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자 · 한소영 36세 동굴 다이빙 강사
장소 · 멕시코 유카탄반도 어느 세노테 수중 동굴
수심 · 최대 18미터
진입 거리 · 입구에서 640미터
함께 들어간 사람 · 디에고 루이스 29세
들은 날 · 1년 뒤 서울
세노테
한소영이에요. 멕시코 툴룸에서 8년 동안 다이빙 강사를 했어요.
유카탄반도에는 강이 없어요. 대신 땅 밑에 강이 흘러요. 석회암 땅이 수만 년 동안 빗물에 녹아서 땅속에 거대한 동굴이 생겼어요. 그 동굴에 물이 차 있어요. 수백 킬로미터. 지구에서 제일 긴 수중 동굴들이에요.
그 동굴 천장이 무너져서 구멍이 뚫린 데를 세노테라고 해요. 정글 한가운데 동그랗게 뚫린 푸른 우물. 물이 유리처럼 맑아요. 햇빛이 들어오면 물속에 빛 기둥이 서요.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러 와요.
입구 근처는 천국이에요.
그런데 조금만 들어가면 빛이 사라져요. 그다음부터는 사람이 갈 데가 아니에요.
세노테 동굴 입구에는 표지판이 하나 서 있어요. 검은 망토에 낫을 든 해골이 그려진. 그 밑에 이렇게 적혀 있어요.
멈추시오. 이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죽을 수 있습니다.
그 표지판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아요. 저도 처음엔 찍었어요. 그 표지판은 장난이 아니에요. 실제로 그 안에서 사람이 많이 죽었어요. 그 표지판을 만든 사람들이 동굴 다이버들이에요. 친구들 시신을 직접 꺼내본 사람들.
줄
동굴 다이빙에는 규칙이 있어요. 하나라도 어기면 죽어요.
첫째. 줄을 놓지 마라.
동굴 바닥이나 벽을 따라 가이드라인이라는 줄이 깔려 있어요. 하얗거나 노란 나일론 줄. 입구에서 시작해서 동굴 깊숙이까지 이어져요. 다이버는 그 줄을 따라 들어가고 그 줄을 따라 나와요. 줄을 놓치면 출구를 못 찾아요. 동굴은 미로예요. 갈림길이 수십 개예요.
줄에는 플라스틱 화살표가 군데군데 달려 있어요. 손바닥만 한 삼각형. 그 화살표는 항상 출구 쪽을 가리켜요. 눈이 안 보여도 손으로 만져서 어느 쪽이 출구인지 알 수 있게.
둘째. 공기를 셋으로 나눠라.
탱크에 든 공기의 3분의 1로 들어가요. 3분의 1로 나와요. 나머지 3분의 1은 남겨둬요. 사고가 났을 때를 위해서. 내 짝이 공기를 잃으면 나눠주라고.
셋째. 바닥을 건드리지 마라.
세노테 동굴 바닥에는 고운 흙이 깔려 있어요. 실트라고 해요. 밀가루보다 고와요. 수천 년 동안 가라앉은 거예요. 오리발로 한 번만 잘못 차면 그게 피어올라요. 연기처럼. 그러면 1초 만에 시야가 0이 돼요. 그걸 실트 아웃이라고 해요. 맑은 물이 한순간에 우유가 돼요. 그 흙이 다시 가라앉는 데는 몇 시간이 걸려요.
저는 8년 동안 이 규칙을 학생들한테 수백 번 가르쳤어요. 시험에도 냈어요.
그날 저는 세 개를 다 겪었어요.
디에고
디에고 루이스는 툴룸 토박이였어요. 스물아홉. 마야 사람. 할아버지 때부터 이 정글에서 살았대요. 어릴 때부터 세노테에서 헤엄쳤대요. 동굴 다이빙 자격증도 저보다 많았어요.
말이 많고 잘 웃었어요. 물에 들어가기 전에 꼭 세노테에 대고 마야 말로 인사를 했어요. 할머니한테 배웠다고. 물의 주인한테 허락을 받는 거라고.
그날은 새로 발견된 통로를 조사하러 들어갔어요. 동굴 지도를 만드는 일이었어요. 입구에서 600미터쯤 들어가면 갈림길이 있는데 그 오른쪽에 아무도 안 가본 좁은 통로가 있었어요.
둘이서 들어갔어요. 등에 탱크 두 개씩. 손에 랜턴. 허리에 예비 랜턴 두 개. 줄을 감은 릴.
입구에서 400미터까지는 평소처럼 아름다웠어요. 천장에 종유석이 고드름처럼 매달려 있고 바닥에 석순이 솟아 있었어요. 랜턴 빛에 하얗게 빛났어요. 물이 너무 맑아서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았어요.
