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부
신(腎)은 귀에 구멍을 연다. 신이 조화로우면 귀가 다섯 소리를 듣는다. — 《황제내경》 영추편
1
배윤경의 귀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한 건 작년 십일월이었다.
정기 연주회 사흘 전이었다. 저녁 연습을 마치고 집에 와서 씻고 누웠는데 소리가 들렸다. 가늘고 높은 소리였다. 어디서 나는지 몰라서 배윤경은 일어나 앉았다. 냉장고인가 했다. 냉장고를 껐다. 소리가 계속 났다. 보일러인가 했다. 보일러를 껐다. 계속 났다.
배윤경이 귀를 막았다.
소리가 더 커졌다.
그때 알았다. 밖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배윤경은 스물여섯에 대구시립교향악단에 들어갔다. 바이올린이었다. 스무 해가 지나 마흔여섯이 됐고 지금은 제2바이올린 수석이었다. 스무 해 동안 소리로 먹고살았다. 소리를 듣고 소리를 맞추고 소리를 냈다. 배윤경의 귀는 정확했다. 반음의 반의 반도 구분했다. 단원들이 음이 맞나 헷갈리면 배윤경한테 물었다. 배윤경이 맞다고 하면 맞는 거였다.
그 귀에서 소리가 났다.
이비인후과에 갔다. 청력 검사를 했다. 고주파 영역이 조금 떨어져 있다고 했다. 나이에 비해 심한 건 아니라고 했다. 이명은 원인을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스트레스일 수도 있고 소음 노출일 수도 있다고. 약을 줬다. 먹었다. 나아지지 않았다.
배윤경은 그 소리의 음정을 알고 있었다.
처음에 알아냈을 때 배윤경은 좀 웃었다. 웃을 일이 아닌데 웃음이 났다. 조율기를 켜고 소리를 맞춰봤더니 대략 4옥타브 라 언저리였다. 정확히 라도 아니었다. 라와 라샾 사이 어딘가였다. 조율이 안 된 음이었다. 배윤경이 평생 가장 견디지 못하는 게 조율이 안 된 음이었다.
그게 하루 종일 났다.
연주할 때는 안 들렸다. 오케스트라 소리가 크니까 묻혔다. 문제는 연주가 끝난 뒤였다. 무대에서 내려와 악기를 넣고 옷을 갈아입고 집으로 오는 길에 소리가 돌아왔다. 밤에 누우면 제일 크게 났다. 조용할수록 컸다.
배윤경은 잠을 못 잤다.
잠을 못 자니까 연습이 힘들었다. 연습이 힘드니까 소리가 흔들렸다. 소리가 흔들리는 걸 배윤경 자신이 제일 먼저 알았다. 지휘자가 뭐라고 하기 전에 알았다. 스무 해 동안 그런 적이 없었다.
봄에 지휘자가 불렀다.
"윤경 씨 요즘 컨디션 어때요."
"괜찮습니다."
"괜찮은 것 같지가 않아서요."
배윤경은 괜찮다고 다시 말했다. 지휘자는 더 묻지 않았다. 그게 더 무서웠다.
한의원 얘기를 꺼낸 건 첼로 단원이었다. 손목이 아파서 다녔다고 했다. 약령시에 있는데 원장이 좀 유별나다고. 그런데 이상하게 잘 본다고.
배윤경은 반신반의하면서 갔다. 육월이었다.
2
약령시 골목은 한약 냄새가 났다.
배윤경은 그 골목으로 들어서면서 처음으로 소리가 잠깐 작아진 것 같다고 느꼈다. 착각이었을 것이다. 골목이 시끄러워서 묻힌 거였다. 약재 상점들에서 뭔가 빻는 소리가 났고 사람들 말소리가 났고 어디선가 라디오 소리가 났다.
배윤경은 시끄러운 데가 편해진 지 오래였다.
골목 입구에 차가 서 있었다. 짙은 남색이었다. 낮고 넓었다. 배윤경은 차를 잘 몰랐지만 저게 비싼 차라는 건 알았다. 이 골목에 어울리지 않았다.
계단을 올랐다. 나무 계단이었다. 삐걱 끼익. 배윤경은 그 소리를 들었다. 첫 번째 계단이 삐걱이었고 세 번째가 끼익이었다. 다섯 번째는 다시 삐걱인데 아까보다 반음 낮았다. 배윤경은 계단을 오르면서 저절로 그런 걸 들었다. 스무 해 습관이었다.
대기실에 젊은 여자가 있었다. 폰을 보고 있었다.
"진료 받으러 왔는데요."
"들어가시면 돼요."
배윤경이 진찰실 문을 열었다.
