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개시 점검]
산장 · 해발 2634미터
관리 · 8년째
여름 시즌 · 6월 중순부터 9월 말까지
겨울 · 무인
겨울방 · 18인
점검일 · 5월 29일
현재 · 시즌 개시 준비
자물쇠
우리 산장은 겨울에 잠그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본관은 잠근다. 주방과 식당과 위층 침상은 다 잠근다. 그리고 뒤쪽 겨울방 하나만 열어둔다.
이건 규칙이다. 이 나라 산장은 대부분 그렇게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산에서 날씨가 무너지면 사람은 문이 있는 곳으로 온다. 그때 문이 잠겨 있으면 사람이 죽는다. 그래서 열어둔다.
겨울방에는 매트리스 18개가 있다. 담요가 쌓여 있고 장작 난로가 하나 있고 장작이 쌓여 있다. 냄비와 버너가 있다. 비상식량이 있다.
그리고 요금함이 있다. 벽에 붙어 있는 나무 상자다. 1박에 30프랑을 넣게 되어 있다. 아무도 안 보고 있다. 넣고 안 넣고는 각자가 정한다.
마지막으로 방명록이 있다.
탁자 위에 사슬로 묶여 있다. 볼펜이 같이 묶여 있다.
이름과 날짜와 출발지와 목적지와 인원을 적는다. 이건 형식이지만 실제 목적이 있다. 사고가 나면 이 바카라이 마지막 기록이 된다. 구조대가 제일 먼저 보는 게 방명록이다.
그래서 겨울에 여기 다녀간 사람은 대부분 적는다.
나는 8년째 이 산장을 맡고 있다.
여름에는 여기 산다. 6월 중순에 헬기를 타고 올라와서 9월 말에 걸어 내려간다. 그동안 하루도 안 내려간다. 손님 밥을 하고 물을 관리하고 예약을 받고 사고가 나면 무전을 친다.
겨울에는 안 올라온다. 그게 원칙이다.
산장 관리인이 하는 일은 여름을 지키는 것이다. 겨울은 지킬 수 없다. 3000미터 근처에서 혼자 겨울을 나는 건 관리가 아니라 다른 무엇이 된다.
그래서 나는 이 산장의 8개월을 모른다.
8년째 모른다.
눈
5월 29일에 올라왔다.
시즌 개시 점검이다. 6월 중순에 손님을 받으려면 3주 전에 한 번 올라와서 상태를 봐야 한다.
올라오는 데 4시간 반 걸렸다. 아래쪽은 이미 녹았고 2200미터부터 눈이 남아 있다.
산장 앞에 눈이 무릎까지 쌓여 있었다.
겨울방 문 앞 눈을 보면 마지막 방문 시기를 대충 안다. 사람이 드나들면 눈이 다져진다. 다져진 눈은 그 위에 새 눈이 와도 아래층이 단단하게 남는다. 밟으면 소리가 다르다. 푹 들어가면 손 안 탄 눈이고 두 번째 층에서 걸리면 다져진 층이다.
문 앞은 푹 들어갔다.
한참 아무도 안 왔다는 뜻이다.
삽으로 파고 문을 열었다. 겨울방 삽은 안쪽에 둔다. 밖에 두면 눈에 묻혀서 못 찾는다.
문을 여니까 안쪽 공기가 밀려 나왔다.
8개월 닫혀 있던 방 냄새다. 나무와 재와 담요 냄새가 섞여 있다. 곰팡이는 없다. 여기는 너무 건조하고 너무 추워서 곰팡이가 안 산다.
안이 밖보다 따뜻했다. 그건 당연하다. 벽이 있으니까 그렇다.
온도계를 봤다. 겨울방 벽에 걸어놨다. 최고 최저를 기록하는 것이다.
최저가 영하 19도였다. 최고가 영상 14도였다.
영상 14도가 나오려면 난로를 세게 때야 한다. 정상이다.
재
난로를 먼저 본다.
재받이를 빼서 재를 확인한다. 재가 얼마나 쌓였는지 보면 얼마나 땠는지 대충 안다. 이건 장작 무게로 확인하는 게 더 정확해서 참고만 한다.
재는 손으로 만져봐야 안다. 곱게 부서지면 다 탄 것이고 덩어리가 남아 있으면 덜 탄 것이다. 젖은 장작을 때면 덩어리가 남는다.
올해 재는 고왔다.
재받이를 비우고 연통을 두드렸다. 통통 소리가 나면 비어 있고 툭 소리가 나면 그을음이 쌓인 것이다. 위쪽에서 툭 소리가 났다. 솔로 긁었다.
난로 문 손잡이를 만졌다. 반들반들했다.
이 손잡이는 여름에는 안 쓴다. 여름에는 겨울방을 안 쓰니까 난로도 안 땐다. 겨울에만 만져진다.
8년 동안 이 손잡이가 반들반들해지는 걸 봤다. 사람 손이 닿으면 쇠가 그렇게 된다.
장작
장작은 무게로 관리한다.
9월 말에 시즌을 닫으면서 겨울방에 장작을 채운다. 작년에는 1200킬로그램을 넣었다. 헬기로 올려서 쌓아놓는다.
봄에 올라와서 남은 걸 잰다. 저울은 산장에 있다. 자루에 담아서 잰다. 시간은 걸리지만 정확하다.
올해 남은 게 792킬로그램이었다.
소모량이 408킬로그램이다.
8년 하면 경험치가 생긴다. 겨울방에 한 사람이 하룻밤 자면 장작을 대략 12킬로그램 쓴다. 이건 내가 만든 숫자가 아니라 8년치 기록에서 나온 평균이다. 사람이 많으면 1인당 소모가 조금 줄고 혼자면 조금 는다. 그래도 12 언저리다.
408 나누기 12는 34다.
34명이 자고 갔다는 뜻이다.
요금함
요금함을 열었다.
열쇠는 나만 갖고 있다. 8개월 만에 연다.
지폐와 동전이 섞여 있다. 세는 데 20분쯤 걸린다. 탁자에 놓고 종류별로 나눠서 센다.
1020프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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