 생겼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했다.
오후 11시.
무통 주사를 맞았지만,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다.
7시간의 진통에도 자궁문이 열리지 않았다.
몸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진통과 상관없이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나는 수술대에 올랐다.
마취에서 눈을 떴을 때 의사 선생님의 얼굴이 보였다.
“자연분만이 어려운 자궁이었다.
......
둘째 수술은 어려울 수 있으니, 꼭 우리 병원으로 오세요.”
둘째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박혔다.
‘죽을 뻔했는데. 둘째?’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산모님, 힘드셔도 중간중간 자세 바꾸면서 움직이셔야 해요.”
병실에 들어온 간호사님이 말했다.
“왼쪽 다리가 안 움직여요.”
“무통 주사 맞고 수술하셔서 그럴 수 있어요. 금방 움직이실 거예요.”
하지만.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 왼쪽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아기도 보지 못한 채, 소변줄을 차고 누워만 있었다.
아니, 사투 중이었다.
수술 부위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고, 왼쪽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른쪽 다리만 간신히 버둥거렸다.
‘움직여.’
아무리 생각하고 힘을 주어도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왼발의 발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산모님 움직이셔야 해요.”
“안 움직여요.”
간호사님이 모래주머니로 수술 부위를 누르며 복대를 고쳤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나를 본 간호사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빠기야.”
신랑이 신생아실에서 찍어온 사진을 내밀었다.
사진 속 아기는 쭈글쭈글 힘이 없어 보였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나흘째 아침.
“산모님 이렇게 안 움직이시면 곤란해요.”
간호사님이 답답한 듯 말했다.
“왼쪽 다리가 안 움직인다고요!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하는 거죠?”
내 인생은 이럴 거였구나.
너무 애쓰며 살지 말걸.
병실에 혼자 남았다.
더 이상 움직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오른쪽 엉덩이가 배겼다.
‘오래 누워 있긴 했나 보네.’
아무 생각 없이 오른쪽 다리에 힘을 주며 자세를 바꿨다.
그때.
왼쪽 발가락이 움직였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병실 문이 열렸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세 분이 병실로 들어오지 못한 채 서 있었다.
“다리가, 안 움직이신다고 들었습니다.”
공포는 내게만 머물지 않았다.
“움직여요.”
모두에게 지옥 같았던 시간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걸어서 신생아실을 찾을 수 있다는 게 꿈 같았다.
“빠기 어머님, 아프시다고 들었어요. 이제 괜찮으신 거예요?”
“네.”
“빠기도 힘들었었나 봐요. 출산 당일 눈에 실핏줄이 많이 터져있었어요. 좋아지긴 했는데, 아직 빨개요.”
빠기와 나의 첫 만남은 참 볼품없었다.
간신히 걸음을 내딛는 엄마와
터진 실핏줄로 아직도 눈이 빨간 아기.
우리의 만남은 기적의 연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