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자 · 권태식 38세 물류센터 야간 작업자
장소 · 경기도 어느 대형 물류센터 지하 1층 냉동창고 4번
온도 · 영하 25도
갇힌 시간 · 4시간 40분
발견한 사람 · 응우옌 반 롱 27세 동료 작업자
들은 날 · 퇴원하고 넉 달 뒤
야간조
권태식입니다. 경기도에 있는 대형 물류센터에서 야간조로 4년 일했습니다. 지게차 기사였습니다.
밤 9시에 출근해서 아침 7시에 퇴근합니다. 사람들이 자는 동안 트럭이 들어오고 물건이 쌓이고 트럭이 나갑니다. 아침에 마트 진열대에 놓이는 냉동만두와 아이스크림과 고기가 다 그 밤에 움직입니다.
지하 1층에 냉동창고가 여섯 개 있었습니다. 각각 축구장 반만 한 크기. 천장까지 철제 선반이 10미터 넘게 솟아 있습니다. 거기 냉동식품 상자가 빼곡히 쌓여 있습니다.
온도는 영하 25도입니다. 24시간 365일.
냉동창고에 들어갈 때는 방한복을 입습니다. 두꺼운 패딩 상하의. 방한화. 털모자. 장갑 두 겹. 그래도 30분 넘게 있으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습니다. 30분 일하고 밖에 나와서 10분 몸을 녹이고 다시 들어갑니다.
문은 두껍습니다. 냉기가 새지 않게 단열재가 30센티미터 들어간 철문. 미닫이식이고 무겁습니다. 밖에서 버튼을 누르면 모터가 열어줍니다. 안에서는 문 옆에 비상 개폐 레버가 있습니다. 노란색. 법으로 달게 되어 있습니다. 안에 사람이 갇히면 안 되니까.
그 레버 얘기는 나중에 하겠습니다. 4년 동안 저는 그 레버를 한 번도 당겨본 적이 없었습니다.
새벽 1시 50분
그날 저는 4번 창고에서 혼자 재고를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둘이 하는 일인데 그날 인원이 모자랐습니다. 반장님이 혼자 금방 하고 나오라고 했습니다. 지게차는 밖에 두고 손 스캐너만 들고 들어갔습니다.
새벽 1시 50분이었습니다. 휴대폰 시계를 봤으니까 정확합니다.
창고 맨 안쪽 선반에서 바코드를 찍고 있는데 뒤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우우웅. 철컥.
문 닫히는 소리였습니다.
저는 별로 놀라지 않았습니다. 냉기를 막으려고 문이 자동으로 닫히는 설정이 있었습니다. 일정 시간 동안 움직임이 없으면. 안에서 레버를 당기면 열리니까 괜찮았습니다.
20분쯤 더 일하고 문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노란 레버를 당겼습니다.
안 움직였습니다.
다시 당겼습니다. 두 손으로. 체중을 실어서.
레버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레버 밑을 손전등으로 비춰봤습니다.
레버 축에 케이블 타이가 감겨 있었습니다. 검은 플라스틱 끈. 여러 겹. 레버를 문틀 쇠고리에 묶어놓은 거였습니다.
누가 일부러 묶어놓은 거였습니다.
휴대폰
휴대폰을 꺼냈습니다. 신호가 없었습니다.
냉동창고 벽은 단열재와 철판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파가 안 들어갑니다. 4년 동안 창고 안에서 전화가 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알고 있었는데도 화면을 계속 봤습니다. 안테나 표시 자리에 엑스 표시.
배터리는 62퍼센트였습니다.
문을 두드렸습니다. 주먹으로. 쾅 쾅 쾅. 철문은 두드려도 소리가 안 납니다. 단열재가 소리를 먹습니다. 둔탁하게 퉁퉁. 밖에서는 아무것도 안 들렸을 겁니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살려주세요. 사람 있어요.
제 목소리가 창고 안에 울렸습니다. 선반 사이를 돌아서 제 귀로 돌아왔습니다. 냉동기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그 위를 덮었습니다. 천장에서 쉬지 않고. 위이이잉.
교대 시간은 아침 7시였습니다. 반장님이 저를 찾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반장님은 1시 반에 다른 동으로 가셨습니다. 제가 혼자 4번에 있는 걸 아는 사람은 반장님뿐이었습니다.
