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 곡

by김경훈

목소리도 안 쓰면 녹스는 모양이다.


퇴직하고 반년쯤 됐을 때 알았다.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 한 날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산바카라을 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다시 잠들 때까지. 입을 열 일이 한 번도 없었다. 그날 밤 자려고 누웠는데 목이 이상하게 뻑뻑했다. 시험 삼아 아, 하고 소리를 내 봤다. 갈라진 소리가 났다. 내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서른 몇 해를 말로 먹고산 사람이다. 자재 납품 영업. 하루에 전화를 오십 통씩 했다. 목이 쉬는 게 훈장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제 아무도 나에게 전화를 걸지 않는다. 걸 일이 없으니까. 은퇴한 영업사원한테 무슨 볼일이 있겠나.


영업이라는 게 별건가. 하루 종일 말을 파는 일이다. 물건은 거저나 다름없고, 사실은 말을 파는 거다. 나는 그 말로 애 둘을 키우고 집을 샀다. 그런데 그 말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하루에 오십 통씩 하던 전화가, 이제는 일주일에 한 통도 안 온다. 스팸 전화가 오면 나는 끊지 않고 좀 듣는다. 사람 목소리라서.


아내는 삼 년 전에 갔다. 애들은 서울에 있다. 명절에나 온다. 통화는 한 달에 한 번쯤, 그것도 아버지 잘 계시죠, 네 잘 있다, 밥은 잘 챙겨 드시고요, 그래 너도, 하고 끝난다. 삼십 초. 나는 그 삼십 초를 위해 휴대폰을 하루 종일 옆에 둔다.


동사무소에서 하는 노인 프로그램에 나가 볼까도 했다. 서예니 뭐니. 근데 거기 가면 사람들이 묻는다. 뭐 하시던 분이냐고. 나는 그 질문이 싫다. 하던 사람. 이제는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니까.


무인 노래방은 딸이 알려 줬다. 정확히는 딸이 알려 준 건 아니고, 손주 녀석이 거기 다닌다는 얘기를 전화로 하다가 흘려들었다. 요즘은 혼자 가서 노래 부르는 데가 있단다. 코인 노래방. 한 곡에 오백 원. 아무도 없고 방만 있단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며칠을 생각했다. 예순둘 먹은 늙은이가 혼자 노래방에 간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런데 자꾸 생각이 났다. 아무도 없다는 말이. 아무도 없으면, 아무도 나한테 뭐 하던 분이냐고 안 묻겠구나.


그러고도 실제로 가기까지 또 며칠이 걸렸다. 첫날 밤에는 계단 앞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왔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젊은 애들 웃음소리가 올라왔다. 내가 저기 끼면 우스울 것 같았다. 다음 날은 좀 더 늦게 갔다. 열한 시가 넘으니 계단이 조용했다. 나는 난간을 짚고 천천히 내려갔다. 늙은이가 계단 하나 내려가는 데 그렇게 오래 걸렸다.


첫날은 밤 열한 시에 갔다. 낮에 갈 용기는 안 났다. 계단을 내려가니 지하에 방이 여덟 개쯤 있었다. 카운터는 없고 키오스크만 있었다. 화면을 눌러 이천 원을 넣었다. 네 곡. 5번 방 문이 열렸다.


좁았다. 두 사람이 서면 꽉 찰 방에 소파 하나, 화면 하나, 마이크 두 개. 나는 문을 닫고 잠깐 서 있었다. 방음이 잘 돼서 바깥소리가 뚝 끊겼다. 그렇게 조용한 곳에 혼자 서 있어 본 게 오랜만이었다. 아니, 우리 집도 조용하다. 근데 우리 집의 조용함과는 달랐다. 우리 집은 그냥 비어서 조용한 거고, 여긴 소리를 내라고 만들어 놓고 조용한 거였다.


번호를 눌렀다. 옛날 노래. 반주가 나왔다. 나는 마이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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