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부
아이는 장부가 연약하고 형기가 아직 차지 않았다. 그러나 순양(純陽)의 몸이라 낫는 것도 빠르다. — 소아 의서
1
강도윤은 아침마다 배가 아팠다.
여덟 시쯤이었다. 정확히는 밥을 다 먹고 가방을 멜 때쯤. 그때가 되면 배꼽 아래가 뭉치는 것 같았다. 도윤이는 그 느낌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콕콕 쑤시는 것도 아니고 쥐어짜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뭔가 뭉쳐 있었다. 딱딱한 게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엄마 배 아파."
최수현은 처음에 걱정했다. 두 번째도 걱정했다. 세 번째부터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주말에는 안 아팠다.
토요일 아침에도 일요일 아침에도 도윤이는 멀쩡했다. 잘 먹고 잘 놀았다. 월요일 아침이 되면 다시 배가 아팠다. 최수현은 그 패턴을 알아채고 나서 좀 화가 났다. 화가 났다가 걱정이 됐다가 다시 화가 났다.
소아과에 갔다. 배를 만져봤다.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변비도 아니라고 했다. 혹시 몰라서 초음파도 봤다. 깨끗했다. 소아과 선생님이 기능성 복통일 수 있다고 했다. 스트레스성일 수 있다고.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라고 했다.
최수현이 물어봤다.
"도윤아 학교에서 무슨 일 있어?"
"없어."
"친구랑 싸웠어?"
"아니."
"선생님이 무서워?"
"아니."
"그럼 왜 배가 아파?"
"몰라."
도윤이는 진짜 모르는 것 같았다. 최수현은 그게 더 답답했다.
담임 선생님한테 전화도 해봤다. 학교에서는 잘 지낸다고 했다. 친구도 있고 수업도 잘 듣고 별문제 없다고. 오히려 요즘 좀 조용해진 것 같긴 한데 크게 이상한 건 못 느꼈다고 했다.
한 달이 지났다.
도윤이는 여전히 아침마다 배가 아팠다. 아프다고 하고 나서도 결국은 학교에 갔다. 안 가겠다고 떼를 쓰는 건 아니었다. 그냥 아프다고 하고 배를 잡고 있다가 시간이 되면 갔다. 다녀와서는 괜찮았다.
최수현은 그게 꾀병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꾀병이면 학교를 안 가려고 했을 것이다. 도윤이는 갔다. 아픈데 갔다.
한의원 얘기를 꺼낸 건 도윤이 친구 엄마였다.
"소아과에서 안 나오면 한의원 가봐. 애들 배 아픈 거 한의원이 잘 봐."
"한약 먹여도 돼요? 애가 아홉 살인데."
"애들 약 따로 있어. 약령시에 하나 있는데 좀 특이한 데야."
최수현은 팔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도윤이를 데리고 갔다. 개학이 사흘 남아 있었다.
2
약령시 골목은 한약 냄새가 났다.
도윤이가 코를 막았다.
"엄마 냄새 이상해."
"약 냄새야."
"약 먹어야 돼?"
"먹을 수도 있어."
도윤이가 발걸음을 늦췄다. 최수현이 손을 잡아끌었다.
골목 입구에 차가 서 있었다. 짙은 남색이었다. 도윤이가 그 차를 보고 멈췄다.
"엄마 저거 포르쉐야."
"그래?"
"카이엔이야. 저거 비싼 거야."
"너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애들이 다 알아."
도윤이가 그 차를 한참 봤다. 최수현이 다시 손을 끌었다.
계단을 올랐다. 나무 계단이었다. 삐걱 끼익. 도윤이가 계단을 올라가면서 일부러 발을 세게 굴렀다. 소리가 크게 났다.
"도윤아 그러지 마."
"소리 나는데."
"그러니까 그러지 마."
도윤이가 한 번 더 굴렀다. 최수현이 도윤이를 봤다. 도윤이가 멈췄다.
대기실에 젊은 여자가 있었다. 폰을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들어서자 고개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아이 진료요?"
"네."
"들어가시면 돼요."
도윤이가 여자를 봤다. 여자가 도윤이를 봤다. 도윤이가 먼저 눈을 피했다.
3
진찰실 문을 열었다.
한의사가 진찰 의자에 앉아 있었다. 뚱뚱했다. 흰 가운을 입고 있었다.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었다. 콘 아이스크림이었다.
