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건초 냄새

by김경훈

구술자 · 쥘리앵 모로 56세 불발탄 제거 요원

경력 · 28년

소속 · 프랑스 민간안전국 불발탄 제거반 메스 분소

장소 · 뫼즈 도 베르됭 북쪽 어느 밀밭

사건 · 3월 신고 1건

들은 날 · 그해 11월 11일



철의 수확


쥘리앵 모로입니다. 프랑스 동북부 베르됭 근처에서 28년 동안 땅에 묻힌 포탄을 캐냈습니다.


우리 일을 데미뇌르라고 합니다. 지뢰나 불발탄을 없애는 사람. 프랑스에는 아직도 이 일을 하는 사람이 수백 명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100년이 넘었는데도.


1차 세계대전 때 이 땅에 포탄이 수억 발 떨어졌습니다. 그중 여러 발에 한 발은 터지지 않았습니다. 진흙에 처박혀서. 그게 아직 땅속에 있습니다. 100년 동안.


봄마다 농부들이 밭을 갈면 포탄이 올라옵니다. 쟁기 날에 걸려서. 겨울 서리가 땅을 들어 올리면서 밀어 올리기도 합니다. 농부들은 그걸 밭가에 모아둡니다. 녹슨 쇠 덩어리를 감자 포대처럼 쌓아두고 우리한테 전화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트럭을 몰고 가서 실어 옵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그걸 철의 수확이라고 부릅니다. 봄에 밀보다 먼저 쇠가 올라오니까. 우리 분소가 1년에 거둬들이는 포탄이 수십 톤입니다. 해마다. 앞으로도 수백 년은 더 걸릴 거라고들 합니다.


베르됭 북쪽에는 아직도 사람이 못 들어가는 땅이 있습니다. 붉은 지대라고 합니다. 포탄과 독가스와 시체가 너무 많아서 100년째 출입 금지인 숲. 거기는 지금도 땅이 울퉁불퉁합니다. 포탄 구덩이가 서로 겹쳐서. 나무가 그 위에 자랐을 뿐입니다.



냄새


우리 일은 손으로 하는 일이고 코로 하는 일입니다.


포탄 중에 제일 무서운 건 화학탄입니다. 독가스를 넣은 포탄. 1차 대전 때 양쪽 다 엄청나게 쐈습니다. 100년이 지나도 그 안의 독은 그대로입니다. 녹슨 껍데기에 구멍이 나면 새어 나옵니다.


독가스는 냄새로 압니다.


이페리트라는 가스가 있습니다. 겨자 가스라고도 합니다. 마늘 냄새가 납니다. 아니면 겨자 냄새.


포스겐이라는 가스가 있습니다. 이게 제일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포스겐은 냄새가 좋습니다. 갓 벤 건초 냄새가 납니다. 여름날 풀밭에서 나는 달큰하고 풋풋한 냄새. 그래서 1916년에 많은 병사가 그 냄새를 맡고도 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향 들판 냄새였으니까.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고 합니다. 그러고 하루 이틀 뒤에 폐에 물이 차서 죽었습니다.


신입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가르치는 게 그겁니다. 들판에서 건초 냄새가 나면 숨을 참고 뒤로 물러나라. 건초가 없는 데서 건초 냄새가 나면 그건 건초가 아니다.


28년 동안 저는 그 냄새를 다섯 번 맡았습니다.


이 일은 위험합니다. 2차 대전이 끝난 뒤로 프랑스에서 불발탄을 치우다 목숨을 잃은 데미뇌르가 600명이 넘습니다. 제 첫 선배 파트리크 르루도 그중 한 명입니다. 제가 들어온 지 3년째 되던 해였습니다. 숲에서 포탄을 들어 올리다가. 100년 된 포탄이 그날 깨어났습니다.


파트리크 선배는 늘 말했습니다. 이 땅은 아직 전쟁 중이야. 우리만 휴전한 거야.


장례식에서 선배 부인이 저한테 선배 장갑을 줬습니다. 저는 아직 그 장갑을 트럭 조수석 서랍에 넣고 다닙니다.



베르나르


3월 초였습니다. 신고 전화가 들어왔습니다.


베르나르 르페브르라는 농부였습니다. 예순한 살. 베르됭 북쪽 작은 마을에서 4대째 밀 농사를 짓는 사람입니다. 우리 분소랑은 오래된 사이입니다. 봄마다 전화하는 사람이니까. 작년에도 포탄을 열몇 발 캐냈습니다.


