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르포 작가
나이 55세
성별 남자
특징 남의 최악의 날을 수집한다
1
나는 사람들의 가장 나쁜 날을 듣는 일로 먹고산다.
이십오 년 동안 나는 그 일만 했다. 사고를 당한 사람 사기를 당한 사람 자식을 잃은 사람 세상에 이름이 잘못 알려진 사람. 나는 그들을 찾아가 앉는다. 그리고 듣는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캐묻지도 않고 다그치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앉아 오래 기다린다. 사람들은 오래 기다려주는 사람 앞에서 결국 입을 연다. 세상 누구도 자기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의 인생에서 제일 아픈 대목이 내 녹음기 안으로 들어온다. 나는 그 순간을 안다. 사람의 목소리가 한 번 흔들리고 나서 이어지는 침묵. 그 침묵 다음에 나오는 말이 늘 진짜다. 나는 그 침묵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나는 그걸 글로 만든다. 바카라이 나오고 상을 받고 강연을 다닌다. 사람들은 나를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작가라고 부른다. 나는 그 말이 부끄럽지 않았다. 실제로 내 바카라 때문에 제도가 바뀐 적도 있고 잊힐 뻔한 사건이 다시 조사된 적도 있으니까. 나는 좋은 일을 한다고 믿었다. 다만 그 좋은 일의 재료가 늘 남의 불행이었을 뿐이다. 재료라는 말이 거슬리시는가. 나도 그 말을 입 밖에 낸 적은 없다. 다만 마감을 앞두고 원고가 밋밋할 때 나는 늘 이렇게 생각했다. 조금만 더 아픈 이야기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그게 재료가 아니면 무엇인가.
이 일에는 원칙이 하나 있다. 나는 개입하지 않는다. 나는 판단하지 않고 훈수 두지 않고 위로하지도 않는다. 기록자는 거리를 지켜야 한다. 감정이 섞이면 글이 무너진다. 그래서 나는 누가 내 앞에서 무너져 울어도 녹음기를 끄지 않는다. 그게 프로다. 나는 그저 듣는 사람이니까. 듣는 사람에게는 죄가 없다. 세상에 남의 불행으로 먹고사는 직업이 한둘인가. 변호사도 기자도 보험사도 다 그렇다. 나는 그중에서 제일 조심스럽게 듣는 사람일 뿐이다.
이 문장을 나는 이십오 년 동안 여러 번 썼다. 강연에서도 말했고 인터뷰에서도 말했다. 이 문장이 나를 지켜줬다. 나는 그저 듣는 사람이다. 그러니 내 손에는 아무것도 안 묻는다.
후배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쳤다. 취재원이 울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길래 나는 이렇게 답했다. 기다려라. 울음이 끝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기다려라. 위로하면 그 사람은 정신을 차리고 말을 아낀다. 그냥 기다리면 울음 끝에 진짜가 나온다. 후배들은 그걸 받아 적었다. 나는 그게 취재 기술이라고 믿었다. 사람이 제일 약해진 순간을 기다렸다가 그 틈으로 들어가는 기술. 나는 그 기술을 이십오 년 동안 갈고닦았고 그 기술로 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걸 기술이라 부르는 동안 나는 그게 무엇을 하는 일인지 한 번도 제대로 이름 붙이지 않았다.
2
작년부터 나는 새 바카라을 준비했다.
주제는 남의 불행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동안 나는 늘 당한 사람들을 취재했는데 이번엔 반대편을 파보기로 했다. 장례식장에서 슬픔에 값을 매기는 사람 보험금을 막아 표창을 받는 사람 노인의 외로움에 매트를 파는 사람 남의 몰락으로 조회수를 버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아홉 명 만났다. 그들은 놀랄 만큼 순순히 입을 열었다. 다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세상이 자기를 오해한다고 믿는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일수록 오래 기다려주는 사람 앞에서 더 빨리 무너진다. 나를 미워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 얼굴로 앉아 있으면 그들은 자기편을 만났다고 착각한다. 그 착각이 내 밥이었다.
취재는 순조로웠다. 나는 늘 하던 대로 조용히 앉아 오래 기다렸고 그들은 자기변호를 쏟아냈다. 그 자기변호가 이 바카라의 핵심이 될 거였다. 괴물이 자기를 괴물이 아니라고 설명하는 목소리. 그보다 무서운 게 어디 있나. 나는 원고를 쓰면서 몇 번이나 손끝이 서늘했다. 이건 잘 팔릴 거다. 이건 상을 받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한 줄 한 줄 옮겼다.
흥미로운 건 아홉 명이 하나같이 자기가 제일 낫다고 말한다는 점이었다. 장례지도사는 자기가 이 바닥에서 제일 정직하다고 했고 견인차 기사는 자기가 제일 빨리 달려간다고 했고 흥신소 조사원은 자기가 제일 조용히 한다고 했다. 나는 그 대목마다 노트에 표시를 해뒀다. 이 바카라의 하이라이트가 되겠구나 싶었다. 남을 등쳐 먹으면서도 자기는 같은 부류 중에 제일 나은 사람이라고 믿는 그 뻔뻔함. 나는 그 뻔뻔함을 아홉 개 모아 나란히 늘어놓을 생각에 조금 들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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