도윤이가 그걸 봤다.
한의사가 도윤이를 봤다.
둘이 잠깐 서로를 봤다.
"어서 오이소."
한의사가 아이스크림을 든 채로 말했다. 최수현이 인사했다. 도윤이는 아이스크림만 봤다.
"이름이 뭡니꺼."
"강도윤이요."
"몇 살입니꺼."
"아홉 살이요."
"아이스크림 먹을랍니꺼."
도윤이가 최수현을 봤다. 최수현이 좀 당황했다.
"저 진료 받으러 온 건데요."
"진료 받으면서 먹으면 됩니더."
한의사가 옆 냉장고를 열었다. 작은 냉장고였다. 안에 아이스크림이 몇 개 있었다. 하나 꺼내서 도윤이한테 줬다.
도윤이가 받았다.
"고맙습니다."
"먹으이소."
도윤이가 포장을 뜯었다. 최수현이 뭐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배가 아프다꼬예."
"네. 한 달 넘었어요."
"언제 아픕니꺼."
최수현이 말하려는데 한의사가 손을 살짝 들었다.
"도윤아. 니가 말해봐라."
도윤이가 아이스크림을 물고 있다가 뺐다.
"아침에요."
"아침 언제."
"밥 먹고요."
"밥 먹으면 아픕니꺼."
"아니요. 밥 먹고 가방 멜 때요."
한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가 아픕니꺼."
도윤이가 배를 짚었다. 배꼽 아래였다.
"여기요."
"어떻게 아픕니꺼. 콕콕 쑤십니꺼 아니면 살살 아픕니꺼."
도윤이가 잠깐 생각했다.
"뭉쳐요."
"뭉친다꼬예."
"네. 딱딱한 거 있는 것 같아요."
한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말에는예."
"안 아파요."
"학교 가는 날만 아프네예."
"네."
최수현이 옆에서 말했다.
"그래서 저도 처음엔 꾀병인가 했는데요."
"꾀병 아입니더."
한의사가 바로 말했다.
"진짜 아픈 겁니더."
도윤이가 한의사를 봤다.
4
"도윤아 여기 누워봐라."
도윤이가 진찰 침대에 누웠다. 최수현이 옆에 섰다. 한의사가 도윤이 배에 손을 올렸다.
도윤이가 몸을 좀 굳혔다.
"주사 놔요?"
"안 놓습니더."
"진짜요?"
"진짜라예. 아홉 살한테는 안 놓습니더."
도윤이가 몸을 좀 풀었다. 최수현이 물었다.
"안 놓으세요? 여기 약침 놓는다고 들었는데요."
"어른한테는 놓습니더. 애들은 안 놓습니더."
"왜요?"
"애들은 몸이 순양(純陽)이라예."
한의사가 배를 눌러가면서 말했다.
"애들은 어른보다 기가 세게 돕니더. 뜨겁고 빠릅니더. 그래서 조금만 건드려도 크게 움직입니더. 어른한테 열을 줘야 되는 걸 애한테는 하나만 줘도 됩니더."
도윤이가 천장을 보면서 들었다.
"대신 애들은 장부가 아직 여립니더. 다 안 자랐거든예. 그래서 세게 하면 안 됩니더."
한의사가 배 아래쪽을 눌렀다.
"여기 아픕니꺼."
"조금요."
"여기는예."
"거긴 안 아파요."
"여기는."
도윤이가 "아" 했다.
"거기 아파요."
한의사가 그 자리에 손을 올려놓고 잠깐 있었다. 누르지 않고 그냥 올려놓았다.
"손이 따뜻해요."
도윤이가 말했다.
"그렇습니꺼."
"네."
한의사가 손을 뗐다.
"도윤아 손 좀 줘봐라."
도윤이가 손을 내밀었다. 한의사가 맥을 짚었다. 어른보다 짧게 짚었다. 그러고는 도윤이 손등을 봤다. 손톱을 봤다. 혀를 내밀어보라고 했다.
"혀 끝이 좀 빨갛네예."
"그게 뭔데요?"
최수현이 물었다.
"속에 열이 좀 있습니더. 근데 배는 차고예."
"위는 뜨겁고 아래는 차요?"
"예. 애들이 걱정이 있으면 그렇게 됩니더."
최수현이 그 말을 들었다.
5
한의사가 도윤이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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