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분

by김경훈

세차 기계가 차를 한 번 훑고 지나가는 데 삼 분이 걸린다.


정확히는 코스마다 다르다. 기본이 삼 분, 광택까지 하면 오 분. 나는 늘 기본을 고른다. 오천 원. 오 분짜리는 팔천 원인데, 삼천 원 차이면 대리 한 콜을 뛰어야 나온다. 그리고 나한테 필요한 건 광택이 아니라 삼 분이다.


나는 밤에 대리운전을 한다. 마흔여덟이고, 이 일을 사 년째 하고 있다.


대리운전이라는 게 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 남의 차 운전해 주는 거 아니냐고. 맞다. 근데 정확히 말하면, 남의 자리에 앉는 일이다. 남의 시트에 앉고, 남의 핸들을 잡고, 남의 냄새 속에서 삼십 분을 간다. 그동안 뒷자리에서는 진짜 주인이 자거나, 전화를 하거나, 토한다.


차마다 냄새가 다르다. 아기 태우는 차는 분유 냄새가 나고, 영업하는 사람 차는 종이 냄새가 난다. 개 키우는 집 차는 아무리 청소해도 개 냄새가 난다. 나는 이제 냄새만 맡아도 그 집이 대충 그려진다. 사 년 동안 남의 차를 몇천 대 몰았다. 그러니까 나는 사 년 동안 몇천 개의 남의 인생 안에 삼십 분씩 앉아 있었던 셈이다.


손님들은 대개 말을 안 건다. 그게 편하다. 가끔 말 거는 손님이 있는데, 열에 아홉은 자기 얘기를 한다. 회사 얘기, 마누라 얘기, 돈 얘기. 나는 네네, 하면서 듣는다. 대리 기사한테 말하는 건 아무 데도 안 남으니까 그런 거다. 우리는 어차피 다시 안 볼 사람이고, 이름도 모르고, 내리면 끝이니까. 사람들은 그런 상대한테 제일 솔직해진다. 나는 밤마다 낯선 사람들의 제일 솔직한 얘기를 듣고, 아침에 다 잊는다. 그것도 일이다.


물론 좋은 손님만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손님은 내리면서 만 원짜리를 던지듯 준다. 어떤 손님은 운전을 이따위로 하냐고 한다. 어떤 손님은 내가 뒷문을 열어 주기를 기다린다. 나는 다 한다. 그거 한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근데 가끔 신호 대기 중에 룸미러로 내 얼굴이 보일 때가 있다. 마흔여덟 먹은 남자가 남의 차 운전석에 앉아 웃고 있는 얼굴. 그럴 때는 미러를 좀 틀어 놓는다.


콜이 끊기는 시간이 있다. 새벽 세 시에서 네 시 사이. 술자리는 다 끝났고 첫차는 아직 멀었다. 그 한 시간이 제일 애매하다.


대리 기사한테 제일 긴 시간은 운전하는 시간이 아니다. 다음 콜까지 걸어가는 시간이다. 손님을 내려 주면 나는 그 동네에 혼자 남는다. 대개 아파트 단지 안이거나 외곽이다. 거기서 다음 콜이 뜰 때까지 걸어 나온다. 십 분, 이십 분. 새벽에 남의 동네를 혼자 걷는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동네를. 사 년 동안 이 도시 안 걸어 본 데가 없다. 근데 다 남의 동네였다.


처음엔 편의점 앞에 차를 대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 오래 있으면 눈치가 보인다. 무인 편의점이라도 그렇다. 유리문 안쪽이 훤히 보이니까, 내가 그 앞에 죽치고 있는 게 카메라에 다 찍힌다. 찍히는 게 무서운 건 아닌데, 찍히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게 좀 그렇다.


그래서 찾은 데가 무인 세차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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