다섯 시간.
영하 25도에서 다섯 시간.
첫 시간
처음 한 시간은 몸을 움직였습니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걷고 팔을 휘두르고 제자리 뛰기를 했습니다. 몸에서 열이 나게.
땀이 났습니다. 방한복 안에서. 그게 실수였습니다.
땀이 식으니까 옷 안이 젖어서 차가워졌습니다. 젖은 옷은 마른 옷보다 몇 배 빨리 체온을 빼앗아 갑니다. 등에 젖은 수건을 붙여놓은 것 같았습니다. 그게 얼어갔습니다.
숨을 쉴 때마다 콧속이 따가웠습니다. 영하 25도 공기를 들이쉬면 콧속 털이 얼어서 서로 달라붙습니다. 콧구멍 안이 바삭바삭해집니다. 입으로 쉬면 목구멍이 칼로 긁히는 것 같았습니다.
내쉰 숨이 눈썹에 얼어붙었습니다. 속눈썹에 하얗게 성에가 끼었습니다. 눈을 깜빡이면 위아래 속눈썹이 달라붙었다가 떨어졌습니다. 쩍.
장갑 두 겹을 꼈는데 손가락 끝이 아팠습니다. 처음엔 시리다가 그다음엔 아팠습니다. 바늘 수백 개로 찌르는 것처럼. 그러다 그 아픔이 둔해졌습니다. 둔해지는 게 더 무서웠습니다.
두 번째 시간
두 시간쯤 지나서 떨림이 시작됐습니다.
처음엔 이가 떨렸습니다. 딱딱딱딱. 멈추려고 해도 안 멈췄습니다. 턱이 제 것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다음에 어깨. 그다음에 온몸. 몸이 저절로 덜덜 떨렸습니다. 손전등을 들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빛이 미친 듯이 흔들렸습니다.
몸이 떨리는 건 체온을 만들려고 근육이 혼자 움직이는 거라고 합니다. 그 떨림이 살아 있다는 신호입니다.
저는 상자로 집을 만들었습니다.
선반 아래쪽에 있는 냉동식품 상자들을 끌어내서 벽처럼 쌓았습니다. 바닥에 빈 상자를 펴서 깔았습니다. 콘크리트 바닥에 직접 앉으면 바닥이 몸의 열을 빨아갑니다. 골판지라도 깔면 조금 낫습니다. 상자 벽 안에 쪼그려 앉았습니다. 무릎을 가슴에 붙이고. 손을 겨드랑이에 끼우고.
상자 안에는 냉동 닭가슴살이 들어 있었습니다. 돌덩이처럼 꽝꽝 언. 그 상자 벽이 제 몸을 둘러쌌습니다. 상자에서도 냉기가 나왔습니다. 그래도 바람은 막아줬습니다. 냉동기 팬 바람.
휴대폰 불빛으로 시간을 확인했습니다. 3시 47분. 배터리 41퍼센트. 추위 때문에 배터리가 빨리 닳았습니다.
세 번째 시간
네 시쯤 떨림이 멈췄습니다.
저는 몸이 따뜻해진 줄 알았습니다. 떨림이 멈추니까 편했습니다. 숨이 고르게 쉬어졌습니다.
그게 제일 위험한 신호였다고 나중에 의사가 말해줬습니다. 체온이 32도 밑으로 떨어지면 몸이 더 이상 떨지 않는답니다. 떨 힘이 없어서. 몸이 포기한 거랍니다.
생각이 느려졌습니다. 휴대폰을 보는데 숫자가 무슨 뜻인지 한참 걸렸습니다. 4. 1. 2. 그게 시간인지 배터리인지.
졸렸습니다. 너무 졸렸습니다. 눈꺼풀에 추가 달린 것 같았습니다. 눈을 감으면 따뜻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제 뺨을 때렸습니다. 손바닥에 감각이 없어서 세게 때렸는지 약하게 때렸는지 몰랐습니다. 뺨에도 감각이 없었습니다. 소리만 났습니다. 퍽.
딸 이름을 불렀습니다. 서연아. 일곱 살. 아내 이름도 불렀습니다. 소리 내서. 계속.
