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는 잘 됐어요

by김경훈

직업 입시 컨설턴트

나이 47세

성별 여자

특징 아이는 안 보고 부모만 본다



1.


이 일을 오래 하면 알게 된다. 부모는 아이 문제로 나를 찾아오는 게 아니다.


상담실에 들어오는 부모는 아이 성적표를 손에 쥐고 있다. 아이가 몇 등급인지 어느 대학을 갈 수 있는지 그걸 물으러 온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표면이다. 삼십 분만 이야기해보면 진짜가 드러난다. 그들이 정작 상담받고 싶은 건 아이가 아니라 자기 불안이다. 옆집 아이는 벌써 무슨 대회를 나갔다더라 사촌은 어느 학원을 다닌다더라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 그 불안이 부모를 밤에 잠 못 들게 하고 그 잠 못 드는 마음이 나를 찾아오게 한다. 나는 아이를 상담하지 않는다. 나는 부모의 불안을 상담한다. 정확히는 그 불안을 팔아 먹고산다.


그래서 나는 상담실에서 아이 얼굴을 거의 보지 않는다. 아이는 대개 데려오지도 않는다. 데려와도 나는 아이가 아니라 아이 옆에 앉은 엄마를 본다. 엄마의 표정 엄마의 가방 엄마가 아이 성적을 말할 때의 목소리 떨림. 거기에 내 돈이 있다. 아이는 나에게 사람이 아니다. 아이는 결과값이다. 지금 삼 등급이면 이 년 뒤 몇 등급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가. 이 스펙에 무엇을 얹으면 어느 대학의 어느 전형에 맞아떨어지는가. 나는 아이를 그렇게 숫자와 항목으로만 다룬다. 이십 년을 그렇게 했다.


남들은 나를 입시 브로커라 부르고 사교육 장사꾼이라 부른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부모의 두려움에 값을 매긴다. 두려움이 클수록 상담료도 커진다. 자소서를 대신 써주고 봉사활동 실적을 만들어주고 작은 대회 상장을 연결해준다. 서류를 예쁘게 다듬는다는 게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나는 그 경계를 누구보다 잘 안다. 그리고 그 경계를 조금씩 넘는 법도 안다. 하지만 나는 죄바카라감을 느끼지 않았다. 내가 안 해도 다른 컨설턴트가 한다. 부모는 어차피 돈을 쓸 거고 나는 그 돈을 제일 잘 쓰게 도와줄 뿐이다. 세상에 남의 불안으로 먹고사는 직업이 한둘인가. 보험도 병원도 학원도 다 그렇다. 나는 그중에서 제일 비싸게 파는 사람일 뿐이다.


내 상담실에는 명문대 로고가 박힌 액자가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내가 보낸 아이들이 간 대학들이다. 부모들은 그 벽을 보며 안심한다. 저 벽에 우리 아이 대학도 걸릴 수 있겠구나. 하지만 그 액자에는 대학 이름만 있지 아이 이름은 없다. 나는 일부러 그렇게 했다. 부모가 봐야 할 건 아이가 아니라 결과니까. 액자 속 대학은 상품이고 아이는 그 상품을 만드는 재료다. 재료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는 요리사는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십 년을 버텼다. 그 벽을 볼 때마다 나는 뿌듯했다. 저 대학들을 다 내가 만들었다고. 저 안에 들어간 아이들이 그 뒤에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는 액자 밖의 일이었고 액자 밖은 내 관심이 아니었다.


2.


내게는 전설 같은 성공 사례가 하나 있다.


칠 년 전이었다. 전교 등수 밖에서 맴돌던 아이 하나를 이 년 만에 이 나라에서 제일 좋은 대학에 넣었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그 대학이다. 처음 왔을 때 그 아이는 가망이 없어 보였다. 성적은 어중간했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보지 않았다. 나는 그 엄마의 절박함을 봤다. 그 엄마는 형편에 넘치는 상담료를 감당하며 매달렸다. 그 절박함이 나를 움직였다. 정확히는 그 절박함이 지불할 금액이 나를 움직였다.


