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합의하시는 게 이득입니다

by김경훈

직업 산재 합의 브로커

나이 49세

성별 남자

특징 다친 사람을 제일 먼저 만난다



1.


사람이 다치면 제일 먼저 도착하는 게 나다.


공장에서 손이 끼었다거나 건설 현장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이 돌면 나는 그날 안에 병원으로 간다. 회사보다 먼저 가고 노무사보다 먼저 가고 가족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간다. 이 일은 순서가 전부다.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을 정한다. 나중에 아무리 좋은 조건을 들고 와도 처음 들은 말이 기준이 되니까. 그래서 나는 소식이 빠르다. 병원 원무과에도 공장 반장들한테도 아는 사람을 심어뒀다. 사고가 났다는 전화 한 통에 얼마씩 나간다. 그 돈이 아깝지 않은 건 순서를 사는 돈이기 때문이다.


병실에 들어가면 나는 명함을 내밀고 조용히 앉는다. 그리고 먼저 듣는다. 얼마나 아픈지 회사가 뭐라고 하는지 언제부터 일을 못 하는지. 십오 분쯤 들어주면 그 사람들은 나를 자기편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누구도 그 얘기를 안 들어줬으니까. 회사는 사고 경위서만 받아 가고 의사는 삼 분 보고 나가고 가족들은 울기만 한다. 나는 유일하게 앉아서 끝까지 듣는 사람이다.


듣는 동안 나는 세 가지를 확인한다. 첫째 이 사람이 얼마나 급한가. 대출이 있는지 애가 몇인지 외벌이인지. 급할수록 빨리 서명한다. 둘째 이 사람 뒤에 누가 있는가. 노조가 있으면 어렵고 형제 중에 따지는 사람이 있어도 어렵다. 셋째 이 사람이 자기 몸 상태를 얼마나 아는가. 대개는 모른다. 의사가 설명을 안 해줬거나 해줬어도 못 알아들었으니까. 세 번째가 제일 중요하다. 자기가 앞으로 얼마나 아플지 모르는 사람이 제일 싸게 끝난다.


그러고 나서 내가 하는 말은 늘 같다. 선생님 지금 합의하시는 게 이득입니다.


이유도 늘 같다. 산재 신청은 오래 걸린다. 승인이 날지도 모르고 소송까지 가면 이삼 년이다. 그동안 병원비는 나가고 월급은 끊긴다. 회사는 버틸 수 있지만 다친 사람은 못 버틴다. 그러니 지금 회사가 내미는 돈을 받고 끝내는 게 낫다. 나는 그 계산을 표로 만들어 보여준다. 숫자로 보여주면 사람들은 믿는다.


그 표에는 빠진 칸이 하나 있다. 삼 년 뒤 오 년 뒤에 들어갈 돈이다. 나는 그 칸을 넣지 않았다. 넣으면 계산이 뒤집히니까. 지금 받는 돈보다 앞으로 들어갈 돈이 크면 아무도 서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 표는 늘 오늘까지만 계산했다. 오늘까지만 놓고 보면 지금 합의하는 게 진짜로 이득이다. 나는 거짓 숫자를 쓴 적이 없다. 다만 언제까지 계산할지를 내가 정했을 뿐이다.


사람들은 우리를 산재 브로커라 부르고 회사 앞잡이라 부른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내 수입은 회사 쪽에서 나온다. 합의가 싸게 끝날수록 내 몫이 커진다. 하지만 나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소송이 오래 걸린다는 것도 사실이고 그동안 못 버틴다는 것도 사실이다. 세상에 남의 불행으로 먹고사는 직업이 한둘인가. 보험사도 법무법인도 병원도 다 그렇다. 나는 그중에서 제일 먼저 가서 제일 빨리 끝내주는 사람일 뿐이다.


2.


합의서에는 한 줄이 들어간다.


본 합의 이후 본 건과 관련하여 일체의 민형사상 청구를 하지 아니한다. 부제소 합의라고 부른다. 이 한 줄이 이 일의 핵심이다. 회사가 돈을 내는 이유는 다친 사람을 돕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 한 줄을 사고 싶어서니까. 이 줄이 있으면 나중에 그 사람 상태가 아무리 나빠져도 회사는 한 푼도 더 안 낸다.


