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왜 아이를 낳았어?

by고로케

나는 아직도 나에게 ‘아이를 왜 낳아야 하는데?’라고 묻는다면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다. 아이를 기르는 많은 사람이 말하길 ‘아이가 주는 행복감이 매우 크다.’ 라고 말한다. 나는 그 대답이 아이를 낳아야 하는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내 행복을 위한 도구는 아니다. 농경 슬롯라면 아이는 노동 자산이다. 아이가 많을수록, 사내아이 일수록 일손을 거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이는 가정 생계에 도움 주기는커녕 학비, 생활비, 학원비 등 들어가는 돈은 오히려 더 많다.


나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세상에 어떻게 자랄지도 모를 변수 덩어리의 아이를 기른다는 건 무모한 행동이다. 뉴스를 보면 40살이 넘도록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와 함께 사는 어른아이가 늘고 있다는 뉴스를 보면 등골이 오싹하다. 아이를 통제하는 건 한계가 있다. 내가 생각한 대로 자라지 않는다고 아이를 내다 버릴 수도 없다. 오로지 내가 감당해야 한다.


나 혼자라면 편하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데 왜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다. ‘노후를 생각했을 때 아이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 고 말한다면 노후는 아이에게 들어갈 돈 대신에 꾸준한 연금보험과 부지런한 저축투자로 대비할 수 있다. 냉정하게 말해서 아이를 낳는 건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이다. 리스크는 크지만 돌아오는 건 적다. 그럼 나는 왜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것일까?


우리 부부는 원래 딩크족이었다. 나도 와이프도 굳이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와이프는 결혼하고 나서 얼마 뒤 아이를 갖고 싶다는 뜻을 표했다. 와이프의 끈질긴 설득이 있었지만 나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나는 끝까지 와이프에게 저항했지만 마음 한 편으로 아이를 낳고 난 뒤의 삶을 한번 씩 상상하고는 했다.


내 주위에 아이를 기르고 있는 선배나 어른을 만날 때마다 ‘왜 아이를 낳기로 생각하셨어요?’ ‘아이를 낳아서 좋은 점이 뭐에요?’ 라는 질문을 퍼부었다. 그들의 대답은 말만 조금씩 달랐지 같았다. ‘나이 들어서 혼자면 외로우니까.’ ‘육아는 힘들지만 그걸 뛰어넘는 행복이 있다.’ 나는 설득당하고 싶었다. 정말 내가 아이를 낳아야 하는 필살의 이유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나를 설득할만한 대답은 거기 없었다. 그러다가 무심코 넘긴 <인생 수업> 이라는 바카라 한 구절이 가슴에 박혔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거쳐갔지만, 진정으로 살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미완성의 삶을 가슴속에 숨겨 두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는 문장이 담고 있는 ‘미완성의 삶’이라는 여운이 오래 갔다. 나는 혼자 5년 살았고 와이프와도 5년을 살았다. 혼자도 살아봤고 둘이도 살아봤다. 이번 생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면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미완성의 삶’은 아니다. 하지만 단 한번 뿐인 삶이라는 유한성이 아이라는 무한한 세계로 나를 인도했다. 단순히 행복과 경제적 경중을 저울질해서 도출할 수 없는 결과다. 행복감과 돈이 아니라 삶의 밀도를 높이고 부피를 확장하는 삶의 차원에서 나는 아이를 낳기로 선택한 것이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