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법 제4조
봄에 남자를 하나 받았다.
스물아홉이고 키가 크고 목소리가 낮았다. 좋은 조건이다. 요즘 시장에서 키 크고 목소리 낮은 건 값이 나간다. 문제는 이 남자가 자기 값을 모른다는 거였다. 자기 값을 모르는 남자가 제일 안 팔린다.
"제가 서른이 다 됐는데 아직 자리를 못 잡았습니다."
이 문장을 나는 하루에 다섯 번쯤 듣는다. 남자들이 이렇게 말한다. 자리를 못 잡았다. 자리라는 건 시집을 말한다. 요즘 남자들은 시집을 자리라고 부른다. 자리에 앉으면 인생이 정해지니까.
나는 결혼정보회사에 다니지 않는다. 그런 데는 남자를 등급으로 나눈다. 나는 등급을 안 매긴다. 등급을 매기면 낮은 등급은 안 온다. 나는 낮은 등급으로 먹고산다.
내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이 바닥에서 이름을 밝히는 사람은 사기꾼이다. 나도 사기꾼인데 이름은 안 밝힌다. 그게 다른 사기꾼들하고 나의 차이다.
내가 파는 건 신붓감 공략법이다.
정확히는 시집가는 법이다.
이 세상에서 결혼은 여자가 남자를 데려가는 것이다. 여자 집에서 남자를 들인다. 남자는 성을 따를 수도 있고 안 따를 수도 있는데 성을 따르면 값이 오른다. 데릴사위라는 말이 있다. 좋은 말은 아니다. 그런데 요즘 남자들은 그 좋지 않은 말이라도 되고 싶어 한다.
안 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스물아홉 남자한테 나는 먼저 손을 봤다.
손이 중요하다. 여자들이 상견례에서 남자 손을 본다. 손이 거칠면 고생한 티가 난다고 좋아하는 여자도 있고 손이 곱상하면 집에서 사랑받고 컸다고 좋아하는 여자도 있다. 문제는 이 남자 손이 어중간했다는 거다. 어중간한 손이 제일 안 좋다. 이야기가 안 되니까.
"손을 어떻게 할까요."
"거칠게 갈까요 곱게 갈까요."
"저는 사실 회사에서 키보드만 칩니다."
"그럼 곱게 갑니다."
나는 그 남자한테 핸드크림을 줬다. 하루 다섯 번 바르라고 했다. 남자들은 핸드크림을 잘 안 바른다. 안 바르니까 바르면 표가 난다. 표가 나는 게 상품이다.
수수료는 이백이고 성혼되면 이백을 더 받는다.
이건 옛날부터 그랬다. 중매쟁이는 성혼 사례를 받는다. 다른 게 하나 있다면 옛날 중매쟁이는 여자 쪽에서 사례를 받았고 나는 남자 쪽에서 받는다.
세상이 뒤집히면 돈 받는 방향도 뒤집힌다.
요즘 지하철에서 보면 광고가 다 바뀌었다. 옛날에는 웨딩드레스 광고가 붙었다는데 지금은 예복 광고가 붙는다. 남자 예복이다. 처가에 잘 보이는 남자 예복 전문. 삼십육 개월 할부.
남자 잡지에는 이런 기사가 실린다. 시댁이 아니라 처가 어른 마음 사로잡는 명절 선물 열 가지. 데릴사위 오 년 차가 말하는 부엌 생존법. 나는 이런 잡지를 사서 읽는다. 다 내가 가르치는 내용인데 잡지가 공짜로 뿌린다. 잡지가 뿌리니까 값이 떨어진다. 그래서 나는 잡지에 안 나오는 것만 판다. 잡지에 안 나오는 건 실패담이다.
명절 큰집 풍경도 바뀌었다. 부엌에는 남자들이 있고 거실에는 여자들이 있다. 남자들이 전을 부치면서 이런 얘기를 한다.
"자네 어디로 갔는가."
"칠곡 처가로 갔습니다."
"처가 어른들은 좋으신가."
"장모님이 좀 세십니다."
"어디나 그렇지."
거실에서는 여자들이 정치 얘기를 하고 부동산 얘기를 한다. 옛날에 남자들이 하던 얘기라고 한다. 나는 옛날을 모른다. 나는 뒤집힌 세상에서 태어났다. 나한테는 이게 원래 세상이다.
미혼 남자를 부르는 말도 여럿이다. 노총각이라는 말은 이제 안 쓴다. 대신 미입가라고 한다. 아직 입가 못한 남자. 입가는 시집 입 자에 시집갈 가 자다. 신문 결혼란에도 그렇게 난다. 아무개 씨 입가. 여자 이름이 앞에 오고 남자 이름이 뒤에 온다. 뒤에 오는 게 들어가는 쪽이다.
나는 신문 결혼란을 매일 읽는다. 거기 실린 남자들은 다 자리를 잡은 남자들이다. 나는 그 이름들을 손끝으로 짚어가며 읽는다. 내 이름은 거기 없다.
첫 상견례는 삼 주 뒤였다.
여자 쪽은 방천시장에서 건어물 도매를 크게 하는 집이었다. 딸이 서른셋이고 사업을 물려받기로 돼 있었다. 남자를 들여서 집안일을 시킬 생각이었다.
이런 집이 좋은 집이다. 여자가 밖에서 돈을 벌고 남자가 안에서 살림을 하는 집. 남자한테 제일 안정적이다. 남자들이 제일 원하는 자리다.
나는 스물아홉한테 사흘 동안 교육을 시켰다.
첫째. 말을 아껴라.
여자 쪽 어른들이 물으면 짧게 답하고 먼저 묻지 마라. 먼저 묻는 남자는 나선다는 소리를 듣는다. 나서는 남자는 시집와서 목소리를 낼 거라고 여자 집에서 걱정한다.
둘째. 살림 얘기를 먼저 꺼내라.
이게 요즘 남자들이 제일 못 하는 거다. 다들 자기 온라인 게임 얘기를 하고 싶어 한다. 아니다. 여자 집에서 궁금한 건 이 남자가 국을 끓일 줄 아느냐다. 김치를 담글 줄 아느냐다. 나는 스물아홉한테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쳤다. 실제로 담글 필요는 없다. 담글 줄 아는 것처럼 말하는 법만 가르치면 된다. 배추 절이는 시간을 물으면 여섯 시간이라고 답하라고 했다. 여섯 시간이 정답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런데 숫자를 대면 아는 것처럼 들린다.
셋째. 처가 얘기를 미리 하지 마라.
이게 함정이다. 남자들이 잘 걸린다. 좋은 인상을 주려고 처가 부모님 모시겠다는 말을 먼저 한다. 이러면 여자 집에서 오히려 뒤로 뺀다. 벌써 뭘 노리나 싶은 거다. 모시는 건 시집온 다음에 자연스럽게 하는 거지 상견례에서 계약하듯 하는 게 아니다.
스물아홉은 사흘 만에 다 외웠다. 재능이 있었다.
교육 마지막 날에 나는 모의 상견례를 시킨다. 내가 여자 집 어머니를 한다. 목소리를 바꾼다. 이십 년 동안 여자 집 어머니 목소리를 하도 들어서 나는 그 목소리를 잘 낸다.
"자네는 국을 끓일 줄 아는가."
"네 끓일 줄 압니다."
"무슨 국을 잘 끓이는가."
"된장국을 잘 끓입니다."
"된장국에 뭘 넣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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