베르나르네 밭 가장자리에는 돌담처럼 쌓인 녹슨 쇳덩이 무더기가 있습니다. 4대가 캐낸 포탄입니다. 할아버지 때부터. 베르나르의 할아버지는 1916년에 이 마을에서 피난을 갔다가 전쟁이 끝나고 돌아와 보니 밭이 없어졌더랍니다. 구덩이만 남아서. 그 구덩이를 메우고 다시 밀을 심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포탄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손자가 이상한 얘기를 한다는 겁니다.


손자 뤼카는 여덟 살입니다. 부모가 파리에서 일해서 할아버지 할머니랑 삽니다. 그 아이가 2주 전부터 밭 북쪽 끝 언덕에 안 가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원래는 거기서 늘 놀았는데.


왜 안 가냐고 물었더니 군인 아저씨가 가지 말라고 했다는 겁니다.


파란 외투를 입은 군인 아저씨가 언덕 위에 서서 손을 저으면서 오지 말라고 했다고.


베르나르가 웃으면서 전화를 했습니다. 애가 상상력이 좋아서 그런다고. 근데 할머니 엘렌이 영 찜찜해한다고. 언덕 쪽에 혹시 포탄이 있나 한번 봐줄 수 없겠느냐고.


저는 파란 외투라는 말에 수화기를 고쳐 잡았습니다.


1916년 프랑스군 군복 색깔이 파란색이었습니다. 하늘색에 회색을 섞은 것 같은 색. 오리종 블루라고 합니다. 지평선의 파랑이라는 뜻. 들판에서 눈에 덜 띄라고 그 색을 골랐다고 합니다.


여덟 살 아이가 그걸 알 리는 없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아는 군인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군인입니다. 파란 외투에 각반을 찬 군인이 아니라.



언덕


다음 날 동료 티에리 가르니에와 같이 갔습니다. 티에리는 마흔둘이고 우리 분소에서 탐지기를 제일 잘 다루는 친구입니다.


베르나르의 밭은 넓었습니다. 겨울을 난 흙이 갈아엎어져 있었습니다. 3월의 흙은 축축하고 무겁습니다. 장화에 달라붙어서 걸을 때마다 쩍쩍 소리가 납니다. 흙에서 쇠 냄새가 났습니다. 이 동네 흙은 다 그렇습니다. 100년 동안 녹슨 쇠를 품고 있으니까.


뤼카가 할머니 손을 잡고 밭 가장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언덕 쪽으로는 한 발짝도 안 오려고 했습니다.


뤼카한테 물었습니다. 군인 아저씨가 어디 서 있었니.


뤼카가 손가락으로 언덕 꼭대기 쪽을 가리켰습니다. 오래된 떡갈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데였습니다.


저기요. 나무 옆에요. 아저씨가 이렇게 했어요.


뤼카가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고 좌우로 흔들었습니다. 오지 마라는 손짓.


그리고 기침을 했어요. 계속.


저는 티에리를 봤습니다. 티에리도 저를 봤습니다.



건초


언덕을 올라갔습니다. 바람이 북쪽에서 불어왔습니다. 차가운 3월 바람.


떡갈나무 스무 걸음쯤 앞에서 저는 멈췄습니다.


냄새가 났습니다.


갓 벤 건초 냄새.


3월이었습니다. 주변 어디에도 풀을 벤 데가 없었습니다. 밭은 갈아엎은 흙뿐이었고 언덕에는 마른 풀만 누렇게 누워 있었습니다.


저는 숨을 참고 티에리 팔을 잡아 뒤로 끌었습니다. 티에리도 맡았습니다. 우리는 바람을 등지고 서른 걸음을 물러났습니다.


방독면을 썼습니다. 고무 냄새가 코를 덮었습니다. 숨소리가 마스크 안에서 크게 울렸습니다.


티에리가 탐지기를 들고 다시 올라갔습니다. 떡갈나무 뿌리 근처에서 탐지기가 울었습니다. 삐이이이. 길고 높게. 큰 쇳덩이가 있다는 소리.


조심스럽게 흙을 걷어냈습니다. 손으로. 삽은 안 씁니다. 삽날이 포탄을 건드리면 끝입니다.


