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등 기록]
소속 · 시가 점등조
구역 · 성벽 안쪽 셋째 구
담당 등 · 87개
근속 · 8년
배급 · 마석 1일 87개
현재 상태 · 근무 중
순서
점등에는 순서가 있다.
해가 성벽 위로 반쯤 내려가면 시작한다. 계절마다 시각이 다르니까 종을 듣고 나가는 게 아니라 벽을 본다.
우리 구역은 87개다.
첫 등이 물길 옆이고 마지막 등이 헛간 골목 끝이다. 그 사이를 한 번에 돈다. 되돌아오는 구간 없이 한 바퀴로 도는 순서다.
이 순서는 내가 정한 게 아니다. 나보다 앞에 있던 사람이 정했고 그 앞사람이 정했다.
87개를 다 켜는 데 1시간 반쯤 걸린다.
8년 하면 몇 번째 등에서 어느 집 저녁 냄새가 나는지 안다.
열두 번째 등에서 생선 굽는 냄새가 난다. 그 집은 8년째 생선을 굽는다.
서른한 번째 등에서 개가 짖는다. 개가 세 번 바뀌었는데 세 마리 다 그 자리에서 짖었다.
예순세 번째 등에서 아무 소리도 안 난다.
그 골목은 원래 조용하다.
이 순서를 나는 소리로 기억한다.
등을 켜면 딸깍 하고 걸리는 소리가 난다. 그 소리 사이 간격이 다르다. 등 사이가 멀면 길고 가까우면 짧다.
87번의 딸깍이 한 줄로 이어져 있다.
그 줄을 8년 들었다.
중간에 하나가 빠지면 안다. 하나가 늘어도 안다.
그게 이 일을 오래 한 사람이 가진 전부다.
다른 건 아무것도 안 배운다.
딸깍
작년 겨울에 하나를 알아냈다.
등을 다 켜고 마지막 등 앞에 서면 그날 딸깍이 몇 번이었는지 몸이 안다. 세는 게 아니라 그냥 안다.
87이어야 한다.
88이었다.
세어보려고 다음 날은 소리 내서 셌다. 골목에서 혼자 숫자를 세면서 걸었다.
87에서 끝났다.
입으로 세면 87이고 안 세면 88이다.
두 달 동안 그랬다.
지금은 안 센다.
세면 하나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니까 안 센다.
마석
등에는 마석을 넣는다.
콩알만 한 것이다. 등 아래 홈에 밀어 넣으면 딸깍 걸린다. 걸리면 켜진다.
하나가 하룻밤 간다. 아침이면 다 탄다.
다 탄 마석은 재가 된다. 손가락으로 눌러보면 부서진다. 그러면 등을 열고 털어낸다.
새 마석은 안 부서진다. 눌러도 단단하다.
무게가 다르다.
새 것이 콩 한 알쯤이고 재는 그 삼분의 일도 안 된다.
손바닥에 올려보면 안다. 8년 하면 저울이 필요 없다.
배급은 창고에서 받는다.
자루에 담아준다. 자루 목에 표가 달려 있고 거기에 수량이 적혀 있다.
87이라고 적혀 있다.
나는 8년 동안 그 자루를 안 세고 받았다.
세는 사람이 없다. 세면 창고지기가 기분 나빠한다.
재
아침에 회수한다.
등을 하나씩 열고 재를 털어서 통에 담는다. 그것도 87개를 다 돈다.
재는 다시 창고에 낸다. 뭘 하는지는 모른다. 다시 굳혀서 쓴다는 말도 있고 그냥 버린다는 말도 있다.
창고에서 재 무게를 잰다.
그게 우리 일이 제대로 됐는지 보는 방법이다. 87개어치 재가 나오면 87개를 켠 것이다.
덜 나오면 등을 안 켠 것이다. 그러면 삯이 깎인다.
8년 동안 안 깎였다.
작년 봄부터 재가 조금 더 나온다.
창고지기가 처음에는 좋아했다.
자네 요즘 잘 태우는군.
나는 태우는 게 아니라 넣기만 한다고 말하려다 말았다.
한 개어치가 더 나온다.
매일 그렇다.
이건 계산이 안 맞는다.
87개를 넣었으면 87개어치가 나와야 한다.
88개어치가 나오려면 88개를 넣었어야 한다.
나는 87개를 넣는다. 등이 87개니까 그렇다.
한 등에 두 개를 넣을 수는 없다. 홈이 하나다.
