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이유
이어폰을 끼고 걷다가 문득 정신을 차린 적이 있는가.
음악을 듣다 보면 어느새 고개가 까딱거리고 있다. 어깨가 미묘하게 움직인다. 발걸음이 박자에 맞춰지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여기가 지하철 안이라는 사실이 떠오르고 얼굴이 뜨거워진다. 나 지금 뭐 하고 있었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그건 인간이라는 증거다.
음악은 인류의 역사에서 놀랍도록 오래된 것이다.
가장 오래된 동굴 벽화가 약 3만 년 전의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오래된 악기가 발굴됐다. 4만 년 전 뼈로 만든 플루트다. 인류가 그림을 그리기 전에 이미 음악을 만들고 있었다는 뜻이다. 소리를 내는 도구를 만들어 서로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그림보다 음악이 먼저였다.
이 사실 앞에서 잠깐 멈추게 된다.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인 시대에 왜 굳이 뼈에 구멍을 뚫어 소리를 냈을까. 배가 부른 것도 아니고 사냥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데. 뼈에 정확한 간격으로 구멍을 뚫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도구가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하고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그 수고를 감수하면서까지 소리를 만들려고 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림은 남길 수 있다. 벽에 그려두면 다음 사람이 본다. 그런데 소리는 사라진다. 연주가 끝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남지 않는 것을 위해 그렇게 애를 썼다는 것은 그 순간 자체가 중요했다는 뜻이다. 함께 듣고 함께 움직이던 그 시간이.
음악의 3대 요소를 흔히 리듬과 멜로디와 화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건 서양 음악이 내린 정의일 뿐이다. 세계로 눈을 돌리면 이 세 가지를 다 갖추지 않은 음악이 훨씬 많다. 화음이 없는 민족 음악은 흔하다. 멜로디조차 없이 리듬만으로 이루어진 음악도 있다. 일본의 와다이코는 북을 두드리는 것이 전부다. 우리의 사물놀이도 마찬가지다. 꽹과리와 징과 장구와 북. 멜로디는 없다. 그런데 아무도 그것을 음악이 아니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리듬이 없는 음악은 어느 민족에서도 찾을 수 없다. 화음은 없어도 되고 멜로디도 없어도 된다. 그런데 리듬은 반드시 있다. 리듬이야말로 음악의 뿌리다.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을 봐도 그렇다. 리듬 인식은 갓 태어난 신생아도 할 수 있다. 반면 멜로디를 명확히 구별하는 것은 생후 4개월쯤부터 가능해진다. 리듬이 먼저 온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리듬은 몸에 이미 있다. 심장이 뛴다. 숨을 쉰다. 걷는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리듬이다. 태아는 어머니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이미 규칙적인 박동 속에 잠겨 있었다. 우리는 리듬 위에서 태어나 리듬 속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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