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by김경훈

[소임 기록]


소임 · 종두

행자 · 2년째

새벽 예불 · 3시

타종 · 새벽 28추 저녁 33추

범종 · 1954년 주조

현재 상태 · 소임 유지



종두


종을 치는 소임을 종두라고 한다.


절에 온 지 넉 달 만에 받았다. 원래는 3년 있어야 준다고 했는데 앞의 행자가 나갔다. 그래서 순서가 당겨졌다.


받을 때 노스님이 두 가지만 말씀하셨다.


늦지 마라.

세지 마라.


늦지 말라는 건 알겠는데 세지 말라는 건 무슨 말인지 몰랐다. 28번을 쳐야 하는데 안 세면 어떻게 아나 싶었다.


여쭤보지는 않았다. 여기서는 두 번 묻는 게 예의가 아니다.


우리 절은 산에 있다. 큰 절은 아니다. 대중이 열두 분이고 행자가 나 하나다.


새벽 예불은 3시에 시작한다. 나는 2시 20분에 일어난다.


내가 여기 온 이유는 적지 않겠다. 그건 이 이야기와 상관이 없다. 다만 스물세 살에 왔고 지금도 스물세 살이다.


여기서는 하루가 소리로 나뉜다.


2시 20분에 목탁 소리로 깨고 3시에 종을 치고 6시에 조공 목탁이 울린다. 11시 30분에 오공이고 5시 30분에 약석이다. 저녁 6시에 다시 종을 친다.


시계를 안 봐도 하루가 굴러간다. 그게 여기 사는 방식이다.


그래서 소리가 하나 더 나면 안다.



첫 번째


종은 밀어서 친다.


당목이 천장에 밧줄 두 가닥으로 매달려 있다. 통나무를 다듬은 것이고 앞쪽 끝이 고래 모양이다. 나무라도 무겁다. 어른 한 사람 몫은 된다.


이걸 그네처럼 밀었다가 놓는다. 팔로 미는 게 아니라 허리로 민다. 팔로만 밀면 열 번째쯤에 어깨가 죽는다.


미는 힘보다 놓는 순간이 중요하다. 당목이 뒤로 갔다가 앞으로 돌아올 때 그 흐름에 맞춰서 손을 뗀다. 어긋나면 소리가 갈라진다. 갈라진 소리는 종 앞에 서 있는 사람만 안다. 대웅전까지는 안 간다.


그래도 나는 안다.


첫 번째 타는 제일 어렵다. 종이 아직 차가워서 그렇다는 사람도 있고 내가 아직 안 풀려서 그렇다는 사람도 있다. 나는 둘 다라고 생각한다.


종 아래 바닥은 우묵하게 파여 있다. 명동이라고 한다. 소리가 그 구덩이에서 한 번 더 돌아 나온다. 지옥에 있는 중생한테까지 소리를 보내려고 그렇게 판다고 들었다.


그래서 종 앞에 서 있으면 소리가 귀로만 오는 게 아니다. 발바닥으로도 온다. 아래에서 올라온다.


겨울에는 그게 더 세다.


땅이 얼면 소리가 더 잘 올라온다. 언 땅은 소리를 안 먹고 되돌려 보낸다. 1월에는 종을 치면 무릎까지 온다.



세 번째


여음이 있다.


종을 한 번 치면 소리가 바로 끝나지 않는다. 길게 남는다. 우리 종은 40초 넘게 간다. 처음에는 굵고 낮은 소리가 나고 그 뒤에 가는 소리가 오래 붙어 있다.


다음 타는 그 여음이 거의 사라졌을 때 친다. 완전히 사라진 뒤에 치면 끊긴 것 같고 남아 있을 때 치면 뭉개진다.


그래서 나는 여음을 듣고 있다가 친다. 시계를 안 본다. 시계를 볼 수도 없다.


28번을 치면 처음부터 끝까지 20분쯤 걸린다.


세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한다. 손가락으로 세는 사람도 있고 염불로 세는 사람도 있다.


나는 숫자로 센다.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 하고 센다.


노스님이 세지 말라고 하셨는데 나는 세고 있다. 안 세면 틀릴 것 같아서 그렇다.



일곱 번째


새벽에는 순서가 있다.


먼저 도량석이다. 목탁을 치면서 절 마당을 한 바퀴 돈다. 이건 노스님이 하신다. 목탁 소리가 처음에는 아주 작다가 점점 커진다. 잠든 것들을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그렇게 한다.


그 다음에 사물이다. 법고 목어 운판을 차례로 친다.


법고는 소가죽이다. 소리가 가슴에 온다. 목어는 나무 물고기 속을 두드리는 거라 소리가 마르고 짧다. 운판은 쇳소리인데 얇고 위로 뜬다.


법고는 네발 달린 짐승을 위해 치고 목어는 물속에 사는 것들을 위해 치고 운판은 날아다니는 것들을 위해 친다.


마지막이 범종이다.


범종은 지옥에 있는 것들을 위해 친다.


이 순서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왜 마지막이 지옥인가 하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제일 멀리 있으니까 마지막인 것이다.


일곱 번째쯤 치면 산이 깨어난다.


계곡 물소리가 먼저 들리기 시작한다. 원래 계속 나고 있었는데 안 들리다가 그때부터 들린다. 그 다음에 새가 운다. 새는 늘 같은 순서로 운다. 작은 새가 먼저 울고 까마귀가 나중에 운다.


그 순서가 매일 같다는 걸 알아내는 데 두 달쯤 걸렸다.


계절에 따라 시각은 밀린다. 여름에는 일곱 번째쯤에 새가 울고 겨울에는 스무 번째가 넘어가야 운다. 해가 뜨는 시각이 다르니까 그렇다.


그런데 순서는 안 바뀐다.


물소리. 작은 새. 산비둘기. 까마귀.


4번이다. 나는 이것도 세고 있었다.



스물네 번째


여름에는 소리가 다르게 간다.


습한 날에는 소리가 멀리 못 간다. 공기가 무거워서 아래로 깔린다. 마른 날에는 산등성이를 넘어간다. 그래서 장마 때는 아랫마을에서 우리 종이 잘 안 들린다.


이건 내가 알아낸 게 아니라 아랫마을 할머니가 알려주신 거다.


절 아래 마을에 열몇 집이 산다. 그중에 제일 위쪽 집 할머니가 종소리를 듣고 일어나신다고 했다. 시계가 없던 시절부터 그러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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