할로클라인이라는 데도 지났어요. 위쪽 민물과 아래쪽 바닷물이 만나는 경계예요. 소금물이 더 무거워서 아래에 깔려요. 그 경계를 지날 때면 물이 일렁여요. 기름에 물을 섞은 것처럼. 앞이 흐릿하게 아른거려요. 몸이 갑자기 차가워져요.
그 경계 아래로 내려가면 소리가 달라져요. 제 숨소리가 더 크게 들려요. 호흡기에서 쉬이익. 보글보글. 거품이 천장에 부딪히는 소리.
통로
600미터 지점 갈림길에서 오른쪽 좁은 통로로 들어갔어요. 디에고가 앞에서 새 줄을 깔면서 갔어요. 저는 뒤에서 따라갔어요.
통로가 점점 좁아졌어요. 처음엔 둘이 나란히 갈 수 있었는데 나중엔 한 사람씩. 그다음엔 몸을 옆으로 눕혀야 지나갈 수 있었어요. 등에 멘 탱크가 천장에 긁혔어요. 끼익. 끼익. 쇠가 바위에 긁히는 소리가 물속에서 크게 울렸어요.
640미터 지점이었어요.
디에고가 앞에서 손을 흔들었어요. 랜턴을 원을 그리며 흔드는 신호. 괜찮다는 뜻. 이 앞은 막혀 있다. 돌아가자.
디에고가 몸을 돌리려고 했어요. 통로가 너무 좁았어요. 디에고 오리발이 바닥을 찼어요.
실트가 피어올랐어요.
처음엔 연기 한 줄기였어요. 디에고 발밑에서. 그러다 그게 뭉게뭉게 커졌어요. 랜턴 빛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어요. 하얀 벽이 저한테로 밀려왔어요.
1초 뒤에 아무것도 안 보였어요.
랜턴을 얼굴 앞에 갖다 댔어요. 렌즈가 마스크에 닿을 만큼. 뿌연 노란 빛만 보였어요. 손이 안 보였어요. 마스크 유리 바로 앞이 우유였어요.
그리고 제 손에 줄이 없었어요.
손
규칙대로라면 저는 줄을 계속 잡고 있었어야 해요. 손가락으로 고리를 만들어서. 좁은 통로를 지나느라 두 손으로 바위를 짚다가 놓친 거예요. 몇 초 동안.
그 몇 초에 실트가 터졌어요.
저는 움직이지 않았어요. 그게 제일 먼저 할 일이에요. 움직이면 실트가 더 피어오르고 줄에서 더 멀어져요.
숨을 셌어요. 들이쉬고 넷. 내쉬고 넷.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어요. 귀에서 쿵쿵 소리가 났어요. 숨이 빨라지면 공기가 빨리 닳아요. 저는 제 숨을 붙잡고 늘어졌어요.
손을 뻗었어요. 천천히. 오른쪽으로. 바위. 차갑고 미끈한. 왼쪽으로. 바위. 아래로. 실트. 손가락이 손목까지 쑥 빠졌어요. 밀가루 반죽 같았어요. 위로. 천장. 종유석 끝이 손바닥을 찔렀어요.
줄이 없었어요.
어디에도.
저는 그 자리에서 손으로 바닥을 쓸었어요. 원을 그리면서. 점점 넓게. 손가락 끝에 줄이 걸리기를 빌면서. 실트가 더 피어올랐어요. 상관없었어요. 어차피 안 보이니까.
1분. 2분.
손등에 뭔가가 스쳤어요. 가늘고 팽팽한 것.
줄이었어요.
저는 그 줄을 손가락으로 감았어요. 손톱이 하얗게 될 만큼 꽉.
그런데 어느 쪽이 출구인지 몰랐어요.
화살표
손으로 줄을 따라 더듬었어요. 한 뼘씩. 줄이 바위 모서리에 감겨 있었어요. 거기서 꺾였어요.
화살표가 손에 잡혔어요.
손바닥만 한 플라스틱 삼각형. 저는 장갑 낀 손가락으로 그 모양을 더듬었어요. 뾰족한 끝이 어느 쪽인지. 평평한 쪽이 어느 쪽인지.
뾰족한 끝이 제 오른쪽을 가리키고 있었어요.
출구는 오른쪽이었어요.
저는 그 순간 울 뻔했어요. 마스크 안에서. 그런데 울면 마스크에 김이 서리고 코로 숨을 쉬게 돼요. 참았어요.
그리고 디에고를 생각했어요.
