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칸

by김경훈

구술자 · 강태오 31세 로드트레인 기사

고향 · 인천

경력 · 호주 생활 7년 중 운전 4년

노선 · 노던 준주 앨리스스프링스에서 다윈까지 야간

차량 · 트레일러 4량 로드트레인 길이 53.5미터

물려준 사람 · 윌리엄 빌 하틀리 68세



굿다이


강태오입니다. 인천 사람이고 호주에 온 지 7년 됐습니다.


호주 사람들은 뭐든 줄입니다. 아침밥 브렉퍼스트는 브레키. 오후는 아보. 트럭 기사는 트러키. 맥주 한 병은 스터비. 제 이름 태오는 줄일 데가 없어서 다들 억울해합니다. 그래서 그냥 키드라고 부릅니다. 서른한 살인데도.


워킹홀리데이로 왔습니다. 퀸즐랜드 망고 농장에서 1년. 그때 농장에 망고를 실으러 오던 트럭 기사들이 한 달에 버는 돈을 듣고 눈이 돌았습니다. 그래서 남았습니다. 대형 면허를 따는 데 2년 걸렸습니다. MC 면허라고 트레일러를 여러 개 달고 다닐 수 있는 제일 높은 등급입니다. 영어 필기보다 후진 시험이 더 어려웠습니다.


로드트레인은 도로 위의 기차입니다. 앞에 운전석 달린 머리를 프라임 무버라고 하고 그 뒤에 트레일러를 줄줄이 답니다. 트레일러와 트레일러 사이는 돌리라는 바퀴 달린 연결 장치로 잇습니다. 저는 넷을 답니다. 다 합치면 53.5미터. 아파트 20층을 옆으로 눕힌 길이입니다.


호주 한가운데는 철도가 듬성듬성해서 이게 기차 대신 다 나릅니다. 소. 기름. 시멘트. 맥주. 호주 사람들 말로는 맥주가 제일 중요하답니다.



빌


제 노선은 빌 하틀리 할아버지한테 물려받았습니다.


윌리엄 하틀리. 다들 빌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순여덟. 앨리스스프링스 토박이. 스튜어트 하이웨이만 34년을 탔습니다. 남쪽 애들레이드에서 북쪽 다윈까지 대륙 한가운데를 세로로 뚫고 가는 길입니다. 그중에 앨리스에서 다윈까지 1500킬로미터가 빌의 구간이었습니다. 밤에 떠나서 다음 날 오후에 도착합니다.


빌은 목소리가 갈퀴로 자갈 긁는 소리 같았습니다. 담배를 50년 피웠다고 했습니다. 손바닥이 사포였습니다. 악수하면 디젤 냄새가 손에 옮아서 사흘을 안 빠졌습니다.


재작년에 빌이 은퇴하면서 회사에 그 노선을 저한테 주라고 했습니다. 배차 담당 셰인 머피가 놀라서 저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빌이 아시아 애송이를 찍었다고. 다들 탐내는 노선인데.


저도 놀랐습니다. 빌과는 같이 두 번 뛴 게 전부였습니다. 로드하우스에서 맥주 몇 번.


로드하우스는 사막 고속도로에 띄엄띄엄 있는 휴게소입니다. 주유기 몇 개에 식당 하나 모텔 방 몇 개. 다음 로드하우스까지 200킬로미터가 넘는 데도 있습니다.


빌이 은퇴 전날 테넌트크리크 로드하우스에서 맥주를 사줬습니다. 그러고 맥주 코스터를 하나 뒤집어서 볼펜으로 뭘 적었습니다. 코스터는 맥주잔 밑에 까는 동그란 종이 받침입니다. 앞에는 맥주 회사 그림이 있고 뒤는 하얗습니다.


이 길 규칙이다 마이트. 다섯 개.


마이트는 친구라는 뜻입니다. 호주에서는 경찰도 딱지를 끊으면서 마이트라고 합니다.


