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부
폐(肺)는 코에 구멍을 연다. 폐기가 통하면 코가 향취를 안다. — 《황제내경》 영추편
1
노만수는 사십 년 동안 코로 먹고살았다.
약령시에서 약재상을 했다. 스물여덟에 시작해서 예순여덟이 됐다. 가게 이름은 만수당(萬壽堂)이었다. 자기 이름 만수를 그대로 썼는데 뜻은 오래 산다는 만수(萬壽)로 붙였다. 약재 파는 집에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약재는 눈으로만 봐서는 모른다.
당귀는 진짜와 가짜가 있다. 참당귀와 일당귀가 다르고 중국산과 국산이 다르다. 눈으로 보면 비슷하다. 색깔도 비슷하고 모양도 비슷하다. 그런데 코에 대면 다르다. 참당귀는 향이 두껍고 뒤에 단내가 남는다. 일당귀는 향이 얇고 앞에서 끝난다. 노만수는 봉지를 열자마자 알았다. 열 걸음 밖에서도 알 때가 있었다.
천궁도 그랬다. 백출도 그랬다. 계피는 세 종류를 구분했다. 숙지황은 얼마나 잘 쪘는지를 냄새로 알았다.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린 것과 대충 찐 것은 단내의 깊이가 달랐다.
사십 년이었다.
이월에 감기를 한 번 심하게 앓았다. 열이 사흘 났다. 노만수는 그냥 몸살인 줄 알고 버텼다. 나이 먹으니 감기도 오래간다고 생각했다. 열이 내리고 목이 나았다.
그런데 냄새가 안 났다.
처음엔 코가 막혀서 그런 줄 알았다. 코는 안 막혀 있었다. 숨은 잘 쉬어졌다. 그런데 냄새가 없었다.
노만수가 가게로 나가서 당귀 봉지를 열었다.
아무 냄새도 안 났다.
노만수는 그 봉지를 코에 대고 한참 서 있었다. 사십 년 동안 그 냄새를 맡았다. 그 냄새로 밥을 먹었고 아이 둘을 키웠고 집을 샀다. 봉지를 열면 늘 거기 있던 냄새였다.
없었다.
이비인후과에 갔다. 내시경을 넣어봤다. 코 안은 깨끗하다고 했다. 감기 후에 후각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대개는 몇 달 안에 돌아온다고. 안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스테로이드 스프레이를 줬다.
넉 달이 지났다. 유월이었다.
돌아오지 않았다.
2
노만수는 심의당에 올라가본 적이 없었다.
십 년이었다. 그 건물 이 층에 한의원이 생긴 지 십 년쯤 됐다. 노만수는 그 앞 자리에 앉아서 십 년을 봤다. 환자들이 올라가는 걸 봤고 내려오는 걸 봤다. 원장이 아침에 오는 걸 봤고 저녁에 나가는 걸 봤다. 골목에 포르쉐를 대려다가 못 대는 걸 여러 번 봤다.
올라간 적은 없었다.
약재상이 한의원에 가는 게 좀 그랬다. 약을 파는 사람이 약을 지으러 가는 것 같아서. 그리고 딱히 아픈 데도 없었다.
칠월 첫째 주 목요일에 노만수가 가게 문을 일찍 닫았다.
셔터를 반쯤 내려놓고 골목 안으로 걸었다. 낯선 기분이었다. 사십 년 동안 이 골목에서 장사했는데 이 골목을 걸어본 적은 별로 없었다. 늘 앉아 있었다.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봤다.
계단 앞에 섰다.
나무 계단이었다. 노만수가 발을 올렸다.
삐걱.
노만수가 멈췄다.
이 소리를 알았다. 십 년 동안 이 소리를 아래서 들었다. 사람이 올라가면 삐걱 끼익 했다. 몇 번째 계단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지도 알 것 같았다.
노만수가 올라갔다. 삐걱 끼익. 다섯 번째에서 다시 삐걱.
이 층에 올라오니 문이 있었다. 유리문이었다. 나무 현판이 붙어 있었다. 심의당. 붓글씨였다.
노만수가 그 글씨를 봤다.
십 년 동안 아래서만 봤던 글씨였다.
문을 밀었다.