손 스캐너가 주머니에 있었습니다. 바코드를 찍으면 삑 소리가 나는 기계. 저는 그걸 꺼내서 상자 바코드를 찍었습니다. 삑. 또 찍었습니다. 삑. 그 소리가 사람 소리 같았습니다. 잠들지 않으려고 1분에 한 번씩 찍었습니다. 삑. 삑. 나중에 회사 시스템에 그 기록이 다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새벽 4시부터 5시 10분까지 같은 상자를 일흔 번 찍은 기록.
주머니에 유성 매직이 있었습니다. 상자에 재고 표시를 하는 매직. 저는 상자 벽 한 면에 글씨를 썼습니다. 손이 떨려서 글씨가 다 삐뚤어졌습니다.
서연아 아빠가 사랑해. 엄마 말 잘 들어.
다 쓰고 나서 저는 그 글씨를 한참 봤습니다. 이걸 누가 읽게 되면 저는 죽은 거였습니다.
더워
다섯 시쯤에 더웠습니다.
갑자기. 온몸이 화끈거렸습니다. 사우나에 들어간 것처럼. 방한복 안이 불타는 것 같았습니다. 땀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지퍼를 내렸습니다. 방한복 윗도리를 벗었습니다. 장갑을 벗었습니다. 털모자를 벗었습니다.
시원했습니다.
그 상태로 상자 벽 밖으로 기어 나갔습니다. 바지도 벗으려고 했습니다. 손가락이 굳어서 단추를 못 풀었습니다.
나중에 그 얘기를 들었습니다. 역설적 탈의라고 한답니다. 저체온증 마지막 단계에서 사람들이 옷을 벗는답니다. 몸이 마지막 힘으로 피부 쪽 혈관을 확 여는데 그때 뇌가 덥다고 착각한답니다. 얼어 죽은 사람들이 옷을 벗은 채 발견되는 이유가 그거랍니다.
그리고 그다음 단계가 있답니다. 사람들이 좁은 데로 기어 들어간답니다. 선반 밑으로. 구석으로. 마지막에 굴처럼 숨는답니다. 동물처럼.
저는 그 단계까지 갔습니다.
나중에 롱이 저를 찾았을 때 저는 맨 아래 선반 밑 30센티미터 틈에 기어 들어가 있었다고 합니다. 윗도리를 벗은 채로. 맨손으로. 몸을 웅크리고. 상자 벽 밖에서.
제가 만든 집을 제 손으로 나와서.
그 직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나는 게 하나 있습니다. 욕조였습니다. 집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놓고 서연이를 씻기는 장면. 김이 올라오고 서연이가 비누 거품으로 장난을 치고. 저는 그 욕조에 들어가려고 옷을 벗고 있었습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려고. 그런데 욕조가 자꾸 멀어졌습니다. 그래서 기어서 따라갔습니다. 좁은 데로.
롱
응우옌 반 롱. 베트남에서 온 스물일곱 살 친구. 같은 야간조였습니다. 한국에 온 지 2년. 한국말은 서툴지만 웃는 얼굴이 좋은 친구.
롱은 6시 반쯤 4번 창고 앞을 지나다가 문 앞에 제 지게차가 서 있는 걸 봤답니다. 시동이 꺼진 채로. 서리가 앉은 채로. 오래 서 있었다는 뜻이었습니다.
롱이 밖에서 문 버튼을 눌렀습니다. 문이 열렸습니다. 밖에서는 아무 문제없이.
롱이 창고 안으로 들어와서 제 이름을 불렀답니다. 태식 형. 태식 형.
저는 그 소리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롱은 선반 밑 틈에서 제 발을 찾았습니다. 저를 끌어냈습니다. 자기 방한복을 벗어서 저한테 덮었습니다. 그러고 저를 업었습니다. 저는 롱보다 20킬로그램은 더 나갑니다. 롱은 저를 업고 창고 밖 복도까지 뛰었습니다.
그때 롱이 레버를 봤답니다. 케이블 타이로 묶인.
레버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제 체온이 28도였다고 했습니다. 심장이 몇 번 이상하게 뛰었다고 했습니다.
몸을 녹이는 데도 순서가 있다고 합니다. 너무 빨리 녹이면 팔다리에 고여 있던 차가운 피가 한꺼번에 심장으로 몰려가서 심장이 멈출 수 있답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따뜻한 수액을 혈관에 천천히 넣고 몸통부터 데웠답니다. 손발은 마지막에.