저는 웃으면서 받았습니다. 할아버지 미신이겠거니 했습니다.


빌은 웃지 않았습니다.



다섯 개


코스터에 적힌 건 이랬습니다. 빌 글씨 그대로.


하나. 루는 피하지 마라. 그냥 받아라.


둘. 밤에 길가에서 손 흔드는 사람 있으면 서지 마라. 무전으로 알려라.


셋. UHF 40번에서 네 진짜 이름 부르면 대답하지 마라.


넷. 밤에 거울로 트레일러 세지 마라.


다섯. 다섯이면 해 뜰 때까지 계속 가라.


첫째는 진짜 규칙입니다. 루는 캥거루입니다. 밤에 헤드라이트를 보면 길 한가운데서 얼어붙습니다. 승용차는 핸들을 꺾어서 피하면 되지만 53미터짜리가 핸들을 꺾으면 뒤 트레일러들이 채찍처럼 휘다가 줄줄이 넘어갑니다. 그래서 그냥 받습니다. 트럭 앞에 굵은 쇠파이프 범퍼가 있습니다. 루 바라고 합니다. 그걸 받으라고 다는 겁니다.


첫 달에 다섯 마리를 받았습니다. 쿵 하고 핸들이 손바닥에서 한 번 튑니다. 못 섭니다. 로드트레인은 꽉 실으면 서는 데 1킬로미터 가까이 걸립니다. 처음에는 울었습니다. 다음 로드하우스에서 루 바에 낀 털을 빼면서도 울었습니다. 따뜻했습니다.


석 달이 지나니까 안 울었습니다.


둘째도 말이 됩니다. 어차피 못 서니까. 1킬로미터 지나서 서봤자 걸어서 돌아가야 합니다. 무전으로 뒤차에 알리는 게 맞습니다.


셋째부터가 이상했습니다. 40번은 트럭 기사들이 쓰는 고속도로 무전 채널입니다. 다들 별명으로 부릅니다. 빌은 올드 빌. 저는 키드. 그런데 진짜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지 말라니.


넷째 다섯째는 더 이상했습니다. 제 트레일러는 넷입니다. 다섯이 될 일이 없습니다.


빌한테 물었더니 맥주를 다 마시고 잔을 코스터 위에 탁 내려놨습니다.


그러니까 세지 말라고 마이트.



밤


1년은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아웃백의 밤은 정말 깜깜합니다. 아웃백은 호주 내륙의 사막 지대를 말합니다. 사람보다 소가 많고 소보다 캥거루가 많고 캥거루보다 파리가 많은 곳입니다. 앨리스를 빠져나가면 10분 만에 불빛이 다 없어집니다.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하얀 중앙선만 몇 시간 동안 빨려 들어옵니다.


새벽 4시가 제일 춥습니다. 히터를 틀어도 발목이 시립니다. 그러다 해가 뜨면 한 시간 만에 뜨거워지고 파리가 옵니다. 호주 파리는 눈물과 콧물을 먹으러 얼굴로 달려듭니다. 여기 사람들은 그걸 손으로 쫓는 동작을 호주식 인사라고 부릅니다.


창문을 조금 열면 사막 냄새가 들어옵니다. 낮에 달궈진 흙이 식으면서 내뿜는 냄새. 마른 풀 냄새. 가끔 유칼립투스. 기침약 냄새입니다. 멀리서 딩고가 웁니다. 호주 들개입니다. 늑대처럼 길게 아우우.


밤에는 거울에 아무것도 안 보여서 셀 일도 없었습니다. 대신 소리를 듣습니다. 트레일러 넷이 다 소리가 다릅니다. 첫째 칸은 웅 하고 묵직하게. 둘째는 돌리에서 덜컹. 셋째는 문이 살짝 헐거워서 철컥철컥. 넷째는 맨 끝이라 바람을 받아서 휘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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