문제는 몸이 나중에 나빠진다는 거다. 손가락이 잘린 사람은 처음엔 잘린 것만 문제인 것 같다. 그런데 이삼 년 지나면 남은 손가락이 굳고 어깨가 상하고 반대쪽 팔에 무리가 온다. 허리를 다친 사람은 처음엔 걷기라도 하는데 오 년 뒤에 재수술을 받는다. 이건 예외가 아니라 거의 공식이다. 나는 십오 년 동안 그 공식을 몸으로 익혔다.


그래서 나는 회사 쪽에 이렇게 보고했다. 이 사람은 지금 상태로는 요구액이 낮은데 삼 년 뒤에는 재수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부제소로 묶어두면 나중에 나올 비용을 다 막습니다. 지금이 제일 쌉니다. 회사 담당자들은 그 보고를 좋아했다. 나는 싸게 끝내는 사람으로 이 바닥에서 이름이 났다.


병실에서 다친 사람한테는 그 얘기를 안 했다. 정확히 말하면 반대로 말했다. 선생님 지금 상태가 제일 안 좋을 때예요. 앞으로 좋아지실 겁니다. 그러니 지금 받으실 수 있을 때 받으시는 게 낫습니다. 앞으로 좋아진다는 말은 위로였고 그 위로가 서명을 만들었다. 나는 그게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 몸은 모르는 거니까. 좋아질 수도 있는 거니까. 다만 나는 좋아지지 않을 확률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걸 회사 쪽에만 알려줬을 뿐이다.


한번은 삼십 대 초반 남자였다. 프레스에 오른손이 들어갔다. 손가락 세 개를 잃었다. 아내가 임신 중이었고 대출이 있었다. 그 사람이 나한테 물었다. 이거 받고 끝내면 나중에 손이 더 나빠져도 아무것도 못 받는 거 맞습니까. 나는 이렇게 답했다. 그럴 가능성은 낮습니다. 요즘 의술이 좋아서 남은 손가락은 잘 쓰시게 됩니다. 그 사람은 이틀 뒤에 서명했다.


그날 저녁 내가 회사에 보낸 보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절단 부위 특성상 삼 년 내 잔여 수지 강직 및 반대측 부하로 인한 추가 치료 가능성 높음. 부제소 포함 조기 합의 권장. 같은 사람 같은 손에 대해 나는 하루에 두 가지를 말했다. 한쪽은 입으로 했고 한쪽은 문서로 남겼다.


3.


이 일을 오래 하려면 자기를 지킬 줄 알아야 한다.


이 바닥은 사고가 나면 아래를 자른다. 문제가 터지면 회사도 법무법인도 다 손을 뗀다. 우리 같은 사람은 정식 직원도 아니고 계약서도 없다. 그냥 소개비를 받는 사람이다. 그러니 언제든 없던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다 모았다. 회사 담당자들과 주고받은 문자 이메일 통화 녹음. 어떤 조건으로 얼마에 끝내라는 지시가 온 것들 내 보고에 대해 좋다고 답이 온 것들. 십오 년 치가 쌓였다. 나는 그걸 보험이라고 불렀다. 언젠가 저들이 나를 버리면 이걸 꺼내겠다는 거였다. 나 혼자 한 게 아니라는 증거니까. 위에서 시켰다는 증거니까.


모으는 게 습관이 되니 점점 꼼꼼해졌다. 나중에 증거로 쓰려면 맥락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보고서를 더 자세히 썼다. 왜 이 금액이 적정한지 왜 지금 끝내야 하는지 근거를 붙였다. 근거가 촘촘할수록 내가 시킨 대로 판단했다는 게 명확해진다고 믿었다. 회사 담당자가 좋아한 것도 그 촘촘함이었다. 저 사람 보고서는 근거가 확실하다고. 나는 그 칭찬을 들으며 더 촘촘하게 썼다.


동료들은 그런 걸 안 모았다. 귀찮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니까. 나는 그런 동료들을 보며 속으로 웃었다. 저러다 나중에 혼자 뒤집어쓰지. 나는 십오 년 동안 성실하게 모았다. 파일을 정리하고 날짜별로 이름을 붙이고 두 군데에 백업했다. 그게 내 노후 대바카라이었다.