40센티미터쯤 파니까 녹슨 쇠가 나왔습니다.


독일군 77밀리 화학탄. 탄두에 녹색 십자가 표시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녹색 십자가는 포스겐이라는 뜻입니다. 껍데기 옆구리에 녹이 슬어서 손톱만 한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거기서 아주 조금씩 새고 있었습니다.


옆에 두 발이 더 있었습니다. 같은 녹색 십자가.


떡갈나무 뿌리가 그 포탄들을 감싸고 자라 있었습니다. 100년 동안. 뿌리가 굵어지면서 포탄 껍데기를 조여 금을 낸 것 같았습니다.


방독면 너머로도 장갑 낀 손끝으로 느껴졌습니다. 포탄 껍데기가 이상하게 차가웠습니다. 흙보다 더. 쇠는 원래 차갑지만 그건 얼음 같은 차가움이었습니다. 새어 나오는 가스가 쇠를 식히고 있었던 겁니다. 숨을 쉬는 쇳덩이였습니다.


뤼카가 여름마다 그 나무 그늘에서 놀았다고 했습니다. 나무 밑동에 기대서 낮잠도 잤다고.



파란 천


포탄 세 발을 특수 용기에 담아 실었습니다. 그건 우리가 늘 하는 일입니다. 잘 끝났습니다.


그다음에 티에리가 구덩이 바닥을 마저 살피다가 손을 멈췄습니다.


천 조각이었습니다.


흙이 엉겨 붙은 천. 손가락으로 흙을 털어내니 색이 보였습니다. 바랜 파란색. 회색이 섞인 하늘색.


오리종 블루.


그 밑에 뼈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작업을 멈추고 경찰과 국방부에 연락했습니다. 베르됭 근처에서는 지금도 1년에 몇 번씩 병사 유해가 나옵니다. 그때는 전문가들이 와서 수습합니다.


사흘 동안 발굴했습니다. 한 사람이었습니다. 웅크린 자세로 누워 있었다고 합니다. 두 손을 얼굴 쪽으로 모은 채. 가스를 마신 병사들이 그렇게 죽었다고 합니다. 숨을 못 쉬어서 목을 감싸 쥐고.


목 근처에서 쇠붙이가 하나 나왔습니다. 타원형 금속판. 프랑스군 인식표입니다. 반으로 접어서 하나는 시신에 남기고 하나는 떼어 가는 것.


녹을 닦아내니 글씨가 나왔습니다.


뒤발. 에밀. 1894. 피니스테르.


브르타뉴 서쪽 끝 바닷가 지방 사람이었습니다. 1916년에 스물두 살.



에밀


군 기록 보관소에서 찾아봤습니다.


에밀 뒤발 상병. 1916년 6월 베르됭 북쪽 고지에서 실종. 그날 독일군이 포스겐 포탄을 대량으로 쐈다는 기록이 있었습니다. 그 고지가 지금 베르나르의 밭 북쪽 언덕이었습니다.


기록에는 이렇게만 적혀 있었습니다. 실종. 사망 추정.


110년 동안 아무도 그를 찾지 못했습니다.


베르됭에는 두오몽 납골당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름 없는 병사 13만 명의 뼈가 있습니다. 프랑스군 독일군 섞여서. 누가 누군지 몰라서 한데 모아둔 겁니다. 에밀도 그렇게 될 뻔했습니다. 인식표가 없었다면.


에밀의 친척을 찾았습니다. 피니스테르의 바닷가 마을에 증조카딸이 살고 있었습니다. 마리 뒤발 르고프. 일흔둘.


마리 할머니가 전화로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에밀은 형제 중 막내였다고 합니다. 바닷가에서 자라서 전쟁 전에는 여름마다 건초를 베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브르타뉴 들판에서. 편지마다 건초 얘기를 썼다고 합니다. 여기 참호에서는 진흙 냄새밖에 안 나요. 고향 건초 냄새가 그리워요.


마지막 편지는 1916년 6월 초였다고 합니다. 가족이 아직 그 편지를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마리 할머니가 그 편지의 마지막 문장을 읽어줬습니다.


어제 들판에서 이상하게 건초 냄새가 났어요. 고향 생각이 나서 한참 숨을 들이마셨어요.



기침


저는 뤼카가 한 말을 생각했습니다. 군인 아저씨가 기침을 했다고.