나는 그 아이를 완전히 다시 설계했다. 아이가 원래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느 전형에 어떤 서사가 필요한지가 중요했다. 나는 없던 봉사 이력을 만들었고 이름뿐인 동아리에 회장 직함을 붙였고 지역의 작은 대회들을 수소문해 상장을 채웠다. 자소서는 내가 썼다. 아이가 겪지도 않은 성장 서사를 그럴듯하게 지어냈다. 아이는 그 서사를 외웠다. 면접 답변도 내가 짜준 대로 외웠다. 이 년 동안 나는 그 아이의 하루를 분 단위로 관리했다. 밥 먹는 시간 자는 시간 숨 쉬는 시간까지. 친구를 만나는 것도 취미도 다 잘라냈다. 그런 건 결과값에 방해가 되니까.


그리고 아이는 붙었다. 합격자 발표가 나던 날 그 엄마는 내 손을 붙잡고 울었다. 나는 그 눈물을 봤다. 그리고 그날부터 그 아이는 내 간판이 되었다. 새 부모가 상담실에 올 때마다 나는 그 이야기를 꺼냈다. 전교권 밖에서 이 년 만에 최고 대학으로 간 아이. 그 한마디면 어떤 부모의 지갑도 열렸다. 나는 그 이야기를 칠 년 동안 수백 번 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그 아이가 그 뒤에 어떻게 됐는지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아이는 합격이라는 결과값을 내놓은 순간 내 관심에서 사라졌다. 결과값은 결과가 나오면 쓸모가 끝나니까.


돌이켜보면 그 이 년 동안 그 아이가 몇 번 이상한 말을 했었다. 면접 답변을 외우다 말고 이건 제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하고 물은 적이 있었다. 자소서를 읽어보더니 저 이런 일 없었는데요 하고 작게 말한 적도 있었다. 나는 그때마다 짧게 잘랐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붙고 나서 생각해. 일단 붙어야 네가 뭘 좋아하는지도 찾을 거 아니니. 나는 그 말이 아이를 위한 조언이라고 믿었다. 아이는 그 뒤로 더는 묻지 않았다. 나는 아이가 납득한 줄 알았다. 지금 와서 보면 아이는 납득한 게 아니라 그냥 입을 다문 거였다. 자기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를 외우면서 자기를 조금씩 지워간 거였다. 나는 그 침묵을 순종으로 읽었고 순종을 성과로 바꿨다.


3.


그 엄마가 상담실에 온 건 봄이었다.


수수한 차림이었다. 명품 가방도 없었고 값비싼 시계도 없었다. 나는 첫눈에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이런 부모는 상담료 앞에서 오래 망설인다. 나는 조금 방심했다. 큰 손님은 아니겠구나. 여자는 고등학생 딸을 걱정하는 엄마라고 했다. 아이가 공부는 하는데 성적이 안 오른다고 했다. 흔한 사연이었다. 나는 늘 하던 대로 그 엄마의 불안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엄마는 좀 달랐다. 불안해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고 내 말에 쉽게 휘둘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나를 가만히 관찰하는 것 같았다. 나는 분위기를 바꾸려고 늘 쓰던 카드를 꺼냈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제가 칠 년 전에 맡았던 아이는 전교권 밖에서 이 년 만에 최고 대학에 갔어요. 안 되는 아이는 없어요. 부모가 결심만 하면 됩니다.


여자는 잠깐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조용히 물었다. 그 아이는 지금 어떻게 지내나요.


나는 순간 멈칫했다. 칠 년 동안 수백 번 그 이야기를 했지만 그런 걸 물은 사람은 없었다. 다들 결과만 궁금해했지 그 뒤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나는 웃으며 대충 둘러댔다. 잘 지내죠. 아주 잘 됐어요. 그렇게 좋은 대학을 갔는데 당연히 잘 됐죠. 여자는 내 눈을 똑바로 봤다. 그 눈빛이 이상했다. 나는 그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4.


여자가 가방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바카라상에 올렸다.


