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부
사람마다 타고난 바가 다르니 같은 약으로 다른 사람을 고치려 하지 말라. — 이제마 《동의수세보원》
1
조태식은 가족을 다 데리고 왔다.
넷이었다. 조태식과 아내 문미숙과 큰딸 조은비와 아들 조민호. 심의당 대기실에 넷이 나란히 앉으니 자리가 꽉 찼다. 원래 대기실이 넓지 않았다. 환자 서너 명 앉으면 끝이었다.
박나리가 그 광경을 봤다. 평소에 없던 일이었다.
"네 분 다 진료 보시는 거예요?"
"예. 다 봅니더."
조태식이 대답했다. 쉰여덟이었다. 체격이 컸다. 어깨가 두껍고 목이 짧았다. 목소리도 컸다. 대기실 안에서 그 목소리가 울렸다.
"온 가족이 요즘 다 어디가 아파서요. 한꺼번에 보약이나 한 재씩 지어 먹일라꼬요."
박나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접수 카드를 넷 꺼냈다.
"한 분씩 들어가시면 돼요."
"같이 들어가면 안 됩니꺼?"
"진찰실이 좁아서요."
"그래도 같이 들어가입시더. 어차피 같은 약 지을 낀데."
박나리가 잠깐 조태식을 봤다.
"같은 약이요?"
"예. 식구니까 다 같이 먹으면 되지예."
박나리가 카드를 넘기다 말고 진찰실 쪽을 봤다. 문이 닫혀 있었다.
"그건 원장님이 정하실 거예요."
2
조태식이 먼저 들어갔다.
김원효가 진찰 의자에 앉아 있었다. 손에 아무것도 없었다. 오늘은 뭘 먹고 있지 않았다. 조태식이 들어서자 자리를 가리켰다.
"어서 오이소. 앉으이소."
조태식이 앉았다. 의자가 작았다. 조태식도 컸고 김원효도 컸다. 둘이 마주 앉으니 진찰실이 좁아 보였다.
"어디가 불편하십니꺼."
"내는 뭐 별거 없고예. 살이 안 빠져예. 운동을 해도 안 빠지고. 혈압도 좀 높다 카고. 가슴이 답답할 때가 있고."
"술은요."
"주에 두어 번."
"두어 번이 몇 잔입니꺼."
조태식이 잠깐 멈췄다.
"뭐 그날그날 다르지예."
김원효가 맥을 짚었다. 오른손 왼손. 혀를 보라고 했다. 조태식이 혀를 내밀었다. 김원효가 조태식의 어깨와 허리를 봤다. 앉은 자세를 봤다. 목을 봤다.
"태음인(太陰人)입니더."
"그기 뭔데예."
"체질이라예. 사상의학이라꼬. 사람을 네 가지로 나누는 기 있거든예."
"아 그거 압니더. 텔레비전에서 봤어예.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 그거지예."
"맞습니더."
"내가 태음인이라꼬예?"
"예. 간이 크고 폐가 작은 체질이라예. 뭐든 쌓아두는 기 잘 되고 내보내는 기 약한 체질입니더."
조태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쌓아두는 거는 맞네예. 살도 쌓이고."
"살만 쌓이는 기 아니라예."
김원효가 말했다.
"태음인은 참을성이 아주 좋습니더.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갑니더. 사업 오래 하시지예."
조태식이 김원효를 봤다.
"건자재 대리점 삼십 년 했습니더."
"그기 태음인이라예. 다른 체질은 삼십 년 못 합니더. 지겨워서."
조태식이 그 말을 듣고 좀 흡족한 표정이 됐다.
"근데 쌓아두는 기 지나치면 병이 됩니더. 몸에는 살로 쌓이고 속에는 열로 쌓이고. 답답한 기 그기라예."
3
두 번째로 문미숙이 들어갔다.
쉰다섯이었다. 조태식과 반대였다. 마르고 키가 작았다. 어깨가 좁았다. 앉을 때 소리가 안 났다.
"어디가 불편하십니꺼."
"소화가 잘 안 돼요. 뭘 먹어도 더부룩하고. 손발이 차고요. 겨울에는 이불 속에서도 발이 안 녹아요."
"잠은요."
"얕게 자요. 자다가 자주 깨고."
"찬 거 드시면 어떻습니까."
"바로 배가 아파요. 여름에도 찬물 못 마셔요."
김원효가 맥을 짚었다. 오래 짚었다. 혀를 봤다. 배를 눌렀다. 문미숙이 명치 아래에서 "윽" 했다.
"소음인(少陰人)입니더."
"소음인이요?"
"예. 신장이 크고 비위가 약한 체질이라예. 소화 기능이 약하고 몸이 찬 체질입니더."
"남편은 태음인이라던데요."
"예."
"부부인데 다르네요."
"부부는 남남이니까예."
문미숙이 그 말에 잠깐 웃었다.
"소음인은 꼼꼼하고 세심합니더. 다른 사람 마음을 잘 읽고예. 근데 그기 지나치면 속이 상합니더. 생각이 많아지면 비위가 먼저 상하거든예."
문미숙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에서 밥 하시지예."
"네."
"식구 넷 밥을 하시면 넷 입맛을 다 맞춰야 되지예."
"뭐 그렇죠."
"본인 입맛은요."
문미숙이 잠깐 멈췄다.
"내 입맛은 뭐."
"삼십 년 동안 본인 먹고 싶은 거 해서 드신 적 있습니꺼."
문미숙이 대답하지 않았다.
4
세 번째로 조은비가 들어갔다.
스물아홉이었다. 옷차림이 밝았다. 들어오면서 진찰실을 한 바퀴 둘러봤다. 앉기 전에 액자를 봤다. 뒤집힌 액자였다.
"저거 왜 뒤집혀 있어요?"
"채광 때문이라예."
"아 그렇구나."
조은비가 앉았다. 앉자마자 말했다.
"저는 잠을 못 자요. 밤에 누우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그리고 자꾸 열이 나요. 얼굴이랑 위쪽으로."
"소화는요."
"소화는 잘 돼요. 뭐든 잘 먹어요."
"화장실은요."
"자주 가요. 좀 급하고요."
김원효가 맥을 짚었다. 혀를 봤다. 조은비의 자세를 봤다. 상체가 발달해 있었다. 가슴 쪽이 넓고 아래가 좁았다.
"소양인(少陽人)입니더."
"소양인이요? 저 어릴 때 한번 들어본 것 같아요."
"비위가 크고 신장이 약한 체질이라예. 열이 위로 잘 뜨는 체질입니더."
"어쩐지 저 되게 더위 타요."
"직업이 뭡니꺼."
"학원 강사요. 영어."
"아이들 가르치는 거 잘 맞지예."
조은비가 잠깐 김원효를 봤다.
"어떻게 알았어요?"
"소양인이 그렇습니더. 사람 앞에 서는 기 잘 맞고 반응이 빠르고 활발하고. 근데 지속이 잘 안 됩니더. 시작은 잘하는데 끝이 힘들지예."
조은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 진짜 그래요. 뭐 배우면 처음에 엄청 열심히 하다가 두 달쯤 되면 시들해져요."
"그기 소양인이라예. 게으른 기 아니라 그렇게 생겼습니더."
조은비가 그 말을 듣고 좀 놀란 표정이 됐다.
"게으른 게 아니에요?"
"불이 잘 붙는 사람은 잘 꺼지기도 합니더. 대신 다시 잘 붙지예. 그기 장점이라예."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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