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림질

by김경훈

[방 기록]


장소 · 모름

갇힌 기간 · 물 14병째

지나온 방 · 3개

도구 · 다리미 1개 다림판 1개 분무기 1개

배급 · 물 1병 빵 1개

현재 상태 · 작업 중



218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안 게 냄새였다.


콘크리트 냄새다. 새로 친 콘크리트는 비린내가 나고 오래된 콘크리트는 마른 흙 냄새가 난다. 여기는 오래된 쪽이다.


바닥에 누워 있었다. 등이 배겼다. 손으로 짚어보니 바닥은 매끈했다. 미장을 잘 쳐놨다.


일어나서 벽을 짚고 한 바퀴 돌았다. 걸음으로 세니까 가로 아홉 세로 일곱이다. 걸음이 대충 70센티미터니까 6미터에 5미터쯤 된다.


문이 두 개다.


하나는 내가 들어온 문이겠지. 손잡이가 없다. 밀어도 당겨도 안 된다. 문틈에 손톱을 넣어봤는데 안 들어간다.


다른 문에는 손잡이가 있다. 안 돌아간다.


천장에 등이 하나 있고 벽 위쪽에 스피커가 있다. 손이 안 닿는다.


바닥에 물병이 하나 놓여 있었다. 500밀리리터짜리다. 라벨이 붙어 있었다.


숫자가 적혀 있었다.


218이다.


내가 여기 온 게 오늘이니까 1이어야 될 거 아이가. 218이 뭐꼬.


그 생각을 하고 나서 좀 앉아 있었다.


어떻게 왔는지 기억을 더듬어봤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가게 문을 닫은 거다. 셔터를 내리고 자물쇠를 채웠다. 그날 손님이 많아서 늦었다. 8시 좀 넘었을 거다.


집까지 걸어서 12분이다. 그 길을 20년 걸었다.


거기까지는 확실하다.


그다음이 없다.


기억이 끊긴 게 아니라 그냥 없다. 술 먹고 필름 끊긴 거하고는 다르다. 그건 나중에 조각이라도 올라오는데 이건 안 올라온다.


머리를 만져봤다. 혹도 없고 상처도 없다.


옷은 그날 입은 그대로다. 가게 앞치마까지 그대로 하고 있더라. 앞치마 주머니에 실밥이 들어 있었다. 내가 그날 뜯은 실밥이다.


주머니를 다 뒤졌다. 실밥하고 초크 조각하고 시침핀 두 개가 나왔다.


시침핀은 챙겨뒀다.


핀 두 개로 뭘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없는 것보다는 낫다.



219


빵이 하나 나왔다.


바닥에 문이 하나 더 있다. 손바닥만 한 쪽문이다. 그리로 나온다. 열리는 소리가 딸깍 하고 짧게 난다. 그 소리가 나면 나오는 거다.


물병에 219가 적혀 있었다.


스피커가 켜졌다.


켜질 때 치직 하고 한 번 난다. 그러고 목소리가 나온다.


목소리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겠다. 억양이 없다. 지하철 안내방송 비슷한데 그것보다 더 밋밋하다. 말이 짧다.


숨을 안 쉰다.


사람이 말을 하면 문장 사이에 숨이 들어간다. 안내방송도 녹음한 사람 숨이 남아 있다. 나는 라디오를 20년 틀어놓고 일했다. 그 정도는 안다.


이건 숨이 없다.


작업을 시작하십시오.


그러고 끊겼다.


그때 다림판이 있는 걸 알았다. 벽에 접어서 세워놨더라. 처음엔 못 봤다. 펴니까 다리 두 개가 착 걸린다. 좋은 물건이다. 우리 가게 것보다 좋다.


다리미가 놓여 있었다. 콘센트가 벽에 하나 있다. 꽂으니까 불이 들어왔다.


분무기도 있었다. 물이 반쯤 들어 있었다.


그리고 셔츠가 한 장 있었다.


흰 면 셔츠다. 만져보니 면 100이다. 손끝으로 짜임을 훑으면 안다. 혼방은 미끄럽고 면은 걸린다.


구겨져 있었다.


나는 20년 세탁소를 했다.


다림질하라는 소리구나 싶었다.



220


다렸다.


면은 스팀을 많이 먹인다. 분무기로 뿌리고 눌러야 주름이 죽는다. 순서가 있다. 깃부터 한다. 그다음 커프스. 그다음 소매. 그다음 요크. 그다음 앞판 뒤판.


깃을 먼저 하는 이유는 깃이 제일 잘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목부터 본다.


여기서 누가 볼 건지는 모르겠지만 순서는 순서다.