3
대기실에 젊은 여자가 있었다. 폰을 보고 있었다.
들어서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노만수를 봤다. 잠깐 표정이 멈췄다.
"어 사장님."
"어."
"올라오셨네요."
"어."
여자가 폰을 내려놓았다. 노만수가 대기실을 둘러봤다. 좁았다. 낡은 소파가 있었고 테이블이 있었고 구석에 화롯불이 있었다. 뭔가가 끓고 있었다.
"진료 보러 오셨어요?"
"그래."
"어디가 안 좋으세요?"
노만수가 잠깐 대답을 안 했다.
"코가."
여자가 접수 카드를 꺼냈다.
"들어가시면 돼요."
노만수가 진찰실 문을 열었다.
한의사가 진찰 의자에 앉아 있었다. 흰 가운이었다. 손에 사과를 들고 있었다. 깎지 않은 사과를 그냥 베어 먹고 있었다.
노만수가 들어서자 한의사가 사과를 내려놓았다.
"어서 오이소."
한의사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잠깐 멈췄다.
"사장님이네예."
"어. 나야."
"올라오셨네예."
"올라왔지."
한의사가 자리를 가리켰다. 노만수가 앉았다. 마주 앉으니 둘 다 컸다. 방이 좁아 보였다.
"십 년 만에 처음이지예."
"그렇지."
"어디가 불편하십니꺼."
노만수가 잠깐 손을 봤다.
"냄새가 안 나."
한의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월에 감기를 한 번 심하게 앓았어. 그러고 나서 안 나."
"넉 달 됐네예."
"넉 달 됐지."
"이비인후과는예."
"갔지. 코 안은 깨끗하대. 감기 뒤에 그럴 수 있다고. 대개 몇 달 안에 돌아온다는데 나는 안 돌아와."
한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약재상이신데예."
노만수가 그 말을 들었다.
"그래."
"사십 년 하셨지예."
"사십 년 했지."
한의사가 잠깐 노만수를 봤다.
"그러면 넉 달 동안 어떻게 하셨습니꺼."
노만수가 대답을 안 했다.
4
"약침 한 방 맞아보이소."
"어디에."
"코 옆이랑 손이라예."
노만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젊은 여자가 약침 트레이를 들고 들어왔다. 노만수를 보고 잠깐 멈췄다가 트레이를 내려놓았다.
"영향혈(迎香穴)이라꼬 콧방울 옆입니더."
"이름이 좋네."
"예?"
"영향(迎香). 향을 맞이한다는 뜻 아이가."
한의사가 잠깐 노만수를 봤다.
"맞습니더."
"그 자리 이름이 그런 줄 몰랐네."
"사십 년 하셨는데예."
"약재만 알았지 혈 이름은 몰라."
바늘이 들어왔다.
"윽."
"참을 만하지예."
"참을 만하지."
한의사가 맥을 짚었다. 오래 짚었다. 혀를 보라고 했다. 노만수가 혀를 내밀었다. 한의사가 노만수의 가슴 쪽을 눌렀다. 등도 눌렀다.
"폐가 좀 약해져 있습니더."
"폐?"
"폐개규어비(肺開竅於鼻)라꼬 폐가 코에 구멍을 연다는 말이 있습니더. 코는 문이고 폐가 방이라예."
노만수가 그 말을 들었다.
"귀는 신장이고 코는 폐고 그런 거 말이가."
"아시네예."
"약 팔면서 귀동냥으로 들었지."
"이월에 감기 앓으셨다 캤지예. 그때 폐기(肺氣)가 상한 겁니더. 감기는 나았는데 폐기가 안 돌아온 기라예. 폐가 코까지 기운을 못 밀어주니까 코가 문을 못 여는 겁니더."
"그러면 폐를 고치면 코가 돌아오나."
한의사가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돌아올 수도 있고 안 돌아올 수도 있습니더."
노만수가 그 대답을 들었다.
"솔직하네."
"넉 달이면 좀 지났습니더. 반년 안에 안 돌아오면 어려워집니더. 지금 넉 달이니까 아직 시간이 있긴 합니더."
"확률이 얼마고."
"모릅니더."
노만수가 웃었다. 소리를 내고 웃었다.
"모른다 카는 의사는 처음 보네."
"모르니까예."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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