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다. 낯선 길을 따라 걷는다. 고개를 살짝만 들어 볼을 스치는 꽃을 보고 그늘을 만드는 나무를 본다. 조금만 돌려보면 돌담 위로 멀지 않은 듯 닿지 않는 오름이 보인다. 시선을 빼앗겨 걷다 보니 길을 잃어 어디쯤인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꽃 향기가 닿고 햇빛이 살랑이는 나뭇잎을 본다. 바다를 머금은 바람이 스쳐 지나가고 소란스런 재잘거림이 들려온다. 잊고 있던 세상이 있고, 잃었던 길이 있다. 길을 잃고 나서야 세상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