그런데 재는 88개어치다.
창고에서는 무게로만 잰다. 개수를 안 센다.
재는 세어지지 않는다. 부서지니까 세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도 이걸 이상하다고 안 한다.
무게만 맞으면 된다.
87
작년 여름에 자루를 세어봤다.
집에서 세었다. 창고 앞에서 세면 이상하게 본다.
88개였다.
표에는 87이라고 적혀 있다.
다음 날도 세었다. 88개였다.
그 뒤로 매일 세었다.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88개였다.
등은 87개다.
그러니까 하나가 남아야 한다.
남는다.
주머니에 넣어서 집에 가져온다.
반납하려고 창고에 가져간 적이 있다.
창고지기가 장부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자네한테 87개 나갔는데.
그렇다고 했다.
그럼 이건 자네 거지.
내가 산 게 아니라고 했다.
창고지기가 손을 내저었다.
가져가. 나 장부 안 맞으면 곤란해.
그래서 가져왔다.
한 가지를 해봤다.
자루를 받자마자 창고 앞에서 세어봤다. 창고지기 앞에서 세었다.
87개였다.
집에 와서 다시 세었다.
88개였다.
그날 밤에 창고 앞에서 세고 바로 등을 켜러 갔다.
87개로 87개를 켰다.
집에 오니 주머니에 하나가 있었다.
궤짝
집에 궤짝이 하나 있다.
거기에 넣는다.
작년 여름부터 넣었으니 400개가 넘을 것이다.
세어보지는 않았다.
세어볼까 하다가 안 했다.
세면 그 숫자를 알게 되고 알면 다음 날 그 숫자를 생각하면서 자루를 세게 된다.
그러면 못 산다.
궤짝은 무겁다. 마석 하나가 가볍지만 400개면 무겁다.
작년 겨울에 궤짝을 옮길 일이 있었다. 방을 고쳐야 해서 옮겼다.
혼자 못 들어서 옆집 사람을 불렀다.
둘이 들었다.
옆집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이 안에 뭐 들었길래 이렇게 무거워.
돌이라고 했다.
거짓말은 아니다.
옆집 사람이 궤짝을 내려놓고 손을 털면서 이렇게 물었다.
이거 마석 아니야.
내가 아니라고 했다.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마석 냄새 나는데.
마석에서 냄새가 나느냐고 물었다.
그 사람이 웃었다.
안 나지.
그러고 갔다.
나는 그날 궤짝을 열고 냄새를 맡아봤다.
안 났다.
그 뒤로 매달 한 번씩 맡아본다.
지난달에 났다.
무슨 냄새인지는 안 적겠다. 적을 말이 없다.
마석 냄새는 아니다. 마석은 냄새가 안 난다.
예순세 번째
작년 가을부터 예순세 번째 등이 이상하다.
넣을 때는 정상이다. 홈에 밀어 넣으면 딸깍 걸리고 켜진다.
아침에 열어보면 재가 없다.
마석이 그대로 있다.
안 탔다.
그런데 밤새 켜져 있었다.
이건 확인했다. 야경대가 새벽까지 돈다. 그 사람들한테 물어봤다.
셋째 구 골목 등 켜져 있더냐고 물었다.
다 켜져 있었다고 했다.
내가 다시 물었다. 예순세 번째 골목도 켜져 있었느냐고.
야경대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거기가 어디야.
헛간 골목 못 미쳐서 왼쪽으로 꺾는 데라고 했다.
그 사람이 한참 생각했다.
거기 꺾는 데가 있어.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나 12년 도는데 거기 안 꺾어봤네.
안 탄 마석
안 탄 마석은 따로 뒀다.
궤짝에 안 넣고 창틀 위에 올려뒀다.
세어보니 열아홉 개다.
작년 가을부터니까 매일은 아니다. 한 달에 두어 번쯤이다.
무게를 봤다.
새것보다 무겁다.
손바닥에 올려서 안다. 8년 하면 안다.
새 마석이 콩 한 알이면 이건 두 알쯤이다.
안 탔는데 무겁다.
타면 가벼워지는 게 마석이다. 안 타면 그대로여야 한다.
무거워지는 건 없다.
한 개를 다른 등에 넣어봤다. 열두 번째 등에 넣었다.
아침에 재가 나왔다.
정상으로 탔다.
예순세 번째 등에서만 안 탄다.
열아홉 개를 나란히 놓고 봤다.
