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기가 뭘 인쇄했는지 금방 잊는다.
나는 그걸 무인 프린트방에서 배웠다. 스물네 시간 하는 데다. 복합기 네 대, 재단기 하나, 코팅기 하나, 그리고 키오스크. 사람은 없다. 흑백 한 장에 오십 원, 컬러는 삼백 원. 카드를 대고 USB를 꽂거나 파일을 전송하면 종이가 나온다.
거긴 소리가 일정하다. 복합기가 예열되는 소리, 종이가 한 장씩 밀려 나오는 소리, 배출대에 툭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토너 냄새. 뜨끈한 종이 냄새. 갓 나온 종이는 따뜻하다. 손바닥을 대면 온기가 있다. 나는 그게 좋다. 이 도시에서 돈 오십 원에 따뜻한 걸 손에 쥘 수 있는 데가 몇이나 되나.
그런데 사람들이 종이를 다 안 가져간다. 이게 은근히 많다. 스무 장을 뽑고 열아홉 장만 가져가거나, 잘못 뽑은 걸 그냥 두고 가거나, 애초에 뽑아 놓고 안 오기도 한다. 그러면 그 종이들이 복합기 배출대에 그대로 쌓인다. 다음 사람이 와서 자기 것만 빼 가고, 남의 건 그냥 둔다. 그렇게 며칠씩 쌓인다.
나는 그걸 읽는다.
복합기도 성격이 다 다르다. 1번은 빠른데 가끔 종이가 씹힌다. 2번은 느린데 정확하다. 3번은 컬러가 좀 붉게 나온다. 4번은 아무도 안 쓴다. 왜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나는 늘 2번을 쓴다. 이 년쯤 다니니까 그런 것까지 알게 됐다. 사람 없는 가게에 이 년을 다니면, 기계하고 정이 든다. 정이라기엔 좀 그렇고, 알게 된다. 아는 게 정인가 싶기도 하고.
나쁜 짓인 거 안다. 근데 뭐 어쩌겠나. 눈앞에 글자가 있으면 읽게 되는 게 사람이다. 안 읽으려고 해도 제목은 보인다. 제목이 보이면 첫 줄이 보이고, 첫 줄을 보면 다음 줄이 보인다.
그래도 규칙은 있다. 읽기만 하고 가져가지 않는다. 사진은 안 찍는다. 이름하고 주민번호가 나오면 거기서 멈춘다. 그리고 절대 안 버린다. 며칠씩 쌓여도 그냥 둔다. 그 사람이 다시 올지도 모르니까. 나는 이 규칙을 혼자 정했고 혼자 지킨다. 아무도 안 보는 데서 규칙을 지키는 건 좀 우습다. 근데 아무도 안 보니까 지키는 거다. 아무도 안 볼 때 안 지키면, 그건 그냥 안 지키는 사람이니까.
이 습관이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이 년째 백수다. 정확히는 시험 준비생인데, 이 년이 넘어가면 그냥 백수라고 부르는 게 맞는 것 같다. 나는 매일 프린트방에 온다. 문제집 자료를 뽑으러. 하루에 백 장씩 뽑는 날도 있다. 오십 원짜리 종이가 하루에 오천 원어치.
프린트방은 내가 하루에 유일하게 나오는 곳이다. 고시원에서 여기까지 칠 분. 그 칠 분이 내 산바카라이고 출퇴근이다.
새벽에 가면 가끔 사람이 있다. 대개 젊다. 야근하고 온 회사원, 과제 때문에 온 학생, 술 냄새 나는 사람. 우리는 서로 인사도 안 하고 각자 복합기 앞에 선다. 종이 나오는 소리만 난다. 어떤 새벽엔 셋이 나란히 서서 각자 다른 종이를 뽑고 있었다. 아무도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런데 그게 이상하게 나쁘지 않았다. 같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인 것도 아닌, 딱 그만큼.
내 하루는 단순하다. 열 시쯤 일어나서 씻고, 프린트방에 갔다가, 독서실에 앉는다. 밥은 두 끼. 밤에 잠깐 산바카라. 그게 다다. 사람하고 말을 섞는 일은 없다. 편의점도 무인이고, 밥집도 키오스크고, 독서실도 무인이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입을 한 번도 안 연다. 그게 이상하지도 않다. 요즘 도시는 입을 안 열고도 하루를 살 수 있게 돼 있다.
처음 읽은 건 이력서였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