디에고는 어디 있지.
디에고
줄을 잡고 오른쪽으로 조금 가다가 멈췄어요. 디에고를 찾아야 했어요.
동굴 다이버는 짝을 두고 나가지 않아요. 그게 규칙이에요. 그런데 그 규칙 때문에 둘 다 죽기도 해요.
줄을 한 손에 쥔 채로 다른 손으로 주변을 더듬었어요. 손에 오리발이 닿았어요. 디에고 발이었어요. 줄을 따라 제 뒤쪽에 있었어요. 디에고도 줄을 찾은 거였어요.
저는 디에고 발목을 두 번 잡았다 놓았어요. 괜찮으냐는 신호.
대답이 없었어요.
디에고 몸을 따라 더듬어 올라갔어요. 다리. 허리. 탱크. 어깨. 디에고가 제 손을 잡았어요. 손이 떨리고 있었어요. 디에고가 제 손을 자기 호흡기 쪽으로 끌어당겼어요. 그러고 손바닥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어요.
공기가 없다는 신호였어요.
통로에서 몸을 돌리다가 탱크 밸브가 바위에 부딪혀서 고장이 났대요. 나중에 알았어요. 공기가 새면서 몇 분 만에 탱크 두 개가 거의 비었대요.
저는 제 예비 호흡기를 빼서 디에고 손에 쥐여줬어요. 동굴 다이버는 다 호흡기를 두 개 달고 다녀요. 하나는 내 것. 하나는 짝을 위한 것. 디에고가 그걸 물었어요.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어요. 쉬이이이이익. 길게. 물에 빠졌다가 나온 사람처럼.
그때부터 디에고와 저는 제 탱크 하나로 숨을 쉬었어요.
계산
저는 그 어둠 속에서 계산을 했어요.
제 탱크에는 3분의 1이 남아 있었어요. 나갈 때 쓸 몫과 비상용 몫. 원래는 저 혼자 나갈 만큼의 공기에 남는 몫이 조금 더 있었어요.
두 사람이 숨을 쉬면 공기가 두 배로 빨리 닳아요. 거기다 디에고는 숨을 너무 빨리 쉬고 있었어요. 겁에 질려서. 겁먹은 사람은 평소보다 두세 배를 써요.
출구까지 640미터. 시야 0. 줄을 손으로 더듬으면서. 좁은 통로를 한 줄로. 짝과 호흡기 줄로 연결된 채로.
공기 게이지를 랜턴에 갖다 댔어요. 마스크에 닿을 만큼. 바늘이 보였어요. 흐릿하게.
모자랐어요.
둘 다 나가기에는 모자랐어요.
저는 그걸 알았어요. 디에고도 알았을 거예요. 디에고가 저보다 동굴을 더 잘 알았으니까.
640미터
우리는 줄을 따라 나갔어요. 제가 앞에서 줄을 잡고. 디에고가 뒤에서 제 다리를 잡고. 둘 사이에 호흡기 줄 하나.
통로가 좁은 데서는 탱크가 천장에 긁혔어요. 디에고 호흡기 줄이 바위에 걸려서 당겨질 때마다 디에고가 숨을 멈췄어요. 저는 멈춰서 기다렸어요. 디에고가 줄을 풀면 다시 갔어요.
손에 화살표가 잡힐 때마다 손가락으로 끝을 더듬었어요. 출구 쪽. 맞다. 이쪽이다.
실트 구간을 벗어나자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어요. 랜턴 빛이 1미터. 2미터. 바위 벽이 희미하게.
그때 제 호흡기가 무거워졌어요.
숨을 들이쉬는데 공기가 빡빡하게 들어왔어요. 빨대로 걸쭉한 걸 빠는 것처럼. 탱크가 거의 비었다는 신호예요.
게이지를 봤어요. 빨간 칸 끝이었어요.
출구까지 아직 300미터쯤 남아 있었어요.
디에고가 제 다리를 놓았어요.
저는 뒤를 돌아봤어요. 랜턴을 비췄어요. 디에고가 거기 떠 있었어요. 마스크 너머로 제 눈을 보고 있었어요. 디에고가 제 예비 호흡기를 입에서 뺐어요. 그걸 제 손에 쥐여줬어요.
그러고 손을 들어서 원을 그렸어요.
괜찮다는 신호.
그다음에 손가락으로 출구 쪽을 가리켰어요. 화살표처럼.
가라고.
저는 고개를 저었어요. 디에고 손을 붙잡았어요. 디에고가 제 손을 떼어냈어요. 손가락을 하나씩. 아주 천천히. 부드럽게.
