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부
우상폐(憂傷肺): 근심은 폐를 상하게 한다. 어떤 근심은 대상이 사라진 뒤에도 몸에 남는다. — 《동의보감》 내경편
1
정연옥은 근심할 게 없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말했다. 자식들은 다 컸고 각자 살았다. 큰딸은 부산에서 아들 둘을 키웠고 작은아들은 서울에서 회사를 다녔다. 둘 다 명절에 내려왔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안 오지도 않았다. 남편은 오 년 전에 갔다. 오래 앓다가 갔다. 그때는 힘들었는데 지금은 괜찮았다. 괜찮다고 정연옥은 생각했다.
헌바카라방은 아직 있었다.
대구 남문시장 뒤편 골목이었다. 상호는 고금당(古今堂)이었다. 옛것과 지금이라는 뜻이었다. 남편이 지은 이름이었다. 남편은 이름 짓는 걸 좋아했다. 서점을 열 때도 한 달을 고민하다가 고금당으로 정했다. 정연옥은 그때 그냥 아무 이름이나 붙이라고 했는데 남편은 이름이 중요하다고 했다. 옛 바카라을 파는 곳이니 옛것이 있어야 하고 사람이 사가니 지금도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고금당이라고.
삼십사 년 됐다.
처음 이십 년은 잘됐다. 헌바카라을 찾는 사람이 많았다. 학생들이 참고서를 사러 왔고 노인들이 옛날 바카라을 찾으러 왔다. 절판된 바카라을 구해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남편이 그런 걸 잘했다. 어디에 무슨 바카라이 있는지 다 알았다. 전국의 헌바카라방과 연결되어 있어서 웬만한 바카라은 다 구했다. 정연옥은 계산을 맡고 남편은 바카라을 맡았다.
문제가 시작된 건 십 년쯤 전부터였다.
인터넷이 커지면서 헌바카라도 인터넷으로 사고팔게 됐다. 사람들이 골목까지 오지 않았다. 클릭 몇 번이면 집으로 바카라이 왔다. 남편은 인터넷을 잘 못 했다. 배우려고 했는데 잘 안 됐다. 아들이 와서 온라인 판매를 열어줬는데 관리가 어려웠다. 손님이 줄었다. 매출이 줄었다. 남편이 아프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남편이 아픈 오 년 동안 정연옥은 매일 근심했다.
병원비 근심. 서점 근심. 남편 근심. 자식들한테 짐이 될까 봐 근심. 서점을 접어야 하나 근심. 접으면 남편이 뭐라고 할까 근심. 안 접으면 빚이 늘까 봐 근심. 정연옥은 그 오 년 동안 하루도 근심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남편이 갔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생겼다.
근심할 게 없어졌는데도 정연옥은 계속 근심했다.
대상이 없었다. 남편은 갔고 병원비도 끝났다. 서점은 어차피 접을 것도 없이 그냥 손님이 없었다. 자식들은 알아서 살았다. 근심할 게 정말 없었다. 그런데 몸이 계속 근심했다. 한숨이 잦았다. 가슴이 답답했다. 목이 자주 잠겼다. 잠을 자도 얕게 잤다. 새벽에 자꾸 깼다.
내과에 갔다. 이상 없다고 했다. 갱년기는 이미 지났고 특별한 병도 없다고 했다. 그냥 나이 탓이라고 했다. 정연옥은 나이 탓이라는 말을 듣고 그런가 보다 했다.
한의원 얘기를 꺼낸 건 옆 가게 방앗간 주인이었다.
"연옥 씨 요즘 한숨을 너무 많이 쉬어. 약령시에 한의원이 하나 있는데 거기 한번 가봐. 원장이 좀 유별나긴 한데 용하다더라."
정연옥은 근심할 게 없는데 무슨 한의원이냐고 했다. 방앗간 주인은 근심할 게 없는데 한숨을 그렇게 쉬는 게 더 문제라고 했다.
정연옥은 그 말에 반박을 못 했다.
