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법 제5조
사람은 태어날 때 봉투를 하나 받는다.
병원에서 준다. 아기 발도장을 찍는 그 종이하고 같이 나온다. 안에는 종이가 한 장 들어 있고 거기 한 줄이 적혀 있다.
그 사람 인생의 정답이다.
봉투는 못 연다. 열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물리적으로 안 열린다. 뜯으면 글자가 사라진다. 열에 반응하는 잉크라 손으로 뜯을 때 나는 미세한 열에도 날아간다. 사람들은 이걸 백 년 동안 별짓을 다 해서 확인했다. 냉동실에 넣고 뜯은 사람도 있고 물속에서 뜯은 사람도 있다. 다 사라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봉투를 못 연 채로 평생 산다.
죽을 때 연다.
정확히는 죽고 나서 유족이 연다. 죽은 사람 봉투는 열린다. 체온이 없어지면 잉크가 굳는다. 그때는 뜯어도 안 사라진다.
그래서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은 봉투를 읽는다. 고인의 정답을. 대개 이런 식이다.
너는 바다 근처에 살았어야 했다.
너는 그 사람과 헤어지지 말았어야 했다.
너는 노래를 했어야 했다.
읽고 나면 다들 운다. 평생 대구에서 산 사람 봉투에 바다 근처라고 적혀 있으면 유족은 그 자리에서 무너진다. 아버지가 평생 틀리게 살았다는 걸 아버지 장례식에서 알게 되는 것이다.
봉투는 정답을 알려주는데 인생이 끝난 다음에 알려준다.
이게 이 세상의 규칙이다.
봉투 때문에 세상은 좀 이상하게 돌아간다.
소개팅에 나가면 봉투 얘기부터 한다. 봉투를 목에 걸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안 열어봤다는 표시다. 열어본 사람은 봉투가 얇아진다. 장비를 쓰면 봉투에 흔적이 남으니까. 그래서 소개팅에서 남자가 이렇게 묻는다.
"봉투 안 열어보셨죠."
"안 열었어요."
"보여주실 수 있어요."
봉투가 두꺼우면 순수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자기 정답을 미리 훔쳐보지 않은 사람. 요즘 애들은 봉투를 안 열어본 걸로 자존심을 세운다. 나는 그런 애들 봉투를 몰래 열어주는 걸로 먹고산다.
점집도 바뀌었다. 옛날에는 사주를 봤다는데 지금은 봉투를 본다. 봉투를 못 여니까 점쟁이가 봉투를 손에 쥐고 기운을 읽는 척한다. 다 사기다. 봉투는 손으로 못 읽는다. 장비가 있어야 한다. 나는 진짜 사기꾼이고 점쟁이는 가짜 사기꾼이다. 나는 진짜로 읽어준다.
보험회사는 봉투 특약을 판다. 봉투에 병 얘기가 있으면 보험료가 오른다는 소문이 있는데 이건 헛소문이다. 봉투에는 병이 안 적힌다. 봉투는 미련만 적는다. 이건 뒤에 말하겠다.
정치인들은 봉투를 안 여는 걸 공약으로 건다. 저는 제 봉투를 죽을 때까지 안 열겠습니다. 국민만 보고 가겠습니다. 그러면 표가 올라간다. 자기 정답도 안 보고 국민을 본다니까 훌륭해 보인다. 실은 다 몰래 나 같은 사람한테 와서 열어본다. 나는 그런 손님을 몇 받았다. 이름은 안 밝힌다. 나도 예의가 있다.
나는 봉투를 미리 읽는다.
살아 있는 사람 봉투를.
방법이 있냐고 물으면 있다. 다만 안 알려준다. 알려주면 나만의 기술이 아니게 된다. 대신 이것만 말하겠다. 잉크는 열에 반응한다. 열에 반응한다는 건 특정 온도에서 사라진다는 뜻인데 그 온도보다 살짝 낮은 온도에서는 잠깐 비친다. 아주 잠깐. 이 초쯤.
이 초면 한 줄을 읽는다.
나는 이 초를 판다.
내 사무실은 대구 중구 종로 헌바카라방 골목 안쪽이다. 헌바카라방 사이에 문이 하나 있고 아무 간판도 없다. 헌바카라 냄새가 좋다. 오래된 종이 냄새 속에 있으면 내가 다루는 게 종이라는 게 자연스러워진다.
손님은 두 종류다.
자기 봉투를 읽으려는 사람하고 남의 봉투를 읽으려는 사람.
자기 봉투를 읽으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자기 인생의 정답을 죽기 전에 알고 싶은 것이다. 나는 이 손님들이 좋다. 값을 잘 치른다. 정답은 비싸다.
남의 봉투를 읽으려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대개 나쁜 일이다. 배우자 봉투를 읽어서 그 사람 정답에 자기가 없으면 이혼하려는 사람. 부모 봉투를 읽어서 유산 관련 뭔가를 확인하려는 사람. 나는 이런 일도 한다. 나는 사기꾼이지 성직자가 아니다.
작년에 여자가 하나 왔다. 남편 봉투를 들고 왔다. 남편 몰래 빼온 것이다. 남편이 목에 걸고 자는데 자는 동안 풀어서 왔다고 했다. 새벽에 다시 걸어놔야 한다고 했다. 두 시간 안에 읽어달라고 했다.
"남편 정답에 제가 있는지 보고 싶어요."
"없으면요."
"그럼 헤어질 거예요. 저는 그 사람 정답이 아닌데 붙잡고 살기 싫어요."
나는 읽어줬다. 천만 원을 받았다.
남편 봉투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너는 그때 그 여자를 붙잡았어야 했다.
여자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 여자는 자기가 그 여자인 줄 알았다. 남편이 자기를 붙잡았으니까. 그래서 결혼했으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봉투는 안 한 걸 적는다. 남편이 붙잡은 여자가 아니라 못 붙잡은 여자를 적은 것이다. 결혼 전에 헤어진 누군가를. 그 여자는 자기가 이십 년을 산 사람의 정답이 다른 여자라는 걸 알고 갔다.
새벽에 봉투를 다시 걸어놨는지는 모른다.
한 달 뒤에 그 여자가 전화해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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