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법 제1조
버스가 만촌역을 지날 때 뒷자리에서 누가 말했다.
"저 앞에 서 있는 남자 향수 냄새 진짜 지독하다 저거 뿌린 게 아니라 부은 거 아니가."
향수를 부은 남자가 대꾸했다.
"니 목소리도 지독하다."
그러고 둘 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각자 내렸다. 이게 정상이다. 사람들은 생각한 걸 말한다. 생각을 생각인 채로 두는 법을 아무도 모른다. 애초에 그런 게 가능하다는 것도 모른다.
은행 창구에서는 이렇게 된다.
"대출 상담 오셨어요 이 서류로는 안 될 거 같은데 그래도 접수는 해드릴게요 어차피 위에서 자를 거고 저는 실적만 채우면 되니까요."
"네 저도 안 될 줄 알고 왔고요 여기 안 되면 이층 저축은행 갈 거예요 거기가 이자가 더 센데 저는 지금 이자를 따질 처지가 아니에요."
둘 다 웃으면서 도장을 찍는다.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다. 상처는 감춰진 말에서 나오는 건데 감춰진 말이 없으니까.
병원은 좀 곤란하다.
"환자분 결과 안 좋습니다 저도 이런 말 하기 싫고 사실 지금 점심때가 지나서 배가 고픕니다."
"선생님 저는 지금 선생님 배고픈 게 하나도 안 중요합니다."
"저도 압니다 근데 나왔습니다."
이런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그럭저럭 잘 산다. 다들 새니까 새는 게 흠이 아니다.
소개팅은 십오 분이면 끝난다. 앉자마자 서로 다 말하니까 십오 분이면 충분하다. 결혼도 빠르다. 이혼은 더 빠르다.
장례식장은 시끄럽다. 상주가 조문객한테 이렇게 말한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저 사람 누구지."
조문객이 대답한다.
"저도 몰라요 회사에서 가라고 해서 왔고 국밥은 먹고 갈 겁니다."
둘 다 절을 하고 국밥을 먹는다.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다. 상처는 감춰진 말에서 나오는 건데 감춰진 말이 없으니까.
문제는 새면 안 되는 자리가 딱 몇 군데 있다는 거다.
면접. 상견례. 조합 총회. 장례식장.
그리고 그 몇 군데를 위해서 사람들이 나를 찾아온다.
수성구 범어동 학원 골목 삼층이다. 간판에는 정숙학원이라고 적혀 있다. 정숙. 조용할 정에 엄숙할 숙. 처음 이 간판을 걸었을 때 한 달 동안 독서실인 줄 알고 사람들이 올라왔다. 나는 그 사람들을 다 받았다. 열람실이 어디냐고 물으면 여기가 열람실이라고 했다. 조용히 해야 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만 듣고도 나는 대충 안다. 반박자씩 늦으면 진짜 손님이다. 망설이니까. 안 늦고 그냥 올라오면 열람실 찾는 사람이다.
가끔 전화가 온다.
"거기 하루 얼마예요."
"사 주에 사백입니다."
"하루에 사백이요."
"사 주에 사백입니다."
"독서실이 무슨."
"독서실이 아닙니다."
"그럼 뭔데요."
이 대목에서 나는 대답을 고른다. 정직하게 말하면 아무도 안 온다. 입 다무는 법을 가르친다고 하면 다들 웃는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한다.
"말을 아끼는 법을 가르칩니다."
말을 아낀다는 말은 좋은 말이다. 아낀다는 건 어딘가에 쌓인다는 뜻이니까. 사람들은 자기 안에 뭔가 쌓이는 걸 좋아한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안 쌓인다. 그냥 사탕이 녹을 뿐이다.
내 수업은 두 시간이고 사 주짜리다.
첫 시간에 나는 사탕을 나눠준다.
수강생들은 대개 이 대목에서 화를 낸다.
"이게 뭡니까."
"사탕입니다."
"사탕인 건 압니다 이게 뭐냐고요."
"입은 하나입니다."
나는 이 말을 십 년째 한다. 입은 하나다. 사탕을 물고 있으면 입이 그걸 굴리느라 바쁘다. 바쁜 입은 말을 덜 뱉는다. 이게 전부다. 비법의 전부다. 나는 이걸 사백만 원어치로 판다.
웃긴 건 이게 먹힌다는 거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다. 사탕이 얇아지면 뚫린다. 그래서 나는 딱딱한 걸 쓴다. 목이 아플 때 먹는 그 옛날 은박지 사탕. 삼십 분은 간다. 상견례가 삼십 분 넘어가면 그건 이미 잘못된 상견례다.
이 대목이 이 학원의 이 주차 과정이다. 사탕 고르기.
박하는 안 된다. 눈이 시고 코가 뚫리고 정신이 맑아진다. 정신이 맑아지면 생각이 선명해지고 선명한 생각은 힘이 세다. 힘이 센 생각은 사탕 하나로 못 막는다. 상견례에서 정신이 맑으면 그건 사고다.
커피맛도 안 된다. 잠이 깬다.
우유맛이 제일 좋다. 아무 생각이 안 든다. 나는 이걸 강의할 때마다 좀 부끄럽다. 사백만 원 받고 우유사탕을 권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부끄러움도 새기 때문에 나는 강의 중에 사탕을 하나 더 문다.
껌을 쓰는 사람도 있다. 껌은 더 오래가는데 소리가 난다. 상견례에서 껌을 씹으면 그건 새는 것보다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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