4.


작년에 터졌다.


한 노동자가 합의 삼 년 뒤에 재수술을 받았다. 부제소 합의 때문에 회사에 아무것도 청구하지 못했다. 그 사람이 언론에 나갔고 비슷한 사례가 줄줄이 나왔다. 십오 년 동안 우리가 처리한 합의들이 다 뒤집어졌다. 검찰이 들어왔다. 산재 합의 브로커 조직 사건이라고 불렸다.


기사에 나온 그 노동자가 누구인지 나는 이름을 보고 바로 알았다. 프레스에 오른손이 들어갔던 그 삼십 대였다. 아내가 임신 중이었던 사람. 삼 년 만에 정확히 내가 예측한 대로 됐다. 나는 그 기사를 읽으면서 이상하게도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이거였다. 내 예측이 맞았구나.


나는 겁이 나지 않았다. 준비된 사람이었으니까. 변호사를 선임하고 십오 년 치 자료를 정리했다. 나는 위에서 시킨 대로 했을 뿐이라는 걸 증명할 자신이 있었다.


회사 담당자들은 다 같은 말을 했다. 우리는 브로커가 그렇게까지 하는 줄 몰랐다고. 우리는 그냥 원만한 합의를 부탁했을 뿐이라고. 법무법인도 같은 말을 했다. 우리는 서류만 검토했다고. 실제로 병실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모른다고. 동료 브로커들도 비슷했다. 우리는 회사가 주는 조건을 전달만 했다고. 의학적인 건 우리가 어떻게 아냐고.


다들 몰랐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말은 대체로 통했다. 몰랐다는 걸 뒤집으려면 검찰이 알았다는 증거를 찾아야 하는데 그런 건 잘 안 남으니까. 이 바닥이 왜 아무것도 안 적는지 나는 그제야 알았다. 게을러서가 아니었다. 안 적는 게 이 일의 규칙이었다. 다들 알면서 안 적은 거였고 나만 그 규칙을 몰랐다. 아니 알면서도 나는 내가 예외일 거라고 믿었다.


나만 빼고.


5.


변호사가 내 자료를 다 읽고 나서 한참을 말이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이거 제출하시면 안 됩니다.


나는 이해를 못 했다. 이게 내 방패인데요. 위에서 시켰다는 증거잖아요. 변호사가 서류를 넘기며 짚었다. 여기 보세요. 선생님이 회사에 보낸 보고입니다. 이 사람은 삼 년 뒤 재수술 가능성이 높으니 지금 부제소로 묶으면 나중에 나올 비용을 다 막습니다. 지금이 제일 쌉니다. 이런 게 십오 년 동안 수백 건입니다.


나는 그 문장을 봤다. 내가 쓴 문장이었다. 자랑스럽게 쓴 문장이었다.


변호사가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몰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몰랐다는 걸 깰 증거가 없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알았다는 걸 선생님 손으로 십오 년 동안 문서로 남기셨습니다. 그것도 아주 정확하게요. 재수술 확률까지 계산해서 보고하셨잖아요. 이건 시킨 사람이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선생님이 다 알고 하셨다는 증거입니다.


나는 그래도 우겼다. 그럼 회사는요. 회사가 이걸 받아보고 좋다고 했잖아요. 변호사가 고개를 저었다. 회사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브로커가 알아서 판단해서 보낸 내용이고 우리는 원만한 처리를 부탁했을 뿐이다. 실제로 지시 문구에는 조기 종결 협조 요청 같은 표현밖에 없어요. 위험을 계산해서 문장으로 쓴 사람은 선생님 하나입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변호사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이 자료가 없었으면 선생님도 몰랐다고 하실 수 있었어요.


6.


내 방패가 내 자백이었다.


십오 년 동안 나는 나를 지키려고 그걸 모았다. 버려질 때를 대비해서. 그런데 그 대비가 나를 유일하게 못 빠져나가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 남겨서 살았고 나는 다 남겨서 걸렸다. 나는 이 바닥에서 제일 영리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제일 성실하게 자기 죄를 기록한 사람이었다.


