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衛氣)

14부

by김경훈

위기는 낮에 양(陽)을 돌고 밤에 음(陰)으로 들어간다. 음으로 들지 못하면 잠들지 못한다. — 《황제내경》 영추편



1


서다현은 자기가 왜 여기 왔는지 몰랐다.


정확히는 알았다. 세 달째 잠을 못 자서 왔다. 그런데 왜 하필 한의원인지는 몰랐다. 서다현은 간호사였다. 대구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육 년 일했다. 병원 안에 있는 사람이 병원 밖으로 나와서 한약을 먹겠다고 앉아 있는 게 좀 우스웠다.


수면제는 이미 먹고 있었다. 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받았다. 졸피뎀이었다. 처음엔 반 알로 잤다. 두 달쯤 지나니 한 알을 먹어야 했다. 지난주부터는 한 알을 먹어도 새벽 세 시에 깼다. 그다음이 뭔지 서다현은 알았다. 간호사니까 알았다. 용량을 올리는 거였다. 올리면 그다음도 있었다.


그 그다음이 무서워서 여기 왔다.


동기가 알려준 데였다. 같은 응급실 간호사인데 편두통으로 다녔다고 했다. 서다현은 야 우리가 무슨 한의원이냐고 했다. 동기가 그럼 계속 졸피뎀 올릴 거냐고 했다. 서다현은 대답을 못 했다.


칠월이었다. 더웠다.


약령시 골목은 한약 냄새가 났다. 서다현은 그 냄새를 맡으면서 걸었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바로 온 참이었다. 아침 여덟 시에 퇴근해서 집에 갔다가 못 자고 나왔다. 지금 오후 두 시였다. 서른 시간쯤 안 잤다.


머리가 멍했다. 눈이 뻑뻑했다. 손끝이 좀 저렸다.


골목 입구에 차가 서 있었다. 짙은 남색이었다. 서다현은 그 차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포르쉐였다.


서다현은 차를 알았다. 아버지가 정비소를 했다. 어릴 때부터 차 옆에서 컸다. 저 차가 얼마쯤 하는지 대충 알았다.


이 골목에 저 차가 있었다.


서다현은 그 순간 좀 기분이 나빠졌다. 왜 기분이 나쁜지는 알았다. 한의원 원장이 저 차를 몬다면 그건 여기가 비싼 데라는 뜻이었다. 아니면 사람을 많이 벗겨먹는 데라는 뜻이었다. 서다현은 응급실에서 그런 걸 많이 봤다. 검사 안 해도 되는 걸 하게 만드는 사람들. 안 와도 되는데 오라고 하는 사람들.


돌아갈까 하다가 그냥 올라갔다.


이왕 왔으니까.



2


계단이 삐걱거렸다.


대기실에 젊은 여자가 있었다. 폰을 보고 있었다. 서다현이 들어서도 고개를 안 들었다.


"진료 받으러 왔는데요."


"들어가시면 돼요."


서다현이 잠깐 서 있었다.


"접수 안 해요?"


"거기 앉으시면 제가 해요."


"저 진료비 얼마예요?"


여자가 폰에서 눈을 뗐다.


"첫 진료는 검사 포함해서 나와요. 탕약은 따로고요."


"얼만데요."


여자가 금액을 말했다.


서다현이 그 금액을 들었다. 생각보다 쌌다. 서다현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쌌다.


"그게 다예요?"


"네."


"밖에 포르쉐 있던데요."


여자가 서다현을 봤다.


"네."


"그거 원장님 차 아니에요?"


"맞아요."


"근데 진료비가 이거예요?"


"네."


여자가 다시 폰을 봤다. 서다현이 잠깐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뭔가 더 물어보려다가 물어볼 게 없었다.


진찰실 문을 열었다.


한의사가 진찰 의자에 앉아 있었다. 뚱뚱했다. 흰 가운 아래로 청바지가 보였다. 손에 냉면 그릇을 들고 있었다. 그릇째 들고 국물을 마시고 있었다.


서다현이 그 광경을 봤다.


한의사가 그릇을 내려놓았다.


"어서 오이소. 앉으이소."


"식사 중이시면 나갔다 올까요."


"다 먹었습니더."


한의사가 그릇을 옆으로 밀었다.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진료카드를 봤다.


"서다현 씨. 불면이고. 세 달 됐고."


"네."


"직업이."


"간호사요. 응급실이요."


한의사가 고개를 들었다.


"야간 하십니꺼."


"3교대예요. 데이 이브닝 나이트 돌아가요."


"오늘은예."


"어젯밤에 나이트 하고 아침에 퇴근했어요."


"그럼 지금 서른 시간쯤 안 주무신 겁니꺼."


서다현이 잠깐 멈췄다.


"어떻게 알았어요?"


"보면 압니더."


한의사가 진료카드를 내려놓았다.


"수면제 드시지예."


"네."


"뭐 드십니꺼."


"졸피뎀이요. 처음엔 반 알이었는데 지금 한 알이에요."


"효과는예."


"지난주부터 한 알 먹어도 새벽에 깨요."


한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다현이 먼저 말했다.


"저 한약으로 잠 온다는 말 믿는 사람 아니에요."


한의사가 서다현을 봤다.


"그러시겠지예."


"솔직히 말씀드리면요. 저 여기 왜 왔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졸피뎀 용량 올리기 전에 뭐라도 해보려고 온 거예요."


"잘 오셨습니더."


서다현이 그 대답에 좀 당황했다. 반박할 줄 알았는데 안 했다.



3


"일단 약침 한 방 맞아보이소."


"약침이 뭔데요."


"한약 성분을 경혈에 주사하는 겁니더."


"성분이 뭔데요."


한의사가 잠깐 서다현을 봤다.


"오늘 쓸 거는 산조인(酸棗仁) 계열입니더. 대추씨 종류인데 잠에 씁니더."


"임상 근거 있어요?"


"있습니더."


"어디에요?"


"국내 연구도 있고 중국 쪽 논문도 있습니더. 근데 규모가 크지는 않습니더."


서다현이 그 대답을 들었다.


"솔직하시네요."


"거짓말하면 나중에 더 곤란하거든예."


서다현이 소매를 걷었다.


"어디에 놓는데요."


"손목 안쪽이랑 머리 위쪽이라예."


"머리요?"


"백회혈(百會穴)이라꼬 정수리 쪽입니더."


젊은 여자가 약침 트레이를 들고 들어왔다. 서다현은 그 트레이를 봤다. 직업병이었다. 소독 상태를 봤다. 일회용 주사기였다. 포장이 안 뜯겨 있었다. 트레이도 깨끗했다.


서다현이 그걸 확인하고 나서 조금 마음이 놓였다.


"긴장 푸이소."


"안 긴장했어요."


"어깨가 올라가 있는데예."


서다현이 어깨를 내렸다. 올라가 있었다.


바늘이 들어왔다.


"윽."


"참을 만하지예."


"네."


한의사가 맥을 짚었다. 오래 짚었다. 혀를 보라고 했다. 서다현이 혀를 내밀었다.


"혀에 이빨 자국 있지예."


"네. 언제부턴가 있어요."


"기가 약해지면 그렇습니더. 혀가 붓거든예."


한의사가 배를 눌렀다. 서다현이 "아" 했다.


"여기 뭉쳐 있네예."


"그거 원래 그래요."


"원래 그런 게 어디 있습니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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