40분쯤 걸렸다.


다 하고 옷걸이에 걸었다. 옷걸이도 벽에 걸려 있더라.


문 손잡이를 돌렸다.


안 돌아갔다.


스피커가 켜졌다.


주름이 하나 남았습니다.


그러고 끊겼다.


나는 그 셔츠를 다시 봤다.


봤다는 게 눈으로 봤다는 소리는 아니다. 나는 손으로 본다. 다림질이 잘됐는지는 손등을 대보면 안다. 잘 눌린 면은 매끄럽고 서늘하다. 덜 눌린 데는 손등에 살짝 걸린다.


셔츠 전체를 손등으로 훑었다.



221


찾았다.


왼쪽 소매 안쪽 겨드랑이 밑에 3센티미터쯤 되는 주름이 있었다.


거기는 원래 안 다린다. 접히는 자리고 입으면 안 보인다. 20년 동안 나도 안 다렸고 우리 가게 손님 누구도 뭐라 한 적이 없다.


다렸다.


문 손잡이를 돌렸다.


돌아갔다.


문을 여니까 다음 방이 있었다.


들어가니까 뒤에서 문이 닫혔다. 다시 열어봤는데 안 열렸다.


이 방은 아까 방보다 조금 크다. 걸음으로 열둘에 아홉이다.


다림판이 있고 다리미가 있고 분무기가 있다.


셔츠가 세 장 있었다.



222


두 번째 방에서 한 번 안 했다.


세 장을 다 다려놓고 문을 안 열었다는 소리가 아니라 아예 손을 안 댔다는 소리다.


앉아서 스피커를 봤다.


내가 왜 이걸 해야 되는데.


소리 내서 말했다. 대답이 없었다.


누고. 누가 시키는 건데.


없었다.


우리 아저씨 알면 난리 난다. 가게 문 닫아놨을 거 아이가.


혼자 그런 말을 한참 했다. 스피커는 안 켜졌다.


그러고 앉아 있었다.


바닥 쪽문이 안 열렸다.


빵이 안 나왔다. 물도 안 나왔다.


내가 세기로는 하루 반쯤 그러고 있었다. 여기는 등이 안 꺼지니까 밤낮이 없다. 배고픈 걸로 센다.


일어나서 다렸다.


세 장을 다 다리고 문이 열리니까 쪽문이 딸깍 하고 열렸다. 물병이 나왔다.


222였다.


220하고 221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내가 안 하는 동안에도 번호는 갔다.


그러니까 이건 내 시간을 세는 게 아니다.



223


셔츠 세 장을 다리는 데 두 시간 좀 넘게 걸린다.


안 하고 버틴 시간까지 치면 사흘이 갔다.


그 사흘 동안 배운 게 있다.


여기서는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벌을 주는 게 아니다. 그냥 아무것도 안 준다.


벌을 주면 화라도 낼 텐데 그것도 안 한다.


문이 열렸다.


세 번째 방은 더 컸다. 열여섯에 열둘쯤 된다.


셔츠가 아홉 장이었다.


하나 셋 아홉이다.


그다음은 스물일곱이겠지.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손을 봤다. 오른손 검지 옆쪽에 물집이 하나 잡혔다. 다리미 옆면에 스친 자리다. 20년 하면 손등에 흉터가 몇 개는 있는데 새로 잡히는 건 오랜만이다.


물집은 터뜨리면 안 된다. 그냥 두면 며칠 뒤에 저절로 마른다.


여기서 며칠 뒤가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225


벽을 만져봤다.


세 번째 방 아래쪽 벽에 자국이 있었다.


손끝에 걸린다. 세로로 그은 자국이다. 깊지 않다. 손톱으로 긁으면 이 정도 나온다.


세어봤다.


네 개씩 긋고 다섯 번째를 가로로 그어놨더라. 우리 어릴 때 하던 그거다.


한 묶음이 다섯이다.


묶음을 셌다.


마흔한 묶음이었다. 그리고 낱개로 세 개가 더 있었다.


208이다.


내 물병이 218부터 시작했다.


208하고 218 사이가 10이다.


10이 뭔지는 모르겠다. 자기가 못 그은 날이 열흘일 수도 있고 다른 뜻일 수도 있다.


나는 그 자국을 한참 만졌다.


이 사람은 여기서 208을 셌다. 그러고 어디로 갔을까 싶었다.


문은 두 개뿐이다. 앞으로 가거나 뒤로 가거나다.


뒤로 가는 문은 안 열린다.


내 자국도 그었다.


시침핀 끝으로 그었다. 208개 옆에 조금 떨어뜨려서 그었다. 지금까지 센 물병 수만큼 그었다.


