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병

11부

by김경훈

화병(火病): 화(火)를 밖으로 내지도 못하고 삭이지도 못해 안에 쌓인 병. 한국에만 있는 이름이다. — 《동의보감》 및 문화 특유 병명



1


한지영은 하루에 백 번쯤 웃었다.


목소리로 웃었다. 얼굴로 웃는 게 아니었다. 얼굴은 아무도 안 봤다. 한지영은 전화기 너머의 사람들한테 목소리로 웃었다. 콜센터였다. 대구 성서에 있는 카드회사 고객센터였다. 한지영은 거기서 팔 년째 일했다.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


이 말을 하루에 몇 번 하는지 세어본 적이 없었다. 셀 수가 없었다. 백 번은 넘을 것 같았다. 죄송할 일이 아닌데도 죄송하다고 했다. 카드 결제가 안 되는 게 한지영 잘못이 아닌데도 죄송하다고 했다. 고객이 카드 비밀번호를 잊어버린 게 한지영 잘못이 아닌데도 죄송하다고 했다. 죄송하다는 말은 한지영한테 인사말 같은 거였다. 안녕하세요처럼.


고객들은 화를 냈다.


대부분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그냥 문의를 했고 답을 듣고 끊었다. 근데 하루에 몇 명은 화를 냈다. 소리를 질렀다. 욕을 했다. 한지영 개인한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 사람들은 카드회사한테 화가 난 거였고 한지영은 카드회사의 목소리일 뿐이었다. 그걸 알았다. 알아도 소리는 한지영 귀에 들어왔다.


한지영은 그럴 때도 웃었다.


"고객님 많이 불편하셨죠. 정말 죄송합니다."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았다. 팔 년이면 그 정도는 됐다. 소리를 지르는 고객한테도 웃는 목소리로 응대했다. 그게 규칙이었다. 상담 품질 평가가 있었다. 녹음이 됐다. 친절하지 않으면 점수가 깎였다. 한지영은 점수가 좋았다. 웃는 목소리를 잘 냈다.


문제가 생긴 건 작년 봄부터였다.


목에 뭐가 걸린 것 같았다.


처음엔 감기인 줄 알았다. 목감기가 오래가나 했다. 근데 감기 증상은 없었다. 그냥 목에 뭐가 걸려 있었다. 삼켜지지도 않고 뱉어지지도 않았다. 밥을 먹을 때는 괜찮았다. 신기하게 음식은 잘 넘어갔다. 근데 음식이 아닌 뭔가가 목에 걸려 있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비인후과에 갔다. 목을 봤다.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내시경도 넣어봤다. 깨끗하다고 했다. 역류성 인후염일 수 있다고 약을 줬다. 먹었다. 나아지지 않았다.


목에 뭐가 걸린 채로 한지영은 계속 웃었다.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


이 말을 할 때마다 목에 걸린 게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삼키려고 침을 삼키면 걸린 게 더 선명해졌다. 한지영은 그게 이상했다. 뭐가 걸렸는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느낌은 확실했다.


가슴도 답답했다. 명치 언저리가 꽉 막힌 것 같았다. 얼굴이 자주 화끈거렸다. 특히 퇴근 무렵에. 하루 종일 웃고 나서 집에 갈 때쯤이면 얼굴이 뜨거워졌다. 열을 재면 정상이었다. 근데 뜨거웠다.


한방병원 얘기를 꺼낸 건 같은 팀 후배였다.


"언니 그거 화병 아니에요?"


"화병은 무슨. 나 화 안 내잖아."


"화를 안 내니까 화병이죠."


한지영은 그 말이 이상했다. 화를 안 내는데 화병이라니. 후배가 약령시에 유별난 한의원이 있다고 했다. 자기 엄마가 화병으로 갔는데 효과를 봤다고.


한지영은 화병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가보기로 했다. 목에 걸린 게 너무 오래갔다.



2


약령시 골목은 한약 냄새가 났다.


