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떠나는 삶

by고로케

육아는 나에게 일상이 된 일탈이다. 열매를 낳기 전에 내 삶은 모나지 않은 당구공 같았다. 이리 치면 이리 가고 저리 치면 저리 가고 모난 데 없이 심심하게 살았다. 술과 담배도 하지 않았으니 술 약속도 없고 그 흔한 모임이라는 것도 없었고 롤러코스터 같은 성공과 실패도 없었다. 그저 하루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쳐내면서 나의 기본적인 의무를 다하며 사는 온라인 게임인이자 남편이었다.


그런 내 삶 속에 열매가 갑자기 뚝 떨어졌다. 열매는 조리원에서 나와 내 품에 안긴 채 ‘앞으로 신세 좀 지겠습니다.’라는 듯 멀뚱한 표정으로 우리 집 한 구석에 둥지를 틀었다. 열매는 그런 나를 보면서 ‘어디 한번 나를 어떻게 키우나 보자.’ 라며 두고 보겠다는 얼굴이었다. 회사와 집만을 오고 가며 매일 똑같은 하루를 몇 년 동안 보낸 나에게 열매라는 존재는 이상한 나라로 안내하는 토끼 같았다.


육아의 세계는 참 이상하기도 하다. 한 생명을 키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에너지를 사점(Dead point)까지 끌어다 쓴다. 먹이고 놀아주고 재우고 씻기고 갈아주고 크게 보면 이 네 가지의 패턴을 무한 반복하면서 부모의 에너지는 바닥을 치지만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간다. 가끔씩 ‘인류의 절반이 지금 이 행위를 똑같이 하고 있다는 말이야?’라는 생각이 들거나 인류가 태어나고 수백만 년 동안 이 행위를 반복하면서 인류가 존속함을 상기하면 내가 느끼는 생경함이 더 이상의 이상함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른다.


나도, 내 와이프도, 산바카라을 하면서 마주친 이 많은 사람도 이렇게 길러졌고 누군가를 그렇게 키우고 있다. 열매 이전에는 ‘나’를 중심으로 이 세계가 돌아가는 번영과 기쁨이었다면 열매가 태어나면서 열매를 중심으로 ‘나’가 빙빙 돌아가는 세계로 뒤바뀌었다. 이것은 마치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도는 천동설이 아니라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도는 지동설을 발견한 것 같은 세계의 변화다. 열매는 나에게 이 세상을 보는 다른 눈을 뜨게 했다. 지금까지 나에게 일상이었던 것이 일탈이 되고 열매라는 이상한 세계가 나에게 일상이 된 것이다.


스마트폰 알람 대신에 열매 울음소리에 아침잠을 깨고 내 밥 보다 열매의 밥을 먼저 챙기고 울고 싶다가도 열매의 울음에 눈물이 들어가고 열매가 잠들면 그제야 잠드는 삶이 누군가의 눈에는 혀를 내두를 이상한 삶이지만 누군가는 그 이상한 삶을 매일 같이 반복하는 일상으로 마주한다. 그들에게 ‘나’의 삶이 비일상적인 일탈로 비칠지 몰라도 이제 나에게 이 일탈도 일상이 되었다.


나는 일탈이 일상이 된 삶을 살아 보는 것을 권한다. 그것이 꼭 육아가 아니어도 좋다. 그렇게 되면 내가 지금까지 살았던 일상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다. 일탈과 일상을 오고 가는 운동 속에서 자기 삶을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다면 일탈은 한 번쯤 권할 수 있다. 단. 일탈이 일탈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반복적인 일상 속으로 파고들 때 효과가 있다. ‘한 번쯤 떠나라’라는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매일 떠나라’라는 말은 쉽게 할 수 없다. 하지만 육아는 ‘매일 떠나는’ 삶이다. 나로부터 말이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