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종류 · 편지 1통
발견 장소 · 안방 붙박이장 위 칸
동봉물 · 별지 1매
수신인 · 공란
분류 · 미발송
안녕하십니까.
이 집을 보러 오신 분께 드리는 편지입니다.
부동산에서 이 집을 내놓은 지 1년 4개월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열한 분이 다녀가셨고 두 분이 계약 직전까지 가셨습니다. 두 분 다 계약 전날 취소하셨습니다.
이유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이번에는 미리 말씀드리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법에는 매도인이 알리는 사항이 정해져 있습니다. 누수나 균열이나 그런 것들입니다. 아래에 적는 것들은 그 목록에 없습니다.
그래도 적겠습니다.
살면서 알아야 편한 것들입니다.
집은 1988년에 제 아버지가 지으셨습니다. 저는 2013년에 물려받아 12년 살았습니다. 지금은 혼자입니다.
이 편지를 부동산에 맡기지 않고 집 안에 두는 이유가 있습니다.
부동산에 맡기면 안 보여드릴 것입니다.
집 보러 오시는 분들은 안방을 꼭 열어보십니다. 붙박이장도 열어보십니다.
그러니 보시게 될 것입니다.
1. 수도
계량기가 한 달에 0.4톤 더 나옵니다.
12년 동안 그렇습니다. 계절과 상관없이 0.4입니다.
누수를 세 번 점검받았습니다. 세 번 다 이상 없음으로 나왔습니다. 마지막에 오신 기사분은 배관을 다 열어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장님 이거 새는 데가 없어요.
수도 요금은 1년에 3만 원이 조금 넘게 더 나옵니다. 그 정도는 감당하실 만할 것입니다.
밸브를 잠그고 재보신 적이 있느냐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했습니다.
메인 밸브를 잠그고 하루를 재봤습니다.
0.4가 나왔습니다.
한 달치가 하루에 나왔습니다.
그 뒤로는 잠그지 않습니다.
0.4톤이면 400리터입니다.
욕조를 두 번 채우는 양입니다.
그 물이 어디로 가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배수 쪽도 재봤습니다. 하수도 요금은 사용량에 비례해서 나옵니다.
하수도는 0.4가 안 나옵니다.
들어오기만 하고 안 나갑니다.
2. 보일러
거실 온도를 21도로 맞추시면 됩니다.
그러면 집 전체가 따뜻해지는데 작은방 하나만 안 데워집니다. 북쪽 끝 방입니다.
배관은 정상입니다. 분배기도 정상입니다. 그 방으로 온수가 들어가는 것은 손으로 만져보면 압니다. 배관이 뜨겁습니다.
방은 차갑습니다.
온도를 24도까지 올려보신다면 그 방은 조금 데워집니다. 대신 다른 방이 덥습니다.
저는 그 방을 안 씁니다.
문을 닫아두시면 됩니다. 잠그지는 마십시오.
잠그면 밤에 소리가 납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립니다.
그 방 온도를 재보신다면 15도 안팎이 나옵니다.
겨울에도 15도이고 여름에도 15도입니다.
여름에 15도면 시원해서 좋겠다고 하실 수 있습니다.
에어컨 없이 15도가 나오려면 무언가가 열을 가져가야 합니다.
집 전체 난방비가 다른 집보다 조금 더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증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 방에 물건을 두시면 물건이 차가워집니다. 그것뿐입니다. 상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김치를 거기 뒀습니다. 잘 익었습니다.
이 얘기를 적을까 말까 했는데 적습니다.
실제로 잘 익습니다.
3. 밤 소리
새벽 3시 40분쯤에 소리가 납니다.
배관 소리입니다.
집이 오래되면 밤에 배관이 식으면서 소리가 납니다. 이건 어느 집이나 그렇습니다.
처음 얼마간은 놀라실 수 있습니다.
익숙해지면 괜찮습니다.
다만 몇 가지는 미리 말씀드리는 편이 낫겠습니다.
소리는 3분쯤 이어집니다. 3시 40분에 시작해서 3시 43분에 그칩니다.
12년 동안 같습니다.
여름에도 납니다. 보일러를 안 트는 계절에도 납니다.
배관이 식으려면 먼저 데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소리가 나는 위치가 옮겨 다닙니다.
거실에서 시작해서 복도를 지나 안방 쪽으로 옵니다.
3분 동안 그렇게 옵니다.
집 구조상 배관은 그 순서로 안 지나갑니다. 도면이 있습니다. 계약하실 때 드리겠습니다.
안방 문 앞에서 그칩니다.
문을 열어보신 적이 있느냐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열어봤습니다.
복도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열어보셔도 됩니다.
저는 이제 안 엽니다.
12년이면 안 열게 됩니다.
이 항목은 여기까지만 적겠습니다.
더 적으면 이 편지를 안 읽으실 것 같습니다.
4. 전기
두꺼비집이 현관 옆에 있습니다.
여행을 가실 때 내려두시는 분들이 계신데 저는 권하지 않습니다.
내려두시면 계량기가 계속 돕니다.
이것도 점검을 받았습니다. 한전에서 두 번 나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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