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개

가정법 제8조

by김경훈

이 나라에서 이름은 한 사람한테 하나다.


그리고 한 이름은 이 나라에 한 사람뿐이다.


김민준은 1명이다. 이서연도 1명이다. 박지훈도 1명이다. 누가 먼저 잡으면 끝이다.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아무도 못 쓴다.


100년 전에 이 법을 만든 사람들은 행정이 편해질 거라고 했다. 동명이인이 없으면 서류가 안 꼬인다고. 서류는 안 꼬였다. 대신 사람이 꼬였다.


개명은 평생 1번이다.


죽으면 이름이 반납된다. 사망신고 다음 날 오전 9시 정각에 국가 이름 등록 시스템에 풀린다.


선착순이다.


그러니까 이 나라에서 좋은 이름을 얻는 방법은 딱 하나다. 누가 죽기를 기다렸다가 9시 정각에 남보다 빨리 누르는 것.


사람들은 이걸 이름 티켓팅이라고 부른다.


대학 수강신청보다 치열하고 아이돌 콘서트보다 빨리 끝난다. 인기 이름은 0.3초면 매진이다. 수강신청은 떨어지면 다음 학기가 있고 콘서트는 떨어지면 다음 투어가 있다. 이름은 떨어지면 다음 사람이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게 30년일 수도 있다.


매크로는 불법이다. 경찰청에 이름사이버수사대가 따로 있다. 작년에 매크로를 돌리던 업자가 잡혔는데 그 사람 이름이 매크로로 잡은 이름이었다. 법원은 그 이름을 몰수했다. 이름을 몰수당한 사람은 3초 안에 새 이름을 쳐야 한다. 그 사람은 법정에서 김억울이 됐다. 판사도 웃었다고 한다. 판결문에는 안 적혔다.


나는 매크로를 안 쓴다. 손가락으로 한다. 손가락은 합법이다.


나는 이름 티켓팅 대행업자다.


사무실은 남구 봉덕동 시장 골목 2층이다. 간판에는 철학관이라고 적혀 있다. 원래 이 자리에 있던 철학관 간판을 안 떼고 그냥 쓴다. 작명을 하긴 하니까 틀린 간판은 아니다. 다만 나는 이름을 짓지 않는다. 나는 이름을 줍는다.


내 바카라상에는 키보드가 3개 있다.


기계식이다. 청축이다. 누르면 딸깍 소리가 난다. 이 소리가 중요하다. 9시 정각에 이 소리가 남보다 0.2초 먼저 나야 한다. 0.2초는 내 수수료다.


손님은 대개 부모다.


출산 예정일이 다가오면 부모들은 불안해진다. 애는 곧 나오는데 이름이 없다. 좋은 이름은 다 산 사람이 들고 있다. 산부인과 복도에 가보면 알 수 있다. 밤 11시에 아빠들이 노트북을 켜고 앉아 있다. 새로고침 누르는 소리가 복도에 가득하다. 딸깍 딸깍 딸깍. 아기 울음소리보다 크다.


그 아빠들 중에 반은 내 손님이 된다.


지난주에 온 부부는 출산 3일 전이었다. 부인은 배를 두 손으로 받치고 앉았다. 의자가 삐걱했고 부인이 한숨을 쉬었다. 남편은 앉지도 않았다.


"이서아요. 이서아 하나만 잡아주십시오."


"이서아는 살아 계십니다."


"압니다.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나는 장부를 넘겼다. 이 바닥 사람들은 인기 이름 보유자 명단을 따로 관리한다. 불법은 아니다. 공개 정보를 정리했을 뿐이다. 정리하는 데 10년이 걸렸을 뿐이다.


"34살이십니다. 건강하십니다. 마라톤을 하십니다."


남편이 벽에 머리를 댔다. 쿵 소리가 작게 났다.


"마라톤을요."


"작년 대구마라톤 완주하셨습니다."


"아니 왜 그런 걸 하십니까."


"오래 사시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부인이 웃다가 배를 잡았다.


나는 그 부부한테 대안을 드렸다. 이 장사는 대안이 반이다.


"이서아는 안 됩니다. 대신 이서하가 모레 풀립니다."


"서하요."


"서하입니다. 받침 하나 차이입니다. 부르면 거의 똑같습니다. 이서아 하고 불러도 뒤돌아봅니다."


"그건 좀."


"아니면 이서아라가 비어 있습니다."


"서아라요."


"3글자짜리는 대부분 비어 있습니다. 4글자는 다 비어 있습니다. 요즘 이서아라온 같은 이름 많이 짓습니다."


남편이 한참 말이 없더니 물었다.


"서하는 얼마입니까."


"2천만 원입니다."


"받침 하나에 2천입니까."


"받침 없는 이름은 3천입니다. 받침이 싸게 먹힌 겁니다."


그 부부는 서하로 했다. 모레 9시에 나는 딸깍 한 번으로 2천만 원을 벌었다. 부인이 전화로 고맙다고 했다. 수화기 너머로 아기가 울었다. 목청이 좋았다. 이서하는 원래 72살 할머니 이름이었다. 그 할머니도 목청이 좋았을지 모른다.


이 나라 풍경을 몇 개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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