우스운 건 내가 그 파일을 만들 때마다 뿌듯했다는 거다. 폴더를 열어 날짜순으로 정렬된 파일들을 보면 든든했다. 나는 준비된 사람이라는 느낌. 언제든 이걸 꺼내면 나는 시킨 사람 뒤에 설 수 있다는 계산. 그 계산에는 딱 하나가 빠져 있었다. 내가 시킨 사람 뒤에 서려면 먼저 내가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 방패를 들려면 싸움터에 서 있어야 한다는 걸 나는 십오 년 동안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안 든 사람은 아예 싸움터 밖에 있으면 그만이었다.


더 견디기 힘든 건 그 문서들의 내용이다. 거기엔 내가 병실에서 만난 사람들이 이름과 숫자로 적혀 있다. 삼십사 세 남자 오른손 세 손가락 절단 삼 년 내 추가 수술 확률 높음 지금 합의 시 사백만 원대 가능. 이런 문장이 수백 개다. 나는 그 사람들 앞에 앉아 십오 분씩 이야기를 들어줬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온 정보로 그 사람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아플지를 계산해서 회사에 팔았다. 다친 사람이 나한테 자기 몸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그 사람이 받을 돈은 줄어들었다.


십오 분 동안 나를 자기편이라고 믿은 사람들이 수백 명이다. 그 사람들은 나한테 애가 몇 살인지 대출이 얼마인지 아내가 뭘 하는지까지 말했다. 나는 그걸 다정하게 들었고 그날 저녁에 그 정보를 급한 정도로 환산해서 보고서에 옮겼다. 급할수록 값이 내려간다고 적었다. 사람이 나한테 마음을 열수록 그 사람 몸값이 싸졌다. 나는 그걸 십오 년 동안 능력이라고 불렀다.


병실에서 내가 제일 많이 한 말이 있다. 선생님 앞으로 좋아지실 겁니다. 그 말을 하면서 나는 그 사람이 삼 년 뒤에 다시 수술대에 오를 확률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확률을 회사에 보고하면서 지금이 제일 싸다고 썼다. 같은 사람에 대해 두 가지 말을 했고 둘 다 내 손으로 남겼다. 한쪽은 위로였고 한쪽은 견적이었다. 검찰은 그 둘을 나란히 놓고 나한테 물었다. 어느 쪽이 진짜 판단이었냐고.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둘 다 진짜였으니까. 나는 그 사람이 나빠질 걸 알면서도 좋아질 거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 파일들은 내 컴퓨터에 있다. 날짜별로 정리되어 있고 두 군데에 백업되어 있다. 나는 그걸 지울 수가 없다. 지우면 증거인멸이 되니까. 십오 년 동안 나를 지켜줄 거라 믿고 모은 것들이 이제는 지울 수도 없고 꺼낼 수도 없는 짐이 됐다. 나는 매일 그 폴더를 본다. 열지는 않는다.


가끔 그 삼십 대 남자를 생각한다. 지금 아이가 세 살쯤 됐을 거다. 그 사람이 나한테 물었던 그 질문이 자꾸 떠오른다. 이거 받고 끝내면 나중에 손이 더 나빠져도 아무것도 못 받는 거 맞습니까. 그때 그 사람은 정확한 질문을 했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질문을 정확하게 던졌고 답을 아는 사람이 바로 앞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 답을 알면서 다른 말을 했다. 그리고 그 정확한 답은 그날 저녁 회사로 보낸 내 보고서에 적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 사람 질문에 대답을 하긴 했다. 다만 그 대답을 그 사람이 아니라 회사한테 했을 뿐이다. 그리고 십오 년 뒤 그 대답들이 검찰 바카라상 위에 놓였다. 그 사람이 못 들은 대답을 이제 온 세상이 읽는다.


사람이 다치면 제일 먼저 도착하는 게 나였다. 나는 그게 내 재주라고 믿었다. 제일 먼저 도착해서 제일 먼저 듣고 제일 먼저 끝내는 것. 그런데 십오 년 동안 내가 제일 먼저 들은 그 이야기들은 위로하려고 들은 게 아니라 값을 매기려고 들은 거였다. 그리고 그 값을 매긴 종이 수백 장이 지금 나를 가리키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몰랐다고 하고 나는 못 한다. 나는 알았다. 그것도 아주 정확하게 알았다. 그걸 내 손으로 다 적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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