무게가 다 다르다.
제일 가벼운 게 새것보다 조금 무겁고 제일 무거운 게 새것의 세 배쯤이다.
순서대로 놓아봤다.
주운 순서대로 놓으니까 가벼운 것부터 무거운 것 순이었다.
하나도 안 어긋났다.
열아홉 개가 순서대로 무거워졌다.
다음 것은 더 무거울 것이다.
이건 계산이 아니라 그냥 아는 것이다.
골목
예순세 번째 등이 있는 골목을 낮에 가봤다.
밤에는 매일 간다. 8년 동안 갔다. 낮에는 안 갔다.
가봤더니 짧았다.
열 걸음쯤이다. 양쪽에 담이 있고 끝에 벽이 있다. 막힌 골목이다.
집이 없다.
문이 하나도 없다. 담만 있다.
등이 그 안쪽 끝 벽에 걸려 있다.
사람이 안 다니는 골목에 등이 왜 있는지는 모른다.
8년 동안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등이 있으니까 켰다.
낮에 서 있으니까 이상했다.
담을 만져봤다. 오래된 담이다. 손톱으로 긁으면 부스러진다.
끝 벽도 만졌다.
끝 벽만 새것이었다.
담은 부스러지는데 그 벽은 안 부스러진다.
색이 다른지는 모르겠다. 나는 색을 잘 못 본다.
두께는 손으로 안다. 소리로 안다.
두드려봤다.
속이 비었다.
옆 담을 두드려봤다. 꽉 찬 소리가 났다. 흙담은 그런 소리가 난다.
끝 벽만 빈 소리가 났다.
벽 두께를 재보려고 했다.
골목 밖으로 나가서 그 벽 반대편으로 돌아가봤다.
반대편이 없다.
그 자리에 다른 골목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 집이 붙어 있다.
집 주인한테 물어볼까 했다.
무슨 말로 물어봐야 할지 몰라서 안 물었다.
그 집은 담이 높다.
담 높이가 그 골목 담보다 높다.
같은 담인데 안쪽에서 보면 낮고 바깥에서 보면 높다.
나는 이걸 여러 번 확인했다.
여덟 번 확인했다.
여덟 번 다 그랬다.
여덟 번 세고 그만뒀다.
아홉 번째를 세면 아홉 번째에도 그럴 것이다.
그건 안 봐도 안다.
명부
점등조에 명부가 있다.
구역마다 담당자가 적혀 있다. 삯을 주려면 그게 있어야 한다.
봄에 삯을 받으러 갔다가 봤다.
셋째 구 칸에 두 줄이 있었다.
한 줄이 내 이름이다.
한 줄이 다른 이름이다.
모르는 이름이다.
담당 등 수가 적혀 있다.
내 옆에 87.
다른 이름 옆에 1.
서기한테 물었다.
셋째 구에 두 명이냐고 물었다.
서기가 장부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한 명인데.
내가 두 줄 있다고 했다.
서기가 다시 봤다.
한 줄인데.
내가 가리켰다.
서기가 그 자리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여기 아무것도 없어.
나는 그 줄을 읽을 수 있었다.
이름도 읽었다.
삯은 87개어치만 나온다. 그건 8년 동안 같다.
그 다른 이름 앞으로 나가는 삯이 있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서기가 못 보는 줄에 대해서는 물어볼 수가 없다.
한 가지를 더 봤다.
명부는 해마다 새로 쓴다. 헌 명부는 창고에 쌓아둔다.
내가 들어온 해 명부를 찾아봤다. 8년 전 것이다.
셋째 구 칸에 두 줄이 있었다.
한 줄이 내 이름이고 한 줄이 그 이름이다.
내 옆에 65.
그 이름 옆에 1.
내가 들어왔을 때 이 구역 등은 65개였다.
23년 돌던 그 사람 때 등이 65개였다고 했다.
내가 받은 게 65개였다.
지금은 87개다.
8년에 22개가 늘었다.
그 이름 옆 숫자는 8년 동안 1이다.
한 번도 안 늘었다.
앞사람
내 앞에 이 구역을 돌던 사람이 있다.
지금 성 밖 마을에 산다. 나이가 많다.
가을에 찾아갔다.
술을 사 갔다.
한참 옛날 얘기를 했다. 그 사람은 23년을 돌았다고 했다.
내가 물었다.
예순세 번째 등 아세요.
그 사람이 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고 이렇게 말했다.
거기 몇 번째지.