여덟 개다. 218부터 225까지다.


긋고 나서 두 자국을 손끝으로 번갈아 만졌다.


앞사람 자국이 훨씬 깊다.


손톱으로는 이렇게 깊이 안 파진다. 뭔가 딱딱한 걸로 그었다는 소리다.


이 방에 딱딱한 게 뭐가 있노 싶어서 찾아봤다.


다리미 뒷부분 모서리가 딱딱하다. 그걸로 그으면 이 정도 나온다.


그 사람도 다림질을 했다는 뜻이다.



226


방 안 물건들을 다시 만져봤다.


첫 번째 방 다림판 커버는 새것이었다. 손으로 만지면 면이 빳빳하고 솜이 두툼했다.


두 번째 방 것은 조금 눌려 있었다. 가운데가 얇아져 있더라. 사람이 힘주는 자리가 그렇게 된다.


세 번째 방 것은 헤졌다.


가운데가 다 눌려서 판이 손에 만져진다. 모서리 쪽 천이 터져 있다. 이 정도 되려면 몇 년은 써야 된다.


다리미도 만져봤다.


첫 번째 다리미는 밑판이 매끈했다. 세 번째 다리미는 밑판에 눌어붙은 자국이 여러 개 있었다. 손톱으로 긁으면 걸린다. 다림질하다가 옷을 태우면 그 자국이 남는다.


앞으로 갈수록 물건이 낡았다.


보통은 반대 아이가.


들어온 데가 제일 낡고 안쪽이 새것이어야 말이 되는데 여기는 거꾸로다.


그 말은 안쪽 방을 사람들이 더 오래 썼다는 소리다.


나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저 안에서 오래 있었다는 소리다.


앞으로 갈수록 나가는 게 아니라는 소리다.



227


아홉 장을 다리면서 알았다.


이 셔츠들이 다 다르다.


크기가 다르고 짜임이 다르다. 어떤 건 새것 냄새가 나고 어떤 건 사람 냄새가 밴 것이 있다. 겨드랑이 쪽에 땀이 마른 자국이 있는 것도 있다.


세탁은 다 되어 있다. 냄새는 남았다. 냄새는 세탁으로 다 안 빠진다.


여덟 번째 셔츠를 다리다가 목깃 안쪽에 뭔가 걸렸다.


손톱만 한 헝겊이다. 목깃 안쪽 시접에 실로 꿰매 붙여놨다.


번호표다.


세탁소에서 옷 받으면 번호표를 붙인다. 요즘은 스티커나 태그를 쓰는데 나는 옛날 방식으로 한다. 흰 광목을 잘라서 번호를 쓰고 시접에 세 땀으로 꿰맨다. 세 땀이면 안 떨어지고 실 뽑을 때 옷도 안 상한다.


그게 우리 가게 방식이다. 이 동네에서 그렇게 하는 데는 우리밖에 없다.


내 바느질은 내가 안다.


시접 끝에서 3밀리미터 들어와서 첫 땀을 뜬다. 그러고 5밀리미터 간격으로 두 땀 더 뜬다. 매듭은 안쪽으로 넣는다.


손끝으로 만졌다.


3밀리미터. 5밀리미터. 5밀리미터. 매듭 안쪽.


내 거다.



228


잠은 잔다.


안 잘 수가 없다. 하루 넘게 버텨봤는데 손이 떨려서 다리미를 못 잡겠더라. 다리미 떨어뜨리면 큰일 난다. 발등에 떨어지면 뼈까지 간다.


바닥에 누워서 잔다.


깨면 항상 물병이 하나 늘어 있다.


내가 자는 동안에도 쪽문이 열린다. 그 소리에 안 깬다는 게 좀 이상한데 안 깨진다.


한 가지 해봤다.


물병을 다 안 마시고 반쯤 남겨서 다림판 다리 옆에 세워뒀다. 자고 일어나서 확인했다.


그대로 있었다.


내가 놔둔 자리 그대로다. 반쯤 남은 것도 그대로다.


그러니까 내가 자는 동안에 누가 들어와서 뭘 만지지는 않는다.


물병만 들어온다.


손 얘기를 좀 해야겠다.


물집이 세 개로 늘었다. 오른손 검지 옆에 하나 엄지 안쪽에 하나 손목 안쪽에 하나다. 손목 것은 다리미 옆면에 데였다.


터진 건 없다.


우리 가게 20년 하면서 데인 자리는 다 왼손이었다. 오른손으로 다리미를 잡고 왼손으로 천을 당기니까 왼손이 다친다.