교복을 입고 어색하게 웃는 여자아이였다. 나는 그 얼굴을 몰랐다. 당연했다. 나는 그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사진 아래 적힌 이름은 알았다. 내 간판이 된 그 아이의 이름이었다. 칠 년 동안 수백 번 입에 올린 그 성공 사례.


제 딸이에요. 여자가 말했다.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떨리지 않아서 더 무서웠다.


선생님이 그때 제 딸을 최고 대학에 넣어주셨죠. 저는 정말 감사했어요. 대출까지 받아서 상담료를 냈지만 하나도 안 아까웠어요. 그런데요 선생님. 우리 애는 그 학교를 일 년도 못 다녔어요. 입학하고 나니까 그동안 외운 것들이 다 자기 게 아니었던 거예요. 자소서에 쓴 그 성장 서사도 면접에서 말한 그 꿈도 전부 남의 이야기였으니까요. 애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몰랐어요. 이 년 동안 선생님이 짜준 시간표대로만 살았으니까 정작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도 몰랐고요. 결국 학교를 그만뒀어요. 그리고 지금은 삼 년째 방에서 안 나와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애가 그러더라고요. 자기는 이 년 동안 사람이 아니라 서류였다고. 엄마 나는 그때 한 번도 나로 산 적이 없어 하고요. 저는 그 말을 듣고서야 알았어요. 제가 감사했던 그 합격이 사실은 우리 애를 지운 거였다는 걸. 저는 딸을 최고 대학에 보낸 게 아니라 딸을 잃어버린 거였어요.


여자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처음에 애가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저는 화를 냈어요. 그렇게 힘들게 들어간 학교를 왜 그만두냐고. 남들은 못 가서 안달인 학교를. 저도 선생님이랑 똑같았던 거예요. 애가 아니라 그 학교 이름만 봤던 거죠. 그런데 어느 날 애 방문을 열었는데 애가 벽만 보고 앉아 있더라고요. 제가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애가 그랬어요. 엄마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이 년 동안 남이 시키는 대로만 살아서 이제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정하겠어. 아침에 뭘 먹을지도 못 정하겠어. 그 말을 듣는데 제 가슴이 무너졌어요. 저는 그제야 우리 애가 합격증 한 장을 받고 자기 자신을 통째로 잃었다는 걸 알았어요.


그 애가 방에 들어간 지 삼 년이 됐어요. 밥은 제가 문 앞에 놓아두면 제가 없을 때 가져가요. 얼굴을 안 보여주려고요. 저는 이제 우리 애 얼굴을 문틈으로밖에 못 봐요. 선생님. 선생님은 우리 애를 이 년이나 관리했잖아요. 그럼 우리 애 얼굴 기억하세요. 우리 애가 웃으면 어떤 얼굴인지 아세요.


나는 그 물음 앞에서 얼어붙었다. 나는 그 아이의 얼굴을 몰랐다. 이 년 동안 매일 그 아이의 시간표를 짰으면서도 그 아이가 웃는 걸 본 기억이 없었다. 웃을 시간을 내가 다 잘라냈으니까.


5.


나는 그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여자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처음엔 선생님을 원망했어요. 어떻게 복수할까 그것만 생각했죠. 그런데 어느 날 인터넷에서 선생님 광고를 봤어요. 후기 영상이었어요. 전교권 밖에서 이 년 만에 최고 대학으로 간 학생 사례. 이름은 안 나왔지만 저는 단번에 알아봤어요. 우리 애 이야기였으니까요. 선생님은 우리 애를 지워놓고 그 애를 간판으로 아직도 새 부모들을 끌어모으고 있더라고요. 우리 애가 방에서 안 나오는 그 삼 년 동안에도요.


여자는 사진을 도로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그래서 저는 복수를 접었어요. 복수할 필요가 없어졌거든요. 마침 그 대학에서 몇 해 전 입시 서류들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어요. 스펙 조작이 슬롯적으로 문제가 되니까요. 대학이 우리 애 서류를 다시 확인하겠다고 연락이 왔고 저는 가진 걸 다 넘겼어요. 선생님이 만들어준 가짜 봉사 이력 선생님이 대신 쓴 자소서 선생님이 연결해준 그 상장들. 다요. 저는 거짓말을 안 했어요. 있는 그대로 다 냈을 뿐이에요.