2
약령시 골목은 한약 냄새가 났다.
정연옥은 그 골목을 오랜만에 걸었다. 예전에 남편이랑 몇 번 왔었다. 남편이 위장이 안 좋을 때 여기서 약을 지어갔다. 그게 언제였더라. 기억이 흐릿했다. 골목은 그때랑 비슷했다. 약재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고 냄새가 진했다.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골목 입구에 차가 한 대 서 있었다. 짙은 회색이었다. 크고 낮고 넓었다. 정연옥은 차를 잘 몰랐지만 저 차가 비싸다는 건 알았다. 엠블럼에 황소가 있었다. 이 골목에 어울리지 않는 차였다. 정연옥은 잠깐 그 차를 보다가 지나쳤다.
한약재 상점 주인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정연옥이 심의당을 찾는다고 하니 위를 가리켰다.
"이 층이오."
"고맙습니다."
정연옥이 계단을 올랐다. 나무 계단이었다.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고금당 계단도 이랬다. 남편이 늘 고친다고 하다가 못 고치고 갔다. 정연옥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 올라갔다.
대기실에 젊은 여자가 있었다. 폰을 보고 있었다. 흰 가운 아래로 청바지가 보였다.
"진료 받으러 왔는데요."
"들어가시면 돼요."
정연옥이 진찰실 문을 열었다.
한의사가 진찰 의자에 앉아서 뭔가를 먹고 있었다. 붕어빵이었다. 손에 들고 꼬리부터 먹고 있었다. 정연옥이 들어서자 붕어빵을 내려놓고 손을 닦았다. 생각보다 젊었고 생각보다 뚱뚱했다.
"어서 오이소. 앉으이소."
정연옥이 앉았다. 한의사가 맞은편에 앉아서 진료카드를 봤다.
"정연옥 씨. 가슴 답답함이랑 불면이 주증상이고. 한숨이 잦다고 적혀 있네요."
"네."
"얼마나 됐어요?"
"오래됐어요. 몇 년 됐나."
"직업이 뭐예요?"
"헌바카라방 해요. 남문시장 뒤에서."
한의사가 고개를 들었다.
"헌바카라방이요."
"네."
"오래 했어요?"
"삼십사 년이요."
한의사가 잠깐 정연옥을 봤다. 뭔가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다시 진료카드로 눈을 돌렸다.
"근심되는 일 있어요?"
"없어요."
정연옥이 바로 대답했다.
"근심할 게 없어요. 애들도 다 컸고 남편도 갔고. 서점은 뭐 손님이 없어서 근심할 것도 없고."
한의사가 그 말을 듣고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근심할 게 없는데 한숨이 나와요?"
정연옥이 멈췄다.
"그러게요. 그게 이상하긴 해요."
3
"일단 약침 한 방 먼저 맞아보이소."
정연옥이 소매를 걷으려는데 한의사가 아니라고 했다.
"등이요. 폐 쪽이라예."
정연옥이 상의를 조금 올리고 진찰 침대에 엎드렸다. 젊은 여자가 약침 트레이를 들고 들어왔다. 정연옥이 엎드린 채로 물었다.
"많이 아파요?"
"짧습니더. 대신 아프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짧게 아프다는 말이라예."
정연옥은 그 대답이 이상했는데 반박할 말이 없었다. 바늘이 들어왔다.
"으."
"참을 만하지예?"
"네."
"한숨 한번 쉬어보이소."
정연옥이 한숨을 쉬었다. 저절로 나왔다. 시키지 않아도 평소에 자주 나오는 거였다.
"그거 하루에 몇 번 해요?"
"뭘요."
"한숨이요."
정연옥이 잠깐 생각했다.
"세어본 적이 없어서."
"많이 하죠?"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한의사가 등 쪽을 눌렀다. 견갑골 사이였다.
"여기 아프죠?"
"아야. 네."
"오래 뭉쳐 있었네요. 이게 하루 이틀 뭉친 게 아니라예."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