한지영은 그 냄새를 맡으면서 골목으로 들어섰다. 쉬는 날이었다. 콜센터는 주말에도 돌아가서 평일에 쉬는 날이 있었다. 골목은 조용했다. 약재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골목 입구에 차가 서 있었다. 짙은 남색 포르쉐였다. 한지영은 차를 보고 잠깐 멈췄다. 이 골목에 어울리지 않는 차였다. 근데 오래 보지 않았다. 한지영은 뭔가를 오래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콜센터에서는 오래 볼 게 없었다. 화면과 헤드셋뿐이었다.


한약재 상점 주인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한지영이 심의당을 찾는다고 하니 위를 가리켰다.


"이 층이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한지영이 그렇게 말하고 나서 스스로 좀 이상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콜센터에서 하는 마무리 인사였다. 저절로 나왔다. 상점 주인이 잠깐 한지영을 봤다.


계단을 올랐다. 삐걱, 끼익. 대기실에 젊은 여자가 있었다. 폰을 보고 있었다.


"진료 받으러 왔는데요. 예약은 안 했는데 괜찮을까요? 혹시 안 되면 다음에 다시 올게요."


여자가 폰에서 눈을 떼고 한지영을 봤다.


"들어가시면 돼요."


"아 네 감사합니다."


한지영이 진찰실 문을 열었다.


한의사가 진찰 의자에 앉아서 뭔가를 먹고 있었다. 납작만두였다. 대구 납작만두였다. 접시에 담겨 있었고 간장을 찍어 먹고 있었다. 한지영이 들어서자 젓가락을 내려놓고 손을 닦았다.


"어서 오이소. 앉으이소."


한지영이 앉았다. 한의사가 맞은편에 앉아서 진료카드를 봤다.


"한지영 씨. 목에 이물감이랑 가슴 답답함이 주증상이고. 얼굴 열감도 있고."


"네 맞아요."


"이비인후과 가봤어요?"


"네 갔는데 아무것도 없대요. 내시경도 넣어봤는데 깨끗하다고."


"얼마나 됐어요?"


"일 년 좀 넘었어요."


"직업이 뭐예요?"


"콜센터에서 일해요. 카드회사 고객센터요."


한의사가 고개를 들었다.


"전화 응대요?"


"네."


"하루에 몇 통이나 받아요?"


"많으면 백 통 넘게요."


한의사가 잠깐 한지영을 봤다. 뭔가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물었다.


"화나는 일 많죠?"


한지영이 웃었다.


"아니에요. 저 화 잘 안 내요."


한의사가 그 웃음을 봤다.


"화를 안 낸다는 거랑 화가 안 난다는 거랑 다른데."


한지영이 잠깐 멈췄다.


"네?"


"화가 안 나는 거예요 아니면 화를 안 내는 거예요?"


한지영이 그 질문을 처리하는 데 잠깐 걸렸다.


"……화를 안 내는 거요."


"그럼 화는 나는 거네요."


한지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3


"일단 약침 한 방 먼저 맞아보이소."


약침은 목 아래 가슴 위쪽 경혈에 놓았다. 전중혈(膻中穴)이라고 한의사가 설명했다. 가슴 한가운데라고 했다. 화가 뭉치는 자리라고 했다. 한지영이 옷깃을 살짝 내리고 앉았다. 젊은 여자가 약침 트레이를 들고 들어왔다.


"긴장 풀어보이소."


"네 괜찮아요."


"침 한번 삼켜보이소."


한지영이 침을 삼켰다. 목에 걸린 게 선명해졌다. 매번 그랬다.


"걸리죠?"


"네. 어떻게 알았어요?"


"매핵기(梅核氣)라예. 목에 매실씨가 걸린 것 같다는 뜻이라예. 근데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거든요. 이비인후과에서 깨끗하다고 한 게 맞아요."


"그럼 왜 걸린 느낌이 나요?"


"기(氣)가 걸린 기라예. 물건이 아니라."


바늘이 들어왔다.


"으."


"참을 만하지예?"


"네 괜찮아요."


한지영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픈데 웃었다. 젊은 여자가 그걸 봤다. 트레이를 정리하면서 한지영을 봤다.


"안 아파요?"


"아 아프긴 한데 괜찮아요."


"아프면 아프다고 해도 돼요."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김경훈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안내견 탱고의 눈으로 길을 보고, 시각장애인 연구자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1,283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29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499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우상폐 두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