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은 현실이 된다

by고로케

크리에이터들에게 “창작의 동기가 무엇인가요?” 라고 물으면 그 동기는 ‘현실화’인 듯하다. 봉준호 감독은 관광객 아주머니가 버스 안에서 음악에 맞춰 춤추는 모습을 보고 그 장면이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이미지를 구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영화 마더를 만들게 된 계기였다. 실제로 그 장면을 촬영하고 나니 몸 속 종양을 빼낸 듯 후련함을 느꼈다고 했다.


봉준호 감독 같은 거장뿐 아니라 우리도 상상을 현실화 했을 때 큰 즐거움을 느낀다. 오키나와로 첫 해외여행을 떠나기 전이었다. 나는 오키나와 바카라을 읽고 가고 싶은 여행지를 로드뷰로 확인하면서 그곳을 거니는 나의 모습을 수십 번 상상했다. 첫 해외여행이었던 만큼 공항에서 출국을 어떻게 할지 시뮬레이션하면서 긴장한 마음을 달랬다. 새벽에 오키나와에 도착한 뒤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가면서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만끽했다. ‘여기가 오키나와구나.’


임테기에 두 줄을 확인했을 때, 우리 부부는 상상하기 시작했다. 첫 상상은 아들일까 딸일까. 아들이라면 농구공을 들고 우리 집 앞 공원에서 함께 농구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딸이라면 와이프의 로망은 확실했다. 술을 못 먹는 나 때문에 와이프는 딸과 함께 오순도순 술 한잔하면서 수다를 떨고 싶어 했다.


임신 16주차쯤 우리 아기의 성별이 딸임을 확인했을 때 제일 먼저 상상한 것은 얼굴이었다. 와이프는 내 얼굴과 자기 얼굴을 합성해서 딸아이 얼굴을 예상하는 어플로 우리 상상력의 해상도를 높였다. 와이프는 피부는 자기를 닮아야 하고 코와 키는 아빠를 닮아야 한다고 말하며 부푼 배를 어루만졌다.

임신 27주차에 입체 초음파 검사를 했다. 비록 오른쪽 눈은 손으로 가려서 보이지 않았지만 열매(태명)의 얼굴 윤곽이 선명하게 보였다. 우리는 입체 초음파에 찍힌 열매 사진을 보고 눈은 와이프를 닮았고 입술은 나를 닮은 것 같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또렷한 이목구비 때문에 우리 열매의 미모를 상상했다.


8시간의 진통 끝에 열매를 출산했을 때, 우리의 첫 번째 상상을 실현했다. 늘 우리의 마음 속에 품으며 그리던 열매 모습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휴대폰을 꺼내 촬영했다. 아이는 눈도 뜨지 못한 채 자체발광 이목구비를 뚜렷하게 주장하며 우렁차게 울었다. 열매는 우리 상상 이상이었다.


이제 길가에 삼삼오오 까르륵 거리며 지나가는 여자 어린이들을 볼 때마다 우리 딸도 저렇게 밝고 행복한 모습일지 상상한다. 호프집에서 모녀끼리 즐겁게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볼 때면 와이프의 로망은 더 부풀어 올랐다. 육아를 할 때마다 늘 상상 한다. 50일 후, 100일 후, 1년 후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 상상의 해답은 시간이 지나면 늘 알려준다. 상상이 현실이 되고 그 현실이 다시 상상을 만든다. 육아를 하게 하는 동기 중 하나는 상상과 현실을 오고가는 진자 운동이지 않을까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