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색입니다.

by젤리곰


아기를 낳으면 시간이 빨리 간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빠기는 중기 이유식에 접어들었다.


고기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는 속으로 주문할 내용을 되새겼다.

“소고기, 안심 주세요.”

“뭐 하시게요?”

“이유식 만들려고요.”

고기를 확인한 정육점 사장님이 말을 이었다.

“우리가 지금 안심이 다 나갔네. 이유식은 꼭 안심으로 안 넣어도 돼요. 다른 부위도 괜찮아요.”

정육점 사장님이 다른 부위들의 이름을 말하며 추천해 주셨다.

방금 들은 내용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나는 웃으며 정육점을 나왔다.

빈손으로.


빠기는 조리원에서처럼 다시 예민해졌다.

유모차에 잘 있다가도 갑자기 울었다.

울기 시작하면 쌀과자, 장난감, 미디어도 소용없었다.

오로지 엄마가 안아야 울음을 그쳤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유모차에 있던 빠기가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얼른 쌀과자 하나를 꺼내 빠기의 손에 쥐여줬다.

빠기는 손에 들린 쌀과자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울음을 터트렸다.

“으앙. 으앙.”

나는 유모차를 끌며 걸음을 재촉했다.

‘유모차 끌고 달리면 이상하겠지?’

빠기의 울음은 악으로 바뀌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와 빠기를 쳐다봤다.

어떤 사람은 걸음을 멈춰 서기도 했다.

다들 내게 한 마디 씩 하고 싶은 눈초리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버거워진 나는 유모차를 세우고, 빠기를 한 손에 안았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유모차를 끌었다.

1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30분이나 걸려서 도착했다.

"부자와 당나귀라는 동화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어."


몇 번 이런 일을 겪은 나는 빠기와 단둘이 하는 외출을 꺼렸다.

덕분에 빠기는 예민함과 낯가림까지 더해져 지나가는 사람과 눈만 마주쳐도 울었다.


문화센터 수업이 끝나고, 조리원 동기에게 육아 상담을 했다.

“빠기가 요즘 낯가림이 너무 심해졌어요.”

“낯가림은 사람을 자주 보여주는 수밖에 없어. 그래서 나도 요즘 일부러 지하철 타고 그래.”

“효과 있어요?”

“효과 있더라고. 한 달만 해봐. 낯가림 많이 없어져.”


다음날 나는 빠기와 함께 전철을 탔다.

사람이 많지 않은 시간이라 아기를 데리고 타기에도 좋았다.

지하철에서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아기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귀엽다.”

“예쁘다.”

꼭 인사를 건넸다.

그럴 때면 빠기는 어김없이 울었다.

그리고 인사가 어색했던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한편으론 울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나도 낯을 가렸다.


지하철을 타는 건 효과가 있었다.

우리 둘 다 낯가림이 조금 없어졌다.

나는 어르신들의 인사가 어색하지 않았고, 빠기는 울지 않았다.

“아들이야?”

“딸이에요.”

“엄청 크네.”

짜기라도 한 것처럼, 어르신들의 질문은 모두 같았다.

이 정도면 대답을 미리 녹음해 놓고 틀어도 될 것 같았다.

처음에는 괜찮던 “아들이야?”라는 질문에 점점 속이 상했다.


내 눈에는 너무너무 귀여운 딸인데.


지하철을 타기 전, 얼마 없는 빠기의 머리카락을 예쁘게 묶었다. 그리고 핑크색 원피스를 입혔다.

내가 꾸미고 나온 것처럼 당당해졌다.

지하철로 가는 발걸음엔 흥겨움이 묻어났다.


지하철 플랫폼 앞에 서 있는데, 지나가던 할머니가 빠기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이쁘다. 내 손주도 딱 요만한데."

이제 질문이 나올 차례였다.


“장군이네.”


아들도 아니고, 장군!

“할머니. 핑크색이잖아요. 치마, 핑크색!”

“아이고, 그러네. 미안해.”

할머니는 내가 웃긴 건지, 멋쩍으신 건지 소리 내 웃으셨다.

나는 지하철을 타자마자 휴대전화를 켰다.

그리고 예쁜 꽃이 그려진 분홍색 모자를 구매했다.


이번엔 누가 봐도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