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달라진 집안 풍경을 본다. 거실에 깔린 매트리스와 아기 체육관, 널브러진 동화바카라과 장난감 그리고 빨래 건조대에 매달린 가제 손수건과 알록달록 아기 옷. 이 모든 것이 생경하다. 와이프가 아기 띠를 매고 열매를 안고 있을 때, 내가 유모차를 끌고 산바카라할 때, 어느새 열매와 함께한 세 명의 사진이 내 앨범을 채울 때, 새삼 내가 예전과 다른 지점에 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달라지고 있고 내 주변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퇴사를 하고 나서 주변을 자주 둘러본다. 물론 여유가 생겨서는 아니고 가끔씩 달라진 주변 일상이 어쩔 수 없이 툭툭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24시간 중 쓰레기 버리러 가는 시간 빼고는 23평 남짓한 집 안에서만 생활하다 보면 이전에 그냥 지나쳤던 물건 하나하나를 다른 눈으로 본다. 매일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면 어제와 미묘하게 달라진 오늘 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베란다에 쌓인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주 보다 박스 양이 적어 보여 이번 주는 배달을 많이 시키지 않은 듯하고, 여름에 쓰던 선풍기를 아직 거실에 두니 선풍기 위에 살포시 쌓인 먼지도 눈에 들어오고, 나 모르게 와이프가 동화바카라 박스에서 꺼낸 [까꿍, 까꿍] 동화바카라도 새로 보이고, 쌀쌀한 가을 날씨 덕에 산 열매의 긴팔 옷이 기저귀 갈이대 옆 파우치에 담겨 있는 모습도 선선하게 눈에 박혔다.
나는 아침에 열매와 함께 일하러 가는 와이프를 현관에서 배웅한다. 그리고 베란다를 향해 열매를 안고 누군가의 분주한 출근길을 보여준다. 나는 열매에게 “이게 세상이야. 열매가 살아야 할 세상이야.”라고 말해준다. 열매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다. 하루빨리 열매와 이런 풍경을 보고 이야기를 함께 하고 싶다. 빗소리는 어떤지, 바람은 시원한지, 분홍빛으로 물든 노을은 얼마나 아름답고 식빵에 누텔라를 발라 먹으면 얼마나 달콤한지 말이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아직 많이 흐르지 않았다.
여름에 태어난 열매는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아직 초가을이서 그런지 오래 묵은 여름 때가 다 벗겨지지 않았다. 듬성듬성 초록 때가 남아있었고 뜨거운 기운이 쌀쌀함 아래에 깔려있었다. 긴팔을 입고 가면 곧 더워지고 반팔을 입으면 쌀쌀한 그런 날씨다. 열매도 오락가락한 날씨에 적응 중이다. 반팔이 아니라 긴팔 옷으로 바꿨지만 아직 열이 많은 열매기 때문에 소재는 메쉬로 입혔다. 습도는 비가 오는 날에는 괜찮지만 바삭한 날에는 가습기를 틀어줘야 적정 습도를 유지할 수 있다. 여름에서 가을로 서서히 풍경이 변화는 시점, 열매가 맞이할 첫가을이 무사히 안착할 수 있는 섬세함이 필요하다.
와이프와 나도 이전과 다른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와이프는 복직하고 나서 새로운 시즌 프로그램을 기획한다고 분주하고 나도 지금까지 부족했던 공부와 관심 있었던 자격증을 따보려고 한다. 계절도 옷을 갈아입듯이 바뀌고 열매도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요즘 나는 틈틈이, 부지런히 달라진 풍경을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