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 몫

by김경훈

[김장 수첩]


김장 · 12년째 주관

절임배추 · 해마다 다름

계량 · 주방 저울과 체중계

수첩 · 12권

1사람분 · 22.0킬로그램

현재 상태 · 올해 김장 완료



수첩


시어머니한테 김장을 넘겨받은 게 2014년이다.


그해 가을에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들어가셨다. 그 전까지는 어머니 집에서 다 같이 담갔다. 나는 배추 나르고 무 썰고 하는 일만 했다. 양념은 손도 못 댔다.


넘겨주시면서 수첩을 하나 주셨다.


낡은 수첩이었다. 앞에서 뒤까지 연도랑 숫자만 적혀 있었다. 1976년부터 있었다. 38년치다.


한 줄이 이렇게 되어 있었다.


1976 다섯 사람분.

1977 다섯 사람분.

1978 여섯 사람분.


그게 다였다. 배추 몇 포기 고춧가루 몇 근 이런 건 하나도 없었다. 사람 수만 있었다.


내가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어머니가 그러셨다.


담가보면 알아.


그래서 나도 수첩을 샀다. 12년 동안 12권을 썼다. 한 해에 한 권씩 쓴다. 앞쪽에는 재료랑 무게를 다 적고 맨 뒷장에 사람 수를 적는다.


김장은 손이 기억하는 일이다.


절임배추가 들어오면 먼저 상태를 본다. 줄기를 잡고 반으로 접어본다. 뚝 부러지면 덜 절여진 거다. 부드럽게 휘면서 접히면 됐다. 부러질 때 소리가 나고 휠 때는 소리가 없다.


무는 채칼로 썬다. 채칼 소리는 사각사각하고 규칙적이다. 무가 물이 많으면 소리가 젖어 있다. 바람 든 무는 소리가 가볍다. 그건 넣으면 안 된다.


양념은 냄새로 맞춘다. 고춧가루를 먼저 풀고 새우젓과 멸치액젓을 넣는다. 젓갈 냄새가 고춧가루 냄새 위로 올라오면 많이 넣은 거다. 그 아래로 가라앉으면 맞다. 마늘과 생강은 나중에 넣는다. 생강은 조금만 지나쳐도 혀 안쪽이 알싸해진다.


버무릴 때는 고무장갑 안에서 손가락 사이로 양념이 밀린다. 배추 잎 사이사이에 손가락을 넣어서 펴 발라야 한다. 겉만 바르면 안쪽이 하얗게 남는다.


통에 담을 때는 눌러 담는다. 주먹으로 누르면 공기가 빠지면서 뿌득 소리가 난다. 그 소리가 안 나면 덜 눌린 거다.


이건 다 손으로 하는 일이다. 12년 하면 몸이 안다.


내가 저울을 쓰는 건 다른 이유다.



2014년


첫해에는 어머니가 하시던 대로 했다.


절임배추 60킬로그램을 주문했다. 20킬로그램짜리 3박스다. 무 8개. 쪽파 2단. 갓 1단. 고춧가루 4킬로그램. 새우젓 1.5킬로그램. 멸치액젓 1.5킬로그램. 마늘 1.5킬로그램. 생강 200그램. 찹쌀풀.


다 적어놨으니까 이건 정확하다.


담고 나서 통에 담았다. 20리터짜리 4개하고 10리터짜리 2개를 준비해놨었다.


다 담고 나니까 20리터 통 4개가 찼고 10리터 통 2개는 안 썼다.


남편이 왜 그렇게 재느냐고 했다. 나는 통이 모자랄까 봐 그런다고 했다. 그때는 그게 진짜 이유였다.


체중계로 쟀다. 내가 통을 들고 올라가서 재고 내 몸무게를 빼는 식으로 했다. 통 하나씩 다 쟀다.


합이 88.0킬로그램이었다.


우리 집은 그때 네 식구였다. 나하고 남편하고 아들하고 딸.


88 나누기 4는 22다.


수첩 맨 뒷장에 적었다.


2014 네 사람분.


어머니가 왜 사람 수만 적어놓으셨는지 그때는 몰랐다.


첫해라서 겁이 났던 게 기억난다. 어머니 김치 맛이 안 나면 어쩌나 싶었다. 남편이 30년 먹은 맛이니까 바로 알아볼 거였다.


담그고 나서 사흘째에 남편이 먹어보고 아무 말도 안 했다. 아무 말도 안 하면 맛있다는 뜻이다. 맛없으면 뭐라도 한마디 한다.


그때는 그게 제일 큰 일이었다.



2015년과 2016년


2015년도 똑같이 했다. 88.0킬로그램이 나왔다.


네 사람분.


2016년 3월에 아들이 입대했다.


그해 11월에 김장을 했다. 재료는 똑같이 샀다. 60킬로그램. 습관이라서 그냥 그렇게 시켰다.


다 담고 재니까 66.0킬로그램이었다.


세 사람분이다.


나는 그때 아무 생각도 안 했다. 아들이 없으니까 덜 나왔나 보다 했다. 사실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재료를 똑같이 넣었으면 결과물도 똑같이 나와야 한다. 아들이 군대에 있는 거랑 김치 무게랑 무슨 상관인가.


그런데 그해에는 그런 생각을 안 했다.


남은 재료가 있었느냐고 물으면 없었다. 배추도 다 썼고 양념도 다 썼다. 통을 닦고 나서 부엌에 아무것도 안 남았다.


66.0이었다.


소수점 아래가 0이었다는 것도 그때는 안 이상했다.


그해 겨울에 아들이 첫 휴가를 나왔다. 김치찌개를 끓여줬더니 두 그릇을 먹었다.


김치는 3월에 다 떨어졌다. 예년보다 두 달 빨랐다.


세 사람분이었으니까 그게 맞다.



2017년


세 사람분.


66.0킬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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