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때

by고로케

내가 열매를 보살핀 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 때는 목욕이다. 내가 누군가를 목욕시켜 준적이 있는지 되돌아봤을 때 그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벌거벗은 사람의 몸을 내가 대신 씻겨준다는 것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 사람은 스스로 목욕을 할 수 없고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 안에는 욕조에 가득 담긴 물만큼의 신뢰가 있다.


우리는 열매를 이틀에 한번 씩 목욕 시켜준다. 나는 열매를 목욕시키면서 단순히 아기의 몸에 물을 얹고 샴푸로 머리를 감기고 비누칠을 하고 헹구는 기계적인 순서 이면에 얼마나 아기를 세심하게 살피고 다뤄야 하는지를 깨닫는다. 물의 온도는 적정한지 혹시나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았는지가 그렇다. 말하지 못하는 아기를 키우면 평범한 소통 감각으로는 여의치 않다.


아기를 키우면서 부모는 비언어적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크게 발달하는 듯하다. 살면서 말하지 못하는 대상과 소통 하는 경험은 거의 전무하다. 아기를 키우다 보면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하고 보지 못해도 봐야 하는 경우가 많다. 아기의 겉모습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무언가를 다시 살펴봐야 하므로 부모는 한층 더 사람을 이해하는 감각이 남 달라진다.


열매의 손금 따라 쌓인 때를 발견할 때면 내가 한 사람의 손금 때까지 씻겨줄 정도로 세심한 남자가 됐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낄 때도 있다. 아기는 주먹을 늘 꽉 쥐고 있다. 주먹 안에는 땀과 살이 비벼져서 만들어진 때들이 쌓인다. 주먹을 피면 그 조그마한 손바닥 안에 는 손금 따라 때가 뽀얗게 쌓여있다. 열매의 손가락을 하나씩 피면서 손금 때를 씻겨주고 오동통한 허벅지 살이 젖힌 부분에 쌓인 때, 겨드랑이 깊숙이 숨은 때를 채취하여 씻겨줄 때는 사금석을 캐는 장인처럼 뜻 모를 희열을 느낀다.


열매가 더 자라다보면 아기 때처럼 더 이상 주먹을 꽉 쥐는 일을 없을 것이고 손금에 때가 쌓이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자기 때는 자기가 씻어내는 똑똑한 아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은 손바닥으로 움켜 쥔 때만 씻겨주는 아빠지만 앞으로 나는 언제까지 열매의 보이지 않는 때를 씻겨줄 수 있을지 생각한다. 열매가 말하지 않고 꽁꽁 숨긴 걱정과 고민거리를 무심하게 지나치지 않고, 보이지 않더라도 발견할 수 있는 감각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열매의 손금 때를 씻겨줄 때마다 이것이 일종의 첫 관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열매와 소통을 꾸준히 하다보면 손금 때처럼 숨겨진 때를 발견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뒤집어 보고 토닥이고 닦아주면서 보이지 않는 때를 발견하려고 한다. 그렇다고 당장 달려가서 씻겨주는 세신사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열매를 조금 더 잘 알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것이 비록 주름 속에 숨은 때일지라도 말이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