나는 그제야 알았다. 이 여자는 나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온 게 아니었다. 이 여자는 그냥 나를 한 번 보러 온 거였다. 자기 딸을 서류로 만들어놓고도 그 딸을 간판 삼아 잘 먹고사는 사람의 얼굴을. 나를 무너뜨린 건 이 여자의 계략이 아니었다. 나를 무너뜨린 건 내 입이었다. 칠 년 동안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닌 그 성공 사례. 나는 그 이야기를 광고로 만들어 온 세상에 뿌렸고 그 이야기의 진짜 주인이 그걸 알아봤을 뿐이다. 나는 내 자랑으로 나를 신고한 셈이었다.


며칠 뒤 대학의 감사가 시작됐고 곧 내 이름이 서류마다 등장했다. 자소서 대필 실적 조작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나와 함께 일했던 학부모들은 하나같이 발을 뺐다. 우리는 그냥 컨설팅을 받았을 뿐이라고. 서류를 그렇게 만든 건 우리가 아니라 저 사람이라고. 부모들은 다 빠져나갔고 나만 남았다. 조작된 서류마다 손끝이 닿은 사람은 나 하나였으니까.


우스운 건 나를 지켜줄 방패가 딱 하나 있긴 했다는 거다. 나는 아이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일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명분조차 없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아이를 위해 일한 적이 없으니까. 나는 부모의 불안을 위해 일했고 내 간판을 위해 일했다. 아이는 그 사이에서 재료로 갈려 나갔을 뿐이다. 그러니 나는 몰랐다고도 아이를 위해서였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나머지 컨설턴트들은 최소한 아이 앞날을 걱정했다는 변명이라도 있었는데 나에게는 그마저 없었다. 나는 아이를 한 번도 사람으로 본 적이 없었으니까.


6.


이십 년 동안 나는 아이를 보지 않았다.


나는 부모만 봤다. 부모의 불안 부모의 지갑 부모의 눈물만 봤다. 아이는 결과값이었고 결과가 나오면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게 이 일을 냉정하게 오래 하는 비결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내가 이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그 아이가 결국 나를 무너뜨렸다. 정확히는 내가 그 아이를 얼굴이 아니라 간판으로만 대한 그 오만이 나를 무너뜨렸다.


그 아이는 잘 됐어요. 나는 이 말을 칠 년 동안 수백 번 했다. 상담실에서 광고에서 부모들 앞에서.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나는 단 한 번도 그게 사실인지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할 필요를 못 느꼈다. 결과값은 합격으로 끝난 거니까. 그런데 그 아이는 잘 되지 않았다. 그 아이는 삼 년째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내가 잘 됐다고 떠든 그 시간 내내 그 아이는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방 안에 있었다. 나는 있지도 않은 잘됨을 팔아 먹고산 거였다.


가끔 그 엄마의 마지막 말이 떠오른다. 상담실을 나서기 전 여자는 문 앞에서 나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우리 애 이름 아세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름은 서류에서 봤으니 알았다. 하지만 그 아이가 어떤 목소리를 가졌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웃을 때 어떤 얼굴이었는지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이 년 동안 그 아이의 하루를 분 단위로 관리하고도 그 아이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여자는 내 침묵을 잠깐 바라보다가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나는 이제 부모의 불안을 읽는 사람이 아니다. 이제 불안한 건 나다. 서류마다 남은 내 손끝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나는 안다. 이십 년 동안 나는 수많은 아이를 서류로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서류가 되어 남은 건 나였다. 아이는 안 보고 부모만 본다던 나는 결국 한 아이의 얼굴을 못 본 대가로 모든 걸 잃었다. 그 아이의 얼굴을 나는 이제야 처음으로 궁금해한다. 너무 늦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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