포스겐을 마신 사람은 기침을 합니다. 처음엔 별것 아닌 것처럼. 그러다 점점 심해집니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에서 물 끓는 소리가 납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을 가다가 죽습니다.


에밀은 고향 건초 냄새인 줄 알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을 겁니다. 그러고 그 언덕에서 기침을 하며 웅크렸을 겁니다.


110년 뒤에 같은 언덕에서 같은 냄새가 새어 나왔습니다. 여덟 살 아이가 매일 그 나무 밑에서 놀았습니다.


파란 외투를 입은 군인이 언덕 위에서 손을 저었습니다. 오지 마라. 기침을 하면서.


설명은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상상을 합니다. 할아버지한테 전쟁 얘기를 들었을 수도 있고 학교에서 군복 그림을 봤을 수도 있습니다. 기침은 감기 걸린 동네 아저씨였을 수도 있습니다. 포탄은 우연히 발견됐을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누가 냄새를 맡았을 테니까.


베르나르한테 물어봤습니다. 뤼카한테 전쟁 얘기를 해준 적이 있느냐고.


베르나르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애한테 그런 얘기를 왜 하느냐고.


엘렌 할머니도 그랬습니다. 학교에서도 아직 1차 대전은 안 배운다고.



11월 11일


에밀은 피니스테르 고향 마을 묘지에 묻혔습니다. 11월 11일에. 1차 대전이 끝난 날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지금도 그날을 기념합니다.


저도 갔습니다. 베르나르랑 뤼카도 같이 갔습니다. 뤼카가 꼭 가겠다고 했답니다.


바닷가 마을이었습니다. 소금 바람이 불었습니다. 작은 돌 성당 옆 묘지. 군악대가 나팔을 불었습니다. 마리 할머니가 관 위에 마른 건초 한 다발을 올려놓았습니다. 고향 들판에서 지난여름에 베어둔 거라고 했습니다.


진짜 건초 냄새가 났습니다. 달큰하고 따뜻한. 28년 동안 그 냄새를 맡으면 몸이 먼저 굳었는데 그날은 처음으로 그 냄새가 무섭지 않았습니다.


뤼카가 그림을 한 장 관 옆에 놓았습니다. 크레파스 그림이었습니다. 떡갈나무 옆에 파란 옷을 입은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오지 마라는 손짓이 아니라 안녕 하는 손짓으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장례가 끝나고 뤼카가 제 소매를 잡아당겼습니다.


아저씨. 군인 아저씨 이제 기침 안 해요?


저는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정말 몰랐으니까요.


뤼카가 바다 쪽을 한참 보다가 말했습니다.


안 해요. 아까 저기 서서 웃었어요.


뤼카가 가리킨 데는 묘지 끝 언덕이었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바닷바람에 마른 풀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건초 냄새가 섞여 있었습니다. 관 위에 놓인 건초에서 날아온 거겠지요.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는 숨을 참지 않았습니다.



그다음


저는 아직 베르됭에서 일합니다. 봄마다 철의 수확을 거두러 다닙니다.


그 뒤로 습관이 하나 생겼습니다. 밭에 들어가기 전에 바람을 향해 한 번 숨을 들이마셔 봅니다. 건초 냄새가 나는지.


그리고 들판 끝을 한 번 둘러봅니다. 누가 서서 손을 젓고 있지는 않은지.


붉은 지대 숲에는 아직 이름 없는 병사가 수만 명 묻혀 있다고 합니다. 녹색 십자가 포탄도 아직 수없이 묻혀 있습니다.


지난달 그 숲 가장자리를 지나다가 아이 하나가 길가에 서 있는 걸 봤습니다. 부모와 산바카라 나온 아이였습니다. 아이가 숲 쪽을 가리키면서 엄마한테 말했습니다.


저기 파란 옷 입은 아저씨들이 오지 말래.


아저씨들.


저는 차를 세웠습니다. 창문을 내렸습니다.


바람이 숲 쪽에서 불어왔습니다.


다음 날 아침 티에리와 탐지기를 챙겨서 그 숲 가장자리로 갔습니다. 지금 거기를 파고 있습니다.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brunch membership
김경훈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안내견 탱고의 눈으로 길을 보고, 시각장애인 연구자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1,283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30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499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클라우스가 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