한의사가 진찰 의자에 앉아 있었다. 손에 아무것도 없었다. 창밖을 보고 있다가 배윤경이 들어서자 고개를 돌렸다.
"어서 오이소. 앉으이소."
배윤경이 앉았다. 한의사가 맞은편에 앉으면서 진료카드를 봤다.
"배윤경 씨. 이명이랑 불면이 주증상이고."
"네."
"얼마나 됐습니꺼."
"일곱 달이요."
"이비인후과는예."
"갔어요. 고주파가 좀 떨어졌다는데 나이에 비해 심한 건 아니래요. 이명은 원인을 잘 모른다고."
한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직업이 뭡니꺼."
"바이올린 해요. 시향에 있어요."
한의사가 고개를 들었다.
"대구시향이요?"
"네."
"몇 년 됐습니꺼."
"스무 해요."
한의사가 잠깐 배윤경을 봤다.
"그 귀에서 소리가 나는 기라예."
배윤경이 그 말을 들었다.
"네."
그 짧은 말이 이상하게 아팠다. 이비인후과에서도 회사에서도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다들 이명이 있으시군요 라고 했다. 그 귀에서 소리가 난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3
"일단 약침 한 방 먼저 맞아보이소."
약침은 귀 뒤쪽 경혈에 놓았다. 예풍혈(翳風穴)이라고 한의사가 설명했다. 귀 뒤 움푹한 자리였다.
"고개 살짝 돌려보이소."
배윤경이 고개를 돌렸다. 젊은 여자가 약침 트레이를 들고 들어왔다.
"그 소리가 지금도 납니꺼."
"네."
"어떤 소립니꺼."
배윤경이 잠깐 멈췄다. 이 질문도 처음이었다.
"가늘고 높아요. 계속 나요. 끊기지 않고."
"매미 소리 같습니꺼."
"매미보다 얇아요. 그리고 매미는 울다 쉬는데 이건 안 쉬어요."
"음정이 있습니꺼."
배윤경이 한의사를 봤다.
"어떻게 알았어요?"
"바이올린 하신다니까예."
배윤경이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4옥타브 라 근처예요. 정확히 라는 아니고요. 라랑 라샾 사이 어딘가요."
"조율이 안 된 음이네예."
"네."
배윤경이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 목이 잠깐 막혔다. 왜 막히는지 몰랐다.
"그기 제일 힘들지예."
바늘이 들어왔다.
"윽."
"참을 만하지예."
"네."
한의사가 맥을 짚었다. 오른손 왼손. 오래 짚었다. 혀를 보라고 했다. 허리 아래쪽을 눌렀다. 배윤경이 "아" 했다.
"허리 아프지예."
"네. 오래 앉아 있어서 그런 줄 알았어요."
"밤에 소변 보러 일어납니꺼."
"네. 한두 번요."
"손발은예."
"손은 차요."
한의사가 손을 뗐다.
"신허이명(腎虛耳鳴)입니더."
"신허요?"
"신장이 약해졌다는 뜻이라예. 한의학에서 신장이 귀를 주관하거든예. 신개규어이(腎開竅於耳)라꼬. 신장이 귀에 구멍을 연다는 말입니더."
"귀가 아픈 게 아니라 신장이 문제예요?"
"귀는 문이고 신장이 방입니더."
한의사가 말했다.
"신장은 몸에서 제일 아래에 있고 제일 깊은 데 있습니더. 정(精)을 저장하는 자리라예. 밑에서 몸 전체를 받쳐주는 기라예. 그기 약해지면 위에 있는 게 뜹니더. 뜬 기운이 귀까지 올라와서 우는 기라예."
"왜 약해졌는데요."
"마흔여섯이면 원래 신기(腎氣)가 슬슬 줄어드는 나이라예. 거기다 스무 해 동안 밤에 연주하고 늦게 자고 긴장하고. 그거 다 신장을 쓰는 일입니더."
배윤경이 그 말을 들었다.
"긴장이 신장이에요?"
"놀라고 겁내는 기 신장이라예. 무대에 스무 해 서면 신장을 스무 해 쓴 깁니더."
4
"오음(五音)이라꼬 압니꺼."
한의사가 물었다. 배윤경이 고개를 들었다.
"궁상각치우요?"
"예. 아시네예."
"국악 하는 친구가 있어서요."
"황제내경에 보면 오음이 오장에 붙습니더. 궁(宮)은 비장 상(商)은 폐 각(角)은 간 치(徵)는 심장 우(羽)는 신장이라예."
배윤경이 그 말을 들었다.
"신장이 우(羽)예요?"
"예. 우음이 물의 소리라예. 제일 낮고 제일 깊은 소립니더."
한의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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