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뒤집기를 시작하면 부모는 신세계를 맞이한다. 나도 처음에는 “오! 우리 열매가 뒤집었어.” 감탄했다. 곧이어 열매는 스카이다이빙 자세로 어쩔 줄 몰라 울음을 터트린다. 나는 ‘이렇게 울 거면 왜 뒤집은 거야?’라는 생각이 들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아이가 혹시 숨 막힐까 걱정되어 되집기를 도와주며 “이렇게 팔을 몸 안쪽으로 넣어서 뒤 집으면 돼 알겠지?라고 말해준다. 열매는 그런 나를 멀뚱히 바라보다가 분유 타러 간 사이를 참지 못하고 다시 뒤집기를 하며 ‘됐고 어서 와서 다시 나를 돌려나!’라고 말하는 듯 울부짖기만 한다.
아이는 퀘스트를 깨면서 능력을 얻는다. 뒤집기를 하고, 기어가고, 일어서고, 걸어가고 단계 별로 능력을 장착한다. 그럴 때마다 부모는 아이에 대한 걱정이 커진다. 뒤집기를 하면 숨 막힐까, 기어가면 떨어지는 게, 걸어가면 넘어질까 노심초사다. 성장하는 아이는 부모의 당연한 기쁨이나 그 기쁨만큼 걱정도 늘어난다. 아이는 제 발로 일어나 걸으면서 점점 거칠고 험한 세상 속에 들어간다. 그 안에 있는 위험을 마주해야 하고 거기에는 부모의 보호막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조금 더 세상을 면밀히 구석구석 마주한다. 자기 손으로 고리를 쪼물딱 만져보고 입으로 물고 빨면서 느낀다. 스스로 뒤집기와 되집기를 하면서 땅과 하늘, 위와 아래를 경험하고, 기어가면서 방구석 탐험을 하고, 걸으면서 더 넓은 바깥세상으로 나아간다. 이런 성장의 이면에는 그것과 동등한 무게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아이는 스스로 성장하지만 그 이면의 위험은 모른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에게 늘 잔소리처럼 말한다. “조심해야 해.”
생각해 보면 성장과 동반하는 위험을 얼마나 잘 관리하는지 따라 새로운 가능성의 문이 열린다. 성장에 따르는 위험을 다독이면서 그 위험 안에 있는 성장의 씨앗을 발견하기도 한다. 아이도 뒤집기만 할 줄 알면 숨이 막힌다. 그러니 되집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되집기를 연습하면서 아이는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영역을 점점 확장하면서 자란다. 이처럼, 위험이 알리는 또 다른 가능성의 신호를 포착하면 우리는 위험을 즐길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육아를 하면서, 성장하는 열매를 보면서 그런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열매의 위험을 축하한다. 위험은 성장의 증거이자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할 문이다. 앞으로 열매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들어갈 것이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더 큰 바다로 나아갈 것이다. 거기에는 알 수 없는 수많은 위험이 두더지 게임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올 것이다. 나는 그때마다 할 수 있다면 마음 쓰이는 대로 걱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걱정보다는 응원하고 싶다. 성장이라는 위험과 위험이라는 가능성, 이 양면적인 세상의 외줄을 아슬아슬 중심 잡고 줄타기를 하며 나아갈 열매에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