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해볼래

갑작스레 시작하게 된 딸의 포켓몬스터 게임

by무색무취

딸이 태어나기 전에 플레이스테이션의 1인용 RPG 게임들을 꽤 열심히 하던 시절이 있었다. <Last of Us>, <Spider-Man>, <GTA>, <Horizon> 시리즈 등을 열심히 했었고, 다른 사용자들과 엮이지 않더라도 게임 제작사에서 공들여 꾸며놓은 화면과 스토리에 감정 이입해서 각종 퀘스트를 정복하고 나면 한 달쯤은 우습게 흘러가곤 했다. 이후에는 온라인 게임 생활, 가족과의 시간에 우선순위가 한참 뒤로 밀려났지만, 언젠가 시간이 나면 그간 못했던 게임들을 몰아서 하고 싶다는 욕구는 항상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무더웠던 어느 일요일 오후, 아내와 딸과 함께 게임과 게임기 주변기기를 취급하는 가게를 들를 일이 있었다. 실제로 게임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어서 신품 가격을 지불하는 게 부담스러워 이 가게의 중고 코너를 기웃거리기만 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저 구경만 하고 군침만 흘리다 가는 경우가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보다 훨씬 많았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새로 들어온 중고 게임을 살펴보다가 좋아하는 야구 게임이 들어온 것을 발견하고는 들뜬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꾹꾹 눌러 담으며 점원에게 계산을 부탁했다. 원하는 게임을 손에 넣어서 행복해하고 있던 내 손을 잡고 함께 귀가하고 있던 딸이 이때다 싶었는지 갑작스레 협상을 게시했다.


“아빠도 게임 샀는데 나도 집에 있는 피카츄 게임 하면 안 돼?”


아빠 나도 해보면 안 돼?


Nintendo Switch의 <포켓몬스터 레츠고! 피카츄(2018)>가 집에 있는 것을 본 딸이 그동안 하고 싶었던 감정을 내가 한껏 흥분한 시점에 기가 막히게 치고 들어와서 거절하기 힘든 제안을 불쑥 내밀었다. 아빠만 게임하고 본인은 게임을 못 하게 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딸이 간파한 것이다. 아내의 눈치를 잠깐 살폈다가 내가 딸의 나이에 이런저런 게임을 했던 것을 떠올리며 내 멋대로 시원하게 허락했다.


<포켓몬스터 레츠고! 피카츄>는 어린 시절에 컴퓨터로 여러 번 했던 <포켓몬스터 피카츄(Pokemon Yellow, 1998)>를 리마스터해서 보다 실감 나게 재해석한 게임이다. Gameboy 화면 속에 2D로 움직였다기보다는 겨우 진동했던 포켓몬들이 21세기의 Nintendo Switch에서는 기술을 구사하거나 마을을 돌아다닐 때조차도 각자의 움직임으로 나를 따라오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자 설렘이었다. 날쌩마의 ‘불대문자’나 강챙이의 ‘연속 뺨치기’가 나름의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구현되는 것은 어린 시절에 상상했던 포켓몬 세상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지는 형상이었다.

포켓몬스터 레츠고! 피카츄.jpg포켓몬스터 레츠고!

태어난 지 6년도 지난 딸이 내가 했던 게임을 한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하기도 하면서도 동시에 바카라임감이 생기기도 했다. 어차피 해보기로 한 거라고 하면, 재밌게 하면 좋겠고 이왕이면 잘 알고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시중에 파는 게임의 공략집도 사주면서 읽어보고 궁금하거나 준비해야 할 것 같은 게임 속 콘텐츠들에 관한 공부도 해보라고 일러주었다. 내가 강제성을 부여하지 않았지만, 아빠가 그렇게 얘기하고 준비해 주니까 딸로서는 꼭 읽어보고 게임을 해야 한다는 일종의 전제 조건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와서 부리나케 공략집을 온라인으로 주문하였으나, 이것만으로는 게임하고자 하는 딸의 의지를 잠재울 수 없었다. 딸의 입장에서는 허락받았으니 당장 시작해야 했다. 첫날이다 보니 게임과 게임기에 익숙해지는 시간도 필요했고 캐릭터 이름을 정하거나 게임에서 나름대로 제공하는 튜토리얼을 진행하다 보니 본격적인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도 이미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아내와 나는 딸에게 주말에만 할 수 있다는 전제조건을 제시했었는데, 딸과 협의를 한 날이 일요일이었어서 본격적인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게임 가능 시간이 대부분 소진되고 말았다. 나 같으면 무척이나 아쉬웠겠지만, 이렇게라도 포문을 열었다는 기쁨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딸의 얼굴은 오히려 뿌듯한 미소만이 가득했다.


우리 부부는 안 된다고 선언한 일은 절대로 일어나는 법이 없다는 것을 몇 년간 알려줬기에 딸이 주중에 게임을 시켜달라는 떼를 쓰는 일은 없었다. 대신 게임이 고플 딸을 위해 나는 쿠팡으로 순식간에 배송된 공략집을 함께 읽는 것으로 그 허전함을 채워주기로 했다. 딸은 본인이 주말이 되면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함께 곧 있을 플레이를 계획할 수 있다는 설렘이 가득해 보였다. 피카츄를 만나면 함께 어디로 가야 하는지 찾아봤고, 처음으로 체육관 배지를 받을 수 있는 회색 시티 체육관 관장 웅이와의 대결에 대해서도 열심히 읽어보는 것 같았다. 주인공이 출발하는 태초 마을과 회색 시티 사이에 있는 상록숲에 대해서도 여러 번 정독하는 것 같아 바카라을 사준 사람으로서 뿌듯하기까지 해서 그랬는지, 게임도 시켜주면서 계획 짜기 훈련도 시켜준 좋은 아빠가 된 것 같은 대단한 착각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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