디에고 입에서 마지막 거품이 올라갔어요. 보글보글. 천장에 부딪혀서 은색으로 퍼졌어요.
저는 갔어요.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한 번 돌아봤어요. 랜턴 빛이 닿는 끝에 디에고 랜턴 불빛이 있었어요. 노랗게. 가만히. 디에고가 랜턴을 제 쪽으로 비추고 있었어요. 제가 줄을 잘 볼 수 있게.
그 불빛이 제 등을 비추는 동안 저는 앞으로 갔어요. 몇 미터쯤 가서 다시 돌아봤을 때 그 불빛은 아래로 천천히 기울어 있었어요.
출구
저는 혼자 300미터를 갔어요. 남은 공기를 아끼려고 숨을 참았다가 쉬었다가. 머리가 핑 돌았어요. 눈앞이 검게 좁아졌어요. 손으로 줄을 놓치지 않으려고 손가락을 줄에 감았어요. 피가 안 통할 만큼.
마지막 50미터에서 공기가 끊겼어요.
호흡기를 빨았는데 아무것도 안 나왔어요. 진공. 폐가 오그라드는 느낌. 가슴이 터질 것 같았어요.
숨을 쉬고 싶은 충동이 목구멍을 할퀴었어요. 몸 안에 이산화탄소가 차오르면 폐가 저절로 숨을 쉬려고 해요. 제 의지와 상관없이. 횡격막이 경련하듯 들썩였어요. 꿀럭. 꿀럭. 입을 벌리면 물이 들어와요. 이를 악물었어요. 손끝이 저렸어요.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앞에 빛이 보였어요. 푸른 빛. 세노테 입구로 들어오는 햇빛. 빛 기둥.
저는 줄을 놓고 그 빛을 향해 발을 찼어요. 위로. 위로.
물 밖으로 머리가 나왔을 때 처음 들이쉰 공기는 정글 냄새가 났어요. 젖은 흙과 꽃과 썩은 나뭇잎 냄새. 새 소리. 매미 소리.
저는 물 위에 떠서 소리를 질렀어요. 디에고 이름을. 세노테 바위벽에 부딪혀서 그 이름이 몇 번이나 되돌아왔어요. 디에고. 디에고. 물속까지는 닿지 않았을 거예요.
그다음
디에고는 사흘 뒤에 동굴 구조팀이 꺼내왔어요. 출구에서 300미터 지점. 줄 옆에. 한 손으로 줄을 잡은 채로.
구조팀 사람이 그랬어요. 디에고 손가락이 화살표를 잡고 있었다고. 출구 쪽을 가리키는 화살표를.
디에고 장례는 마야식으로 치렀어요. 디에고 어머니 로사 씨가 저를 안아줬어요. 원망하는 말은 한 마디도 안 했어요. 대신 그랬어요.
물의 주인이 디에고를 데려가고 너를 돌려보냈구나. 디에고가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했을 거야.
그 동굴 입구에 표지판이 하나 더 생겼어요. 다이빙 센터 사장 마르코 씨가 세웠어요. 낫을 든 해골 그림 옆에 작은 판. 디에고 이름이랑 날짜가 새겨진.
그 밑에 마르코 씨가 디에고가 늘 하던 마야 말 인사를 새겨 넣었어요. 물의 주인한테 허락을 구하는 말. 저는 그 뜻을 몰라요. 디에고한테 한 번도 안 물어봤어요. 다음에 물어보면 되겠지 했거든요.
저는 서울로 돌아왔어요. 다이빙은 그만뒀어요. 지금은 작은 회사에서 사무 일을 해요.
목욕을 못 해요. 욕조에 몸을 담그면 숨이 막혀요. 샤워만 해요. 그것도 얼굴에 물이 닿으면 숨을 멈추게 돼요.
밀가루를 못 만져요. 밀가루가 공중에 피어오르는 걸 보면 몸이 굳어요. 그 하얀 연기가 다시 마스크 앞을 덮어요.
그리고 밤에 잠이 안 올 때면 손가락으로 이불 위를 더듬어요. 줄을 찾는 것처럼. 화살표를 찾는 것처럼.
어떤 밤에는 손가락 끝에 정말 뭔가가 닿는 것 같아요. 가늘고 팽팽한 것. 플라스틱 삼각형.
뾰족한 끝이 어느 쪽인지 더듬어봐요.
늘 같은 쪽이에요.
디에고가 가리킨 쪽. 나가라는 쪽.
저는 그쪽으로 몸을 돌려서 잠을 청해요. 그러면 아주 가끔은 숨이 편해져요. 아주 가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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