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만큼 지혜롭다

by고로케

잘 타지던 분유가 뭉쳤다. 처음에는 어쩌다가 그런 것이겠지 생각했지만 분유 탈 때마다 반복됐다. 젖병 안에 분유가 뭉치면 농도가 맞지 않고 뭉친 분유가 젖병 입구를 막아서 아이가 잘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와이프와 나는 이 원인을 다각적으로 접근했다. 와이프 가설은 이랬다. “분유량이 늘어나서 잘 안 섞인 게 아닐까? 분유 탈 때 조금씩 나눠서 섞어 보자.” 나도 이 가설이 맞는 듯해 새로운 분유 제조법을 시도했다. 180미리를 탄다고 했을 때 80미리에 2스푼 넣고 섞고 나머지 100미리 때 2.5스푼을 넣고 섞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이 방법으로 만든 분유가 잘 안 뭉치는 듯했으나 그 이후에도 계속 뭉쳤다. 나는 분유 문제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잘 타지던 분유가 갑자기 안 타질 이유가 없었다. 유통 기한도 넉넉했다. 그러다가 나는 물 온도가 문제지 않을까 추측했다. 그런데 그 이유도 이상했다. 우리는 분유 포트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43도 일정한 온도에 맞춰 분유를 탔기 때문이다. 포트기 온도를 더 낮게 설정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새 긴팔을 입고 있는 와이프 가 보였다. ‘그래 이제 가을이잖아.’


올여름은 펄펄 김 나는 모짜렐라 치즈 마냥 끝날 듯 끝나지 않게 늘어지고 후끈했다. 그랬던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오자 선선한 기운이 집 안을 가득 메웠다. 기온이 떨어졌으니 아무리 43도로 분유 포트기를 설정해도 한 여름 때와는 분명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포트기에서 젖병으로 물을 옮긴 후에는 기온의 영향을 받을 거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와이프에게 온도 설정을 3도만 더 올리자고 제안했다.


분유 포트를 47도에 맞춰 분유를 제조했다. 여기에 와이프가 제안한 2번씩 분유를 섞는 방법도 함께 사용했다. 그 결과는 확실히 분유 뭉침이 줄었다. 젖병 안에 분유 덩어리가 녹아 없어졌다. 하루 24시간 중 분유를 달고 살아야 하는 열매와 우리에게 분유 뭉침은 꽤나 신경 쓰이는 스트레스였다. 한 편으로 육아하면서 생전 생각지도 못할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앞으로 터질지 아득하게 느껴졌다. 고작 분유 뭉침 정도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한 일이다. 이제 갓 100일 지난 아이에게 분유 뭉침으로 제대로 된 분유를 먹지 못하는 건 큰 사건일지 모른다.


이 작지만 큰 사건은 와이프와 나에게 육아를 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샘플 가이드 기준이 되었다. 문제 현상을 발견하면 문제 원인을 분석하는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이 맞는지 적용하고 틀리면 다른 가설을 세워 실행하는 방식이다. 어쩌면 육아는 사랑이라는 감정적인 영역에서부터 시작해 과학과 이성의 논리로 보완하고 다독이면서 사랑을 유지하는 것이지 않을까.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랑 그 자체만으로 불가하다. 마음으로 사랑하기 위해서 머리로 생각해야 한다.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되 그 눈길 속에는 우리 열매가 어디 불편하거나 태열이 올라오는 곳은 없는지, 손톱은 더 자라났는지 생각하며 살핀다. 지키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사랑하는 만큼 우리는 지혜로워진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