손가락 셋을 잃었습니다. 오른손 약지와 새끼손가락. 왼손 새끼손가락. 동상으로 까맣게 죽어서. 발가락도 둘. 귀 끝도 조금.
손가락이 녹을 때가 제일 아팠습니다. 언 손가락에 피가 다시 돌기 시작하면 불에 넣은 것처럼 아픕니다. 손가락이 퉁퉁 붓고 물집이 잡혔습니다. 물집 안에 피가 고였습니다. 까맣게. 그러다 며칠 뒤에 손가락 끝이 마른 나뭇가지처럼 쪼그라들었습니다. 냄새가 났습니다. 썩는 냄새. 제 손에서.
경찰 조사에서 레버 얘기가 나왔습니다.
케이블 타이를 묶은 사람은 회사 관리팀이었습니다. 석 달 전에.
이유는 도난이었습니다. 야간에 직원들이 냉동창고 안 고기를 몰래 빼돌린다는 의심이 있었답니다. 안에서 레버로 문을 열고 뒷문 쪽으로 빼돌린다고. 그래서 안에서는 문을 못 열게 막았답니다. 밖에서 버튼으로만 열리게. 출입을 관리하려고.
사람이 안에 갇힐 수 있다는 생각은 아무도 안 했답니다.
그리고 경찰이 하나를 더 알아냈습니다.
3년 전에 같은 물류센터 2번 창고에서 사람이 죽었답니다. 장민우라는 스물네 살 아르바이트생. 겨울방학 단기 알바. 냉동창고 안에서 저체온증으로. 문이 고장 나서 갇혔다고 했답니다. 그때 회사는 단순 사고로 처리했답니다. 유족한테 합의금을 주고.
그 친구도 선반 밑에서 발견됐답니다. 윗도리를 벗은 채로.
그때 고장 났다던 문은 정말 고장이었을까요. 경찰은 그 일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다음
회사는 과징금을 냈습니다. 관리팀장이 업무상 과실치상으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회사는 저한테 합의를 제안했습니다. 저는 아직 사인하지 않았습니다.
롱은 그 일 이후로 비자 문제 때문에 회사를 옮겨야 했습니다. 저를 업고 뛴 일로 회사 높은 사람한테 불려 갔답니다. 왜 허락 없이 창고에 들어갔느냐고. 롱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형. 다른 데 더 좋아요.
장민우 씨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경찰이 연락처를 알려줬습니다. 어머니는 3년 동안 아들이 왜 옷을 벗고 있었는지 몰랐답니다. 회사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답니다.
제가 설명해 드렸습니다. 역설적 탈의. 마지막에 덥다고 느끼는 것. 그리고 굴처럼 숨는 것.
어머니가 한참 울다가 물었습니다.
우리 민우도 마지막에 따뜻했을까요.
저는 그렇다고 했습니다.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그때 따뜻했으니까요.
경찰이 증거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제가 매직으로 글씨를 쓴 상자 벽. 사진 속 글씨는 제 글씨 같지 않았습니다. 다섯 살 아이가 쓴 것처럼 삐뚤빼뚤했습니다. 사랑해의 받침이 다 빠져 있었습니다. 사라해. 손가락이 그 받침을 쓸 만큼 움직이지 않았던 겁니다.
그 상자는 회사가 폐기했다고 합니다. 안에 든 닭가슴살은 다시 팔렸는지 버려졌는지 모릅니다.
지금 저는 일을 못 합니다. 손가락 셋이 없으면 지게차 레버를 잡기가 어렵습니다. 서연이가 제 손을 잡을 때 손가락이 모자란 데를 만지작거립니다. 아빠 손가락 어디 갔어. 저는 추운 데 두고 왔다고 합니다.
여름인데도 저는 추위를 탑니다. 에어컨 바람을 못 견딥니다. 마트 냉동식품 코너를 지나가면 숨이 막힙니다. 그 하얀 냉기가 발목에 닿으면 다리가 굳습니다.
그리고 밤에 자다가 가끔 더워서 깹니다.
온몸이 화끈거려서 이불을 걷어차고 깹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침대 밑에 웅크리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아내가 저를 끌어냅니다. 롱이 그랬던 것처럼. 제 이름을 부르면서. 저는 그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침대 밑에서 나오지 못합니다. 나오면 다시 추워질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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