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는 3개월의 출산 휴가를 마치고 복직했다. 나 혼자 오롯이 열매를 본다. 와이프가 아니라 내가 육아한다고 했을 때 주위 반응은 반반이었다. 어떤 사람은 ‘그래도 아이는 엄마 손에서 커야 하는데.’ 산후 우울증 때문에 와이프가 고생한 친구는 ‘정말 잘한 선택이다.’라고 말하며 응원했다. 또 다른 사람은 도우미를 써 보는 건 어떠냐는 의견도 줬다. 우리 부부 성격 상 낯선 도우미를 쓰기보다 우리 힘으로 길러 보자는 고지식한 생각이 강했다.
내가 육아를 하겠다고 결정한 이유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와이프의 경력단절이었다. 와이프는 직종 전환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와이프는 새롭게 커리어를 쌓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 상황에서 와이프가 육아 휴직을 했을 때 생기는 경력 단절을 우려했다. 두 번째는 와이프의 회사 위치였다. 와이프의 회사는 우리 집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다. 육아 휴직을 한다면 와이프가 일하는 점포에 다른 매니저가 대신 일을 하기 때문에 와이프가 복직했을 때는 지금 회사 보다 더 먼 점포로 발령 날지도 몰랐다. 아이를 출산하면 긴급한 상황이 자주 생기기 때문에 집과 가까운 회사 위치도 놓칠 수 없었다.
이런 와이프와 내 상황을 저울질했을 때 나는 내가 육아를 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나 또한 경력단절의 우려가 있었지만 나는 내 분야에서 꽤 오랫동안 커리어를 쌓았기 때문에 내가 욕심만 덜 부린다면 경력단절까지 가지 않을 자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와이프의 커리어를 더 탄탄하게 만들어야 먼 미래에 조금 더 우리 가족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 사람의 경제 활동에만 의지한 채 가정을 꾸리기에는 위태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와이프를 설득할 때 와이프도 반반이었다. 내 말처럼 커리어와 장기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는 내가 육아를 하는 게 더 설득력 있지만 그 시간 동안 열매가 성장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쉬워했다. 그런 마음에 와이프는 1시간 더 일찍 일어나 열매에게 분유를 먹이면서 조금 더 얼굴을 보았고 퇴근하자마자 곧바로 집으로 와 열매에게 달려갔다. 열매와의 시간이 그만큼 소중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린이의 1시간은 어른의 10년과 같다.’라는 말을 했다. 그만큼 어린이의 시간은 어른 보다 밀도가 높다. 이 말은 육아를 선택한 나에게 힘을 준다. 내가 1시간 동안만 열매와 신나게 놀아줘도 나는 10년이라는 가치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열매와의 1시간은 산술적인 1시간이 아니라 그 이상의 시간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열매와 보내는 1분, 1초가 소중하다. 이제 이 시간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내 인생에서 없을 페이지다. 어쩌면 지금 내가 느끼는 피곤함도, 열매의 칭얼거리는 울음도 그리워질 시기가 올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다 없어지는 것들이다. 그 생각을 한다면 지금 시간을 더 밀도 있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