예순세 번째라고 했다.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내 때는 마흔한 번째였어.
순서가 바뀌었느냐고 물었다.
순서는 안 바뀐다. 그 사람이 정한 순서를 내가 그대로 받았다.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등이 늘었지.
몇 개였느냐고 물었다.
내 때는 예순다섯이었어.
지금 87개라고 했다.
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늘겠지.
내가 물었다.
등이 왜 늡니까.
그 사람이 술을 따르면서 이렇게 말했다.
시가 커지면 등이 늘지.
셋째 구는 안 커졌다고 했다. 8년 동안 집 한 채도 안 늘었다.
그 사람이 잔을 들다가 멈췄다.
그러고 이렇게 물었다.
자네 자루 세나.
세지 않는다고 했다.
거짓말이었다.
그 사람이 내 얼굴을 봤다.
거짓말인 걸 안 것 같았다.
그러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열두 해째부터 셌어.
몇 개였느냐고 물었다.
예순여섯.
등이 예순다섯인데 예순여섯이면 하나 남는다.
그 남은 걸 어떻게 하셨느냐고 물었다.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궤짝에 넣었지.
그 궤짝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그 사람이 술잔을 비우고 이렇게 말했다.
자네 방에 있잖아.
나는 그 집에서 나왔다.
내 궤짝은 내가 산 것이 아니다.
이사 왔을 때부터 방에 있었다.
그 방은 점등조가 준다. 구역을 맡으면 그 구역 방을 받는다.
그 사람이 살던 방이다.
23년 살던 방이다.
궤짝은 두고 갔다.
나도 두고 갈 것이다.
늘어난 등
등이 22개 늘었다.
이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시가에서 등을 더 달라고 하면 단다.
그런데 나는 등을 단 적이 없다.
다는 건 목수가 한다. 우리는 켜기만 한다.
목수가 오면 안다. 사다리를 지고 오니까 안다.
8년 동안 목수를 세 번 봤다. 세 번 다 부러진 등을 고치러 왔다.
새로 단 걸 본 적이 없다.
그러면 22개가 언제 늘었는가.
순서로도 안다. 새 등이 생기면 순서가 바뀐다. 앞뒤가 밀린다.
8년 동안 순서가 안 바뀌었다.
내가 처음 배운 순서 그대로 돈다.
그런데 65개가 87개가 됐다.
이건 계산이 안 맞는다.
나는 이걸 작년에야 알아챘다.
8년 동안 매일 돌면서 몰랐다.
매일 도는 사람은 어제와 오늘만 비교한다.
8년 전과는 비교를 안 한다.
오늘
오늘 자루를 받았다.
표에 87이라고 적혀 있다.
집에서 세었다.
89개였다.
두 개 많다.
작년 여름부터 오늘까지 매일 88개였다. 하루도 안 틀렸다.
오늘 89개다.
나는 지금 등을 켜러 나간다.
87개를 켜면 두 개가 남는다.
예순세 번째 등에 넣을 때 손이 떨릴 것 같다.
8년 동안 안 떨렸다.
한 가지를 정했다.
오늘은 예순세 번째를 켜고 나서 그 자리에 서 있어보려고 한다.
끝 벽이 속이 비었다.
두드리면 소리가 난다.
낮에 두드렸을 때는 한 번 났다.
밤에 두드리면 몇 번 날지 나는 모른다.
해가 성벽 위로 반쯤 내려갔다.
나간다.
나가기 전에 궤짝을 열었다.
오늘은 세어보기로 했다.
세다가 그만뒀다.
이유는 이렇다.
세는데 궤짝이 안 줄었다.
꺼낸 것을 옆에 쌓으면서 세는데 궤짝 안이 안 줄어든다.
400개를 꺼냈다. 옆에 400개가 쌓였다.
궤짝 안이 처음 그대로였다.
나는 꺼낸 것을 다시 넣었다.
넣고 뚜껑을 닫았다.
닫으면서 안 무거워졌는지 봤다.
무거워졌다.
두 개 늘었다.
오늘 자루가 89개였다.
87개를 켜면 두 개가 남는다.
남은 두 개를 넣을 궤짝은 이미 무거워져 있다.
넣기도 전에 무거워져 있다.
나는 지금 나간다.
예순세 번째 등에서 두드려볼 것이다.
낮에 한 번 났으니 밤에도 한 번 나기를 바란다.
한 번이면 벽이다.
두 번이면 벽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