여기서는 오른손이 데인다.


왜 그런지 생각해봤는데 답이 나온다.


여기 다림판이 우리 가게 것보다 낮다. 그래서 팔 각도가 다르다.


낮은 다림판은 오래 쓰면 허리가 나간다. 처음 놓을 때 자기 키에 맞춰서 높이를 잡아야 되는데 여기 다림판은 높이 조절이 안 된다.


이 높이는 나보다 작은 사람한테 맞는 높이다.



229


아홉 장을 다 뒤졌다.


아홉 장 다 번호표가 있었다. 아홉 장 다 내 바느질이었다.


번호를 읽었다.


광목에 유성펜으로 쓴 거라 만져서는 안 읽힌다. 등불 아래로 가져가서 봤다.


4128.

4129.

4130.

4131.

4132.

4133.

4134.

4135.

4136.


우리 가게 접수 번호는 장부에 순서대로 적는다. 1번부터 시작해서 계속 올라간다. 20년 동안 안 끊고 이어서 썼다.


내가 여기 오기 전날 마지막으로 적은 번호가 4127이었다.


그건 확실하다. 그날 저녁에 장부를 덮으면서 봤다.


4128번부터는 아직 안 받은 옷이다.


그러니까 이 옷들은 내가 받은 적이 없다.


받은 적 없는 옷에 내 바느질이 붙어 있다.


한 가지 더 있다.


번호표 광목은 내가 한 뼘씩 잘라서 쟁여둔다. 가위로 자르니까 끝이 반듯하다. 대충 자르면 올이 풀린다.


아홉 장 다 끝이 반듯했다.


그리고 광목이 좀 누랬다.


광목은 오래 두면 누래진다. 우리 가게 쟁여둔 것도 아래쪽 것은 누렇다. 위에 것부터 쓰니까 아래 것이 오래 남는다.


이 광목은 아래쪽 것이다.


나는 아직 아래쪽까지 안 썼다.



230


두 번째 방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거기 셔츠 세 장 목깃도 봤어야 했다. 첫 방 한 장도 봤어야 했다.


뒤로 가는 문은 안 열린다. 세 번 확인했다.


앞으로 가는 문 손잡이를 돌려봤다. 아직 안 돌아간다. 아홉 장 중에 하나가 덜 됐다는 뜻이다.


다시 손등으로 훑었다.


여섯 번째 셔츠 뒤판 아래쪽에 손등이 걸렸다. 밑단 접힌 자리다. 셔츠 밑단은 안으로 접어서 박음질하는데 그 접힌 부분이 두꺼워서 잘 안 눌린다.


거기도 원래 안 다린다. 바지 속에 넣으면 안 보인다.


다렸다.


문이 열렸다.



231


네 번째 방이다.


걸음으로 스물에 열여섯쯤 된다. 소리를 들어보면 안다. 발을 굴렀더니 앞의 방들보다 반향이 길다.


다림판이 있다. 다리미가 있다. 분무기가 있다. 콘센트가 있다.


셔츠를 찾았다.


바닥을 다 기어서 훑었다. 벽도 다 만졌다. 구석까지 갔다.


없다.


한 장도 없다.


스물일곱 장이 있어야 되는데 없다.


나는 다림판 옆에 앉아서 물병을 봤다. 231이다.


바닥 쪽문이 딸깍 하고 열렸다. 빵이 나왔다.


빵을 먹었다.


스피커가 치직 하고 켜졌다.


작업을 시작하십시오.


그러고 끊겼다.


나는 스피커를 보고 물었다.


뭘 다리라꼬.


대답이 없었다.


방을 다시 한 바퀴 돌았다. 벽을 아래쪽부터 위쪽까지 다 만졌다. 자국이 없다. 이 방은 아무도 안 세었다.


다림판 커버를 만졌다.


새것이었다.


빳빳하고 솜이 두툼했다. 첫 번째 방 것하고 똑같았다.


다리미 밑판도 만졌다. 매끈했다. 눌어붙은 자국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이 방은 아무도 안 썼다.


세 번째 방까지는 사람들이 오래 있었고 네 번째 방은 아무도 안 왔다.


내가 처음이다.


앞치마 주머니에서 시침핀을 꺼내서 손에 쥐었다.


그러고 다리미 코드를 콘센트에 꽂았다.


불이 들어왔다.


다리미가 달아오르는 데 4분 걸린다. 이건 20년 하면 몸으로 안다. 손등을 가까이 대보면 3분쯤부터 열이 올라온다. 4분이면 면을 다릴 수 있다.


셔츠는 없다.


4분을 기다렸다.


지금 손등에 열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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