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밀리리터

by김경훈

[근무 기록]


기지 · 제3차 상주조

직무 · 생명유지계통 담당

상주 · 412 sol째

승무원 · 4명

일일 물 처리량 · 약 1150리터

현재 상태 · 정상 운영



보고 · Sol 412


물 수지 정상. 회수율 98.2퍼센트. 사바티에 반응기 정상. 필터 잔여 수명 61퍼센트. 특이사항 없음.



기록하지 않은 것 · Sol 412


잔차가 340밀리리터 나왔다.


수지 계산은 매 sol 한 번 한다. 들어온 물과 나간 물을 다 더하고 빼면 0이 되어야 한다. 여기는 닫힌 계니까 그렇다. 문을 열고 물을 길어 올 데가 없다.


실제로는 0이 안 된다. 늘 몇십 밀리리터씩 어긋난다. 센서 오차와 반올림 때문이다. 그건 정상이다.


오늘은 340이 나왔다.


좀 큰 값이지만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다. 필터를 갈면서 계통에 물이 남았거나 배관 어딘가에 갇혔다가 나온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서는 별생각 없이 넘기는 게 미덕이다. 별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밤에 환기팬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환기팬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그 다음은 정해져 있다.


나는 별생각 없이 넘겼다.


물 담당이라는 건 여기서 제일 지루한 자리다. 지질 담당은 밖에 나가고 의무 담당은 사람을 만난다. 나는 탱크와 필터와 숫자를 본다.


지루한 게 좋은 거다. 물 담당이 바빠지는 상황은 하나뿐인데 그건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보고 · Sol 415


물 수지 정상. 회수율 98.1퍼센트. 특이사항 없음.



기록하지 않은 것 · Sol 415


Sol 412부터 오늘까지 4 sol이다. 4 sol 다 340이다.


정확히 340이다.


이게 문제다. 오차라면 흔들려야 한다. 340이 나왔다가 290이 나왔다가 380이 나왔다가 해야 한다. 오차의 본질이 그거다. 흔들리지 않으면 그건 오차가 아니라 항이다.


계량 단위를 확인했다. 이 계통의 최소 분해능은 10밀리리터다. 그러니까 340은 34칸이다. 33칸도 아니고 35칸도 아니다.


Sol 412 340.

Sol 413 340.

Sol 414 340.

Sol 415 340.


나는 이걸 확인하려고 저녁을 걸렀다. 여기서 저녁을 거른다는 건 진공포장된 닭고기 비슷한 것을 안 먹었다는 뜻이고 그건 사실 손해가 아니다.



보고 · Sol 419


정상.



기록하지 않은 것 · Sol 419


다른 사람들한테 말해봤다.


여기는 4명이다. 선장과 의무 담당과 지질 담당과 나다. 8 sol에 한 번 다 같이 밥을 먹는다. 나머지 날은 각자 시간이 어긋난다.


물 수지에 340이 계속 나온다고 말했다.


지질 담당이 물었다. 340이 많은 거냐.


나는 1150리터 처리량에서 340밀리리터면 적은 거라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그럼 됐네 하고 말았다.


의무 담당이 물었다. 위험한 거냐.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물이 모자란 게 아니라 남는 거니까 위험할 게 없다.


그러니까 그 사람도 그럼 됐네 하고 말았다.


선장은 아무것도 안 물었다. 다 먹고 나서 이렇게만 말했다.


숫자 좋아하는 건 아는데 여기서 그거 오래 잡고 있으면 안 좋아.


그 말이 맞다. 여기 있는 사람은 다 그 말이 맞다는 걸 안다. 오래 잡고 있으면 안 되는 것들이 여기에는 많다.


그래서 나는 그 뒤로 아무한테도 말 안 했다.



보고 · Sol 423


저장 탱크 2기 교차 검증 실시. 센서 교정 완료. 계통 이상 없음.



기록하지 않은 것 · Sol 423


가설을 세우고 하나씩 부쉈다.


가설 1. 탱크 수위 센서 드리프트.


주 탱크 물을 예비 탱크로 전량 이송하고 예비 탱크 센서로 다시 쟀다. 두 센서가 4밀리리터 안에서 일치했다. 340이 아니라 4다. 센서는 정상이다.


가설 2. 사바티에 반응기 과생산.


이건 반박이 아니라 확인이 필요한 항목이었다. 사바티에는 이산화탄소와 수소를 넣어서 메탄과 물을 만든다. 반응식은 정해져 있다. 이산화탄소 1에 수소 4가 들어가서 메탄 1과 물 2가 나온다.


수소 1킬로그램당 물 4.468킬로그램이 나온다. 이건 자연법칙이라 협상 대상이 아니다.


Sol 423 수소 소비량은 2.86킬로그램이었다. 곱하면 12.78킬로그램이다.


실측 생성수는 13.12킬로그램이었다.


차이가 340그램이다. 물 340밀리리터의 질량이 340그램이다.


여기까지는 계산이 맞았다. 그래서 나는 반대로 계산해봤다. 340그램을 더 만들려면 수소가 얼마나 더 필요한가.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김경훈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안내견 탱고의 눈으로 길을 보고, 시각장애인 연구자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1,286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31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504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발신번호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