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너 퇴사 시키란다.” 회사는 최근에 인수합병 절차를 밟았고 대대적인 인원 감축을 했다. 팀장은 매끄럽게 마무리되지 못한 프로젝트와 더불어 출산 후에는 회사를 당분간 쉬고 육아를 해야 하는 나의 상황이 감축 대상의 원인이지 않을까하고 예상한 바를 말해줬다. 사실 나는 그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는 않았다. 와이프 출산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퇴사 통보를 받은 그 밤이 깊은 새벽으로 바뀔 때, 와이프의 진통이 시작했다. 와이프는 “이번에는 진짜인거 같아.”라고 말했다. 이미 가진통으로 산분인과를 다녀온 적 있지만 출산을 알리는 진진통은 확실히 달랐다. 나는 준비한 출산 캐리어를 들고 와이프를 차에 태워 병원으로 운전했다. 병원에서도 진통 주기를 살피고 곧 출산 준비를 시작했다.
와이프는 분만실에 누워 진통을 오롯이 느끼며 아이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크고 작은 진통이 오고 갔지만 자궁 경부 길이는 짧아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담당 의사는 촉진제를 투여하자고 판단했다. 진통은 조금 더 세졌다. 의사는 조심스레 난산을 예상했지만 촉진제 투여 이후 자궁 경부 길이는 빠른 속도로 짧아졌다. 진통이 시작되고 약 8시간 만에 우리 아이는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와이프와 함께 산모 입원실을 배정 받고 간단한 이용 수칙을 교육 받았다. 와이프는 기력이 다했지만 건강하게 아이를 출산한 사실 때문인지 마라톤 금메달을 딴 선수처럼 옅은 미소를 간간히 보여줬다. 앞으로 입원실 생활을 하면서 챙겨야 할 내용과 계획들을 살폈다. 그렇게 정신없고 힘든 하루가 마무리되고 나는 와이프와 함께 입원실에 누워 잠을 청했다.
나는 바닥에 누워 눈은 감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은 실타래가 뒤엉겨 구르고 있었다. 출산을 하루 앞둔 밤에 받은 사직 통보가 떠올랐다. 퇴사 통보 타이밍은 그리 좋지 않았다. 세상은 늘 달달함과 쓴맛을 함께 준다. 이렇게 건강하고 예쁜 딸이 태어났으니 그 정도 하나는 가져가도 되지 않아? 라고 말하는 듯했다. 만약 그렇다면 등가 교환은 아니다. 퇴사를 백번 하더라도 이 예쁜 아기와 비교할 수 없었다.
‘앞으로 우리 딸이 얼마나 건강하고 예쁘게 크려고 이럴까?’ 나는 출산 후에 찍은 아기 사진을 보며 히죽거렸다. 이해되지 않은 회사의 불합리한 퇴사 통보에 대해 격렬하게 싸워야 할까 생각도 했지만 아이 모습을 보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좋은 시간을 나쁜 감정을 간직한 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다.
회사를 잊기로 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설레는 감정이 조금씩 움트기 시작했다. 8년간의 온라인 게임 생활을 잠시 쉬고 아이와 함께 하면서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장기 불황으로 대해고 시대를 맞이한 지금, 나는 오히려 이 상황을 아이와 함께 하는 행복한 